여름수업

by 은규

누군가는 일기를 쓰면 하루를 2번 사는 것 같다고 했고, 더글로리에서 남자 배우는 '그제야 동은 후배의 열아홉 살이 시작되는 거니까요'라고 했.

바닥 서사는 다르지만, 그제야 시작되는 무엇과 이미 있었던 것을 되살리는 두 가지 의미가 교차되는 곳에 여름이 있었다.


읽을 책을 고르는 것에 까다롭기도 하지.

편식쟁이는 어린아이라는 얘기

당근 골라내고 시금치 골라내고

먹고 싶은 것만 먹는데,

나에게 이거 읽어라 저거 읽어라

얘기해 주는 사람은 없어서

읽다 보니 감정만 키웠다.


쓰다 보면 소재가 없어서 결국 내 경험에서 살을 떼온다.

짧은 몇 줄을 며칠 머릿속에서 굴리다가

메모를 하면

생각이 눈밭에 구르듯 덩어리가 커진다.

울퉁불퉁한 눈덩이를

잘 털어내고 다듬고 껴안아 단단하게 하고.


쓰면서는 유치하다 유치하다 정말 못 쓰겠네

이건 버려야지 역시 재능이 없어

수없이 되뇌다,

포기 못한 조그마한 의지가

형태를 만들고 빛을 낸다.

없던 환함이 생긴 틈이 좋아서

자꾸 비비적거리면 점점 넓게 쏟아지고

내 안을 채워서

어릴 적 찬란함이 눈물겨워졌다.


한여름 동안 시 쓰기 수업을 들었다.

시다운 시와는 거리가 멀어도

시 속 화자의 마음을 어떻게든 구해내는 것이 내가 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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