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까먹고 만다. 잘 놓아둔다고 챙겨놓으면 그 잘 놓아둔 장소가 생각나지 않는다. 서랍 안에도 없고 어디 갔을까. 책과 노트를 담아둔 바구니를 쏟아냈다. 재활용 종이 상자에 볼펜 색펜을 꽂아두었는데 그 사이에 있었다.
방송대를 다녔다. 일을 하면서 늦은 나이에 하는 공부라서 시간이 걸렸다. 공부도 나이가 있다는 말은 기억력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는 두세 번 보면 외웠을 것을 나이가 들어서는 입에 달달 외워도 자고 나면 잊어버렸다. 이해시간은 빠르나 시험을 보기 위한 암기는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했다.
젊었을 때는 어른들에게 들어도 귀등으로 넘겼으니
경험을 해보고서야 후회의 무릎을 친다.
그 공부도 한 학기를 남기도 중단했었다. 바쁜 몇 년이 지나고 마무리는 해야 되지 않겠냐는 남편의 말에 오십이 넘어서 복학을 했다.
시험을 치러 갈 때면 외웠던 것이 자꾸 미끄러지듯 지워져 떨렸고. 과제를 낼 때면 머리를 쥐어짜고 다 쓴 것을 수정하다가 날려 버기도 했다. 그러면 아들 딸을 부르며 "엄마 어떡해. 이게 사라졌어." 한숨을 쉬면, 둘이서 이것저것 만져서 파일을 복구해 줬었다. 어렵게 학점을 채웠다.
힘들기도 했지만 성취감이 좋았다. 졸업을 앞두고는 다음엔 뭘 배워야 할지 생각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 소설을 썼다. 수준이 어떻든 반 아이들이 돌려가며 내 글을 읽었다. 쓸 때의 기분이 좋았다. 얘기가 막힐 때는 답답하다가도 한순간 풀리면 쓱쓱 써 내려가던 연필의 감각이 좋았다.
어른이 돼서는 당치 않는 일이라고 포기를 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마찬가지지만.
글쓰기를 배워보고 싶어졌다.
"엄마 사이버대 문창과 가볼까 해."
딸아이가 방송대 졸업 선물이라며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만년필이었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시대지만 만년필은 글 쓰는 사람의 품격처럼 느껴졌다.
'와, 고마워라 아까워서 어찌 쓸고. 나중에 책 내면 사인할 때 써야겠다'
시작도 전에 헛물 키는 일인 줄 알지만 이런 허풍은 때론 유쾌하게 한다.
그 만년필을 정말 아까워서 사용을 못하고 있었다.
필사를 하다가 문득 생각났다. 모셔두라고 받은 선물이 아니지 않은가. 주변을 홀딱 뒤집어서 찾아냈다. 한참을 그냥 놔둬서 펜촉 끝의 잉크가 말라있었다. 작은 그릇에 물을 담고 촉을 물 표면에 대자 잉크가 여리고 가늘게 선을 그렸다.
몇 글자 쓰면 또 잉크가 안 나와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
만년필은 나의 글쓰기와 닮았다. 너무 오래 안 써서 자꾸 막혀버리는.
선물을 받았을 때 부풀었던 기분과 아이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날을 나에게 다시 선물한다.
물에 촉을 대지 않아도 술술 잘 나오는 만년필의 날을 상상하다가 푼수처럼 설렌다.
운동선수가 꿈이었던 사람이 중년이 되어서 다시 도전한다 생각해 보면 20대의 몸을 따라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꼭 일등이고 최상이어야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단계마다 성취의 기쁨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