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 이유
어느 날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원체 가볍고 힘없는 모발이라 숱이 적은 게 고민이었지만 머리를 감을 때마다 혹은 머리를 말릴 때마다 눈에 보이는 양이 더 많아졌다. 속으로 ‘혹시 이거 제대로 안 먹어서 그러는 건가..?’ 싶어 덜컥 겁이 났고,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오랫동안 채식을 해온 어느 부부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동안 인스타그램이나 다른 비건 관련 콘텐츠에서 봐오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적당히 균형 잡힌 몸, 생기 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누가 봐도 영양학적으로 불균형해 보이고 탄력 없이 마르기만 한 모습이었다.
그 사진은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놀랐던 이유는, 그동안 내가 너무 편협하게 비건에 대해 좋은 점만 쏙쏙 골라 적용한 게 아닐까- 하는 이유에서였다. 사람의 몸은 다 다르기 마련인데 비건이란 그 식단 혹은 생활방식을 너무 고집했던 것이다. 어느 한 가지가 모든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는 없는 법인데.
비건의 좋은 점만 보고 안 좋은 점은 눈을 가리고 보지 않았던. 오로지 원하는 것들로만 채우던 날들이었다.
당연히 그 기사는 오랜 채식으로 인한 부부의 신체상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고 그 부작용은 나에게도 나타났다.
바로 탈모.
이전과 달리 머리 빠지는 게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많아졌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른 요인은 없었다. 균형 잡힌 식단으로 영양소를 잘 섭취해 왔다고 자부했는데 (비건의 단점이라고 꼽히는 필수 영양소의 부족으로 인한) 불균형이 이제야 나타난 것이었다.
겁에 질린 나는 당장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 그다음엔 두 번. 횟수를 점차 늘려 삼사일에 한번 먹게 되었고 지금은 아무 제한 없이 고기를 소비하고 있다.
한때 비건인이었던 나는
반 년동안 많은 것들을 느끼고 경험했다.
비건 식단을 도전하면서 그 안에서의 다양성에 놀랐고. 몇 년 동안 시달리던 생리통이 사라졌으며 혈색이 좋아졌고. 무엇보다 의지를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 성취감을 가장 크게 느꼈다. 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다 온 느낌이다.
나에겐 신기하고 소중한 경험이었고 만약 누가 해보고 싶어 한다면 적극 추천한다. 비건을 실천하면서 내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고 알아가는 것이 정신없는 세상 속 작은 불빛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