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던 책을 마무리하지도 못했는데 어제 도착한 새 책을 펼친다. 궁금하니까. 당신의 세계가 궁금해요.
책 서두에 적혀있는 작가의 말 중 '카페의 구석자리에 앉아 이 글을 씁니다. 이곳에서 절기 편지를 시작했습니다'에 밑줄을 긋는다. 슬쩍 빰에 웃음이 머물다 간다. 로망, 내가 가지고 싶었던 장면이다.
창 넓은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고 몰두하는 일, 가끔씩 고개를 들고 목을 좌우로 어깨를 앞뒤로 움직이며 근육을 푸는 일, 집중에서 벗어난 멍한 느낌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일. 그러다 식은 커피를 홀짝이는 일. 언젠가부터 바람이었다.
어쭙잖은 낭만적 상상이라는 걸 알지만 반복해서 이미지를 그리다 보면 뜨끈한 감정이 부풀어 오른다. 지난여름이었다. 약속 없이 혼자 카페를 갔다. 생각보다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사람이 별로 없고 테이블 간격이 적당한 곳을 찾았다. 자주 지나가는 길인데도 카페를 찾으려 엿보는 일은 설레었다. 막상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는 ㅡ음악이 내 취향이 아니어서, 노트북 화면에 첫 줄이 쉽게 써지지 않아서ㅡ 견딜 수 없이 불편했다. 어색함을 털어내려고 여물지 않은 생각을 좌판으로 찍어댔다. 바로 치워내야 할 토사물 같은. 몸에 배여있지 않은 행동은 카페에 혼자인 마음과 근육을 굳게 했다.
10여 년 전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을 즈음이었다.
독서는 일상의 돌파구였다. 수필 속 공원에서 책 읽는 작가의 모습에 매료되어서 시간이 나면 꼭 해보리라 생각했다.
동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넓은 공원, 그곳을 산책하며 책을 읽는 게 바람이 되었다. 그때 청취하던 라디오가 있었는데 그 말랑한 기분을 나누고 싶어서 사연을 보냈었다.
공원에서 책을 읽는 것이 로망이라고 적었다. 돌아온 DJ의 답변은 독서는 습관인 것 같다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읽는 것이라고 했다.
아는대요. 나도 그거 알거든요. 그저 바쁜 일상의 틈에 바람 쐬고픈 소망도 함께였다고요. 그걸 알아봐 주면 안 되나요. 나의 표현력이 부족한 탓이었겠지만 기대했던 공감이 없어서 다소 쓸쓸했다.
어쨌든 날씨 좋은 날 공원에 갔고 책을 읽었다.
책 위에 드리운 나뭇가지의 그림자. 머리칼을 스치던 바람. 좋았다.
문제는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공원에서 굳이 책이란 걸 봐야 해? 주변의 생각들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걷고 의자에 앉아 서로 얘기 나누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해, 무슨 유난이니, 여기는 영화 속이 아니란다, 하고.
공원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내가 하면 왜 겸연쩍을까. DJ의 말처럼 습관이 안 돼서였을까.
마음 편한 곳은 집이지만 지금은 기다려야 하는 장소 어디든지 책을 읽을 수 있다. 식당 안 어수선한 대화 속에서도 책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반복은 몸에 맞는 행동이 되었다. 독서에 비해 글쓰기는 한 참 이력이 짧다.
아직 품이 큰 옷이다. 편안한 패션은 자주 입어야 한다. 몇 번이고 낯선 동작을 해야 한다. 카페에서 있어도 자연스러운 시간이 되기까지.
'속초는 꿈도 목표도 아니었다는 걸.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장소가 아니었다. 혼자서 속초 바다까지 가는 나였다'
( 최진영 '어떤 비밀' 31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