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게트씨의 아지트

by 은규

베란다에 있기 좋은 날씨이다.

바게트씨는 커피를 끓여 나간다.

아직 어두운 새벽,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책을 본다.

미니 조명을 사야지 사야지 하면서 자꾸 까먹는다.


찐빵씨의 위스키장에 자리를 내어준 책장은 결국 베란다로 왔다.

정남향. 햇볕 정말 좋은 곳. 빛이 잘 바래는 곳.

남쪽을 등지고 5단의 책장을 옆으로 누였다.

2단의 긴 수납공간처럼 되었다.

책을 꼼꼼히 채워 넣고 옆에 안락의자를 두었더니

책장은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것들을 놓을 수 있는 테이블이 되기도 했다.


유리벽과 유리문 사이의 공간.

며칠 전까지는 나올 엄두가 안 났었는데,

도로에 간간이 지나가는 차들의 소리를 뚫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종일 북적한 집 안에서 방해받지 않고 나만의 상상으로 빠져들 수 있는 곳.

다 비치고 보여도 공간으로서의 아늑함을 가져다주는 희한한 장소이다.


저녁시간, 찐빵씨는 거실에서 위스키 한 잔과 야구를 보고

바게트씨는 유리벽 너머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노트에 끄적이는 일을 한다.

따로지만 함께 있는 듯 안정감을 지니고 있다.


이불을 끌고 나와 바닥에 편다.

베개를 등받이 삼아 몸을 기댄다.

제출해야 할 과제를 살핀다.

바게트씨는 배우는 과정, 상태를 좋아한다. 실력이 부족하고 어디 내놓기에는 형편없지만 처음일수록 처음에서 멀어지지 않을수록 변화의 폭이 보여서 재미있기 때문이다.

배우는 이상 학생이므로 나이에 관계없이 그 감성으로 빠져든다. 선택한 학습이기에 더 그렇다.


새벽의 유리벽은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불이 꺼진 깜깜한 거실은 거울의 뒷면처럼 베란다의 사물만 흐리게 되비친다.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이 매트 위에 흩어져 있다.

무릎을 세우고 이불을 끌어당긴다.

다락처럼 어린 방에 와 있는 것 같다.


아침은 천천히 와라

화들짝 세월이 깨어나지 않게

조금 더 꿈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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