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냉장고

by 은규

우리 집은 남향이고 보일러를 세게 틀어.

낮에 퇴근을 하고.

현관을 지나 거실문을 열고 들어서면 햇살이 거실 안에 가득 차 있어. 빛이 바닥의 절반까지 드러누워 있지. 아 따뜻해. 햇볕이 들어선 그곳에 한 참을 서 있는다.

아니? 발가락은 그제야 더 시리다는 걸.

내복을 입고 파커 오리털로 몸을 감쌀 때 발은 얇은 면조각과 단단한 신발안에서 냉기를 감당하고 있었다는 걸. 그래서 가장 느리게 녹나 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도 발은 아직도 차가워.

따뜻해진 손으로 발가락을 꼭 쥐어본다.

공기는 약간 차가워야 정신이 맑고 난방비도 절약해야 된다지만, 집의 따뜻함은 오늘을 녹이고 내일의 몸을 만들거든.


새벽 3시 30분.

이불에서 나와 거실의 불을 켜면 옷 속에 스며드는 살짝 냉랭한 공기. 가스를 켜서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잠들었던 온기를 깨운다. 가장 빠르게 공기를 데우는 방법이다.

겉옷을 챙겨 입고 주전자가 뿜어내는 따뜻한 김을 등뒤에 놓고 책을 읽는다. 15분. 참 달지.

새벽 시간은 유난히 빠르다.

머리를 감고 때론 도시락을 싸고 새벽 4시 30분 집을 나선다.

내일의 몸이란 이 시간을 위한 거지.

온기를 품고 있는 몸은 겨울에 부드러운 막이 된다.

예열을 해도 자동차의 시트는 차갑다

엉덩이에 열기가 고일 즈음이면 사무실에 도착한다.

도시 불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창고들의 형체만 우뚝우뚝 솟아 있다. 스위치함도 성에가 끼어있다

창고 자물쇠는 입술처럼 쩍 붙어있다. 말을 해 보렴. 열려라. 주문을 외듯 비밀번호를 돌린다.

방금 켜진 불빛도 냉기에 힘 겨운 듯 흐릿하다.

컨테이너로 짜인 사무실로 들어선다.

밤 동안의 겨울이 고여 있었던 곳,

냉장고 안에 들어선 것 같다.

움직일 때마다 밀폐된 차가움이 인기척에 움찔한다.

코일난로를 켠다.

빨갛게 반칸이 열을 낸다.

이곳의 전기 용량은 컴퓨터와 전등과 난방기구를 동시에 감당하기에는 너무 낮다.

추위를 피하려 난로를 강으로 올리면 차단기가 내려간다.

좌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곱는다.

이 정도면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인가.

구두쇠여서라면 서글펐을까. 직원이었다면 춥다고 그만뒀을까.


추운 곳의 풍경을 생각한다. 거기서 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통영의 시장이 그랬다. 좁은 골목을 돌아서자 눈앞에 열린 지붕 없던 어시장. 갑자기 쏟아지던 소음. 무릎마다 작은 난로 옆에 두고. 차갑게 일렁이던 빨간 대야의 물. 버둥대던 물고기. 얼어서 여러 번 터져 거칠어진 손.


사무실 난로에 오그라진 손을 쬔다. 소망을 쬔다. 단란한 저녁밥상을 쬔다.

여기는 삶을 신선하게 지탱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