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빵씨와 바게트씨는 한 집에 산다. 외모에서부터 둘은 다른 게 많다. 찐빵씨는 한 여름의 열기를 못 이겨했고 바게트씨는 겨울에 꽁꽁 거칠어졌다.
취미도 물론 다르다. 바게트는 낭만적인 것을 좋아하고 상상을 즐겨한다. 그 세계로 가는 최고의 안내자는 책이다.
전실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쪽으로 폭 80cm의 5단 책장 두 개가 나란히 있다. 그 안의 책은 대부분 읽었지만 기억에 다 남는 것은 아니고 똑똑해지지도 않는다. 읽은 시간이 물질로 축적되어 보임으로 위로를 받는달까. 한 권씩 구입하던 책이 자리를 다 채우면 꽂힌 책 위에 삼, 사단 정도 쌓아 올린다. 늘어나는 식구에 자리가 또 부족하면 이번엔 책 앞쪽으로 남은 공간에 겹으로 쌓기를 한다.
찐빵씨한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위스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니 숫자가 빠르게 늘었다. 처음에는 책장 앞 바닥에 일열로 몇 개 서 있더니 몇 달 만에 책이 꽂힌 앞에 제목을 가리며 진을 쳤다. 할인점을 같이 갈 때면 카트를 밀던 찐빵씨가 갑자기 안 보인다. 어디 갔나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찾아보면 위스키 코너에서 황홀경에 빠져 있다.
집으로 데려오는 애들이 늘었다.
대책회의. 책과 위스키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문제 1, 집의 공간이 협소하다. 남은 곳은 거실 앞 베란다뿐이다.
문제 2. 위스키는 시원한 곳에 두어야 하므로 거실 베란다는 안 된다. 책도 빛이 바래기 때문에 반대다. 이미 베란다에 두었다가 세계명작시리즈 표지가 흐리게 탈색되었다.
해결책으로 위스키장을 구입해 응달인 전실에 놓기로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술병들과 먼저 눈 맞추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3단의 유리문이 달린 장을 구입했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져 열대야가 며칠 계속되었다. 전실에 햇볕이 들지 않지만 날이 너무 덥다. 찐빵씨는 더위를 탈 위스키 생각을 한다. 바게트씨는 숙고하여 책장 중 하나를 내어주기로 한다. 그곳의 책들은 전실의 위스키장으로 들어갔는데 반짝반짝 유리문 안 쪽의 책이 남의 집에 앉은냥 촌스럽고 낡아 보인다.
나란한 책장 중 하나는 크기가 비슷한 위스키장으로 다시 구입해 교체했다. 책장은 화이트 위스키장은 월넷. 서로 다른 취미생활처럼 확연한 차이가 불안정해 보인다. 찐빵씨는 다음 달에 책장도 월넷으로 바꾸자고 한다.
한 곳에 모여있던 책 들이 두 군데로 나눠지고 다 넣지 못한 것들은 벽 둘레로 쌓여있다. 정신이 산만하다. 필사로 심신안정을 취한다. '쓰는 사람의 문장 필사'를 펴고 '소설만세'의 문장을 따라 쓴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방해만 될 뿐이다. 마음이 있다면. 그것에 사랑이 있다면 읽거나 쓸 것이다. 어떻게든 읽기를 향해 쓰기를 향해 나아가려고 애를 쓸 것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바게트씨는 변덕스러운 자신에게 하는 얘기 같아 큭큭 거린다. 들켰다. 필사문장 아래에 '고속버스와 기차와 지하철에서 읽고 쓰기' p.174라고 적혀있다.
생각은 자꾸 건너뛴다. 기차와 지하철이라는 단어에 잠긴다. 바게트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여행할 때 기차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재미가 솔솔 함을 알고 있다. 기차 안은 독특한 집중력과 분위기가 있다.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도 그 지역의 카페에 앉아서 하는 독서는 별미다. 관광이 아니라 여행지에 머무는, 시간의 흐름이 좋았다. 천천히 흘러가는 고여있는.
문장에서 책 전체가 궁금해진다. '소설만세' 분명히 읽었는데 어디 갔을까. 아뿔싸 책장의 이동으로 뒤죽박죽이다. 등잔 밑도 어둡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듯, 눈앞에 있어도 알아채지 못할 형국이다. 행방을 찾기 어려운 책, 괜찮다. 바게트씨는 찐빵씨에게 위스키장을 허함으로 도서구입에 대한 잔소리박탈권을 얻었노라. 책의 오리무중은 찐빵씨와 바게트씨의 평등한 취미생활을 위한 비둘기가 되었다. 바게트씨의 띠지를 단 새는 돋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