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문제이지만 일부 전문 분야 언론에서만 짚고 넘어간 법률 조항 신설 건이 있었다. 민법에 인격권 조항이 신설되었고 국무회의에 통과되었다는 것이다. 뉴스를 찾아보니 아직 국회에 통과하지는 못한 것 같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법 제3조의 2(인격권)
1. 사람은 생명, 신체, 건강, 자유, 명예, 사생활, 성명, 초상, 음성, 개인정보, 그 밖의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2. 사람은 제1항의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이하 "인격권"이라 한다)를 침해하는 자에게 침해를 제거하고 침해된 인격적 이익을 회복하는 데 적당한 조치를 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
3. 사람은 인격권을 침해할 염려가 있는 행위를 하는 자에게 침해의 예방이나 손해배상의 담보를 청구할 수 있다.
법무부 보도자료를 보면 '디지털성범죄, 학교폭력, 불법촬영, 개인정보 유출' 등 인터넷을 매개로 한 범죄를 대상으로 짚고 있다. (참고 링크 : https://www.moj.go.kr/moj/221/subview.do?enc=Zm5jdDF8QEB8JTJGYmJzJTJGbW9qJTJGMTgyJTJGNTc3MDQzJTJGYXJ0Y2xWaWV3LmRvJTNGcGFzc3dvcmQlM0QlMjZyZ3NCZ25kZVN0ciUzRCUyNmJic0NsU2VxJTNEJTI2cmdzRW5kZGVTdHIlM0QlMjZpc1ZpZXdNaW5lJTNEZmFsc2UlMjZwYWdlJTNEMSUyNmJic09wZW5XcmRTZXElM0QlMjZzcmNoQ29sdW1uJTNEJTI2c3JjaFdyZCUzRCUyNg%3D%3D)
나는 이 조항이 현대 문학에서 표현 및 창작의 권리와 관계가 있다고 보고 2022년부터 관련 내용을 가르쳐오고 있다.
관련 내용을 가르치게 된 동기는 몇 년 전 미디어문예창작학과의 모 학부생의 리포트를 읽고 나서다. 법조계에 종사하는 이 학생은 소설가를 지망중인데 각종 판례를 보면 웬만한 소설 못지 않게 흥미로운 내용이 많으니, 그것을 그대로 소설로 쓰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물론 판례를 소설로 '가공하는' 것과 그대로 쓰는 것은 천양지차다. 그런데 이 학생이 후자대로 생각한다면 나는 그가 소설가는 물론 법조인으로도 실패라고 본다. 재판공개주의의 취지는 소송의 과정이 청탁이나 비리의 여지 없이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 과정이나 결과가 재판의 목적, 즉 정의의 실현과 무관하게 전용되어도 좋다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실제 일어난 사건과 인물을 그대로 창작에 집어넣는 것은 기존 문단의 상식에 맞지도, 도의적으로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들이 있지만 그런 경우 명예훼손죄로 처벌받거나 문단에서 퇴출되었다. 해당 작품도 폐기 처분을 받았다.
최근 들어 자신이 다니던 회사와 직장 동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소설로 써서 신춘문예에 당선되거나 편집자와의 지극히 사적인 대화를 그대로 소설에 집어넣어서 작품이 폐기되는 등의 사건들이 일어난 바 있다. 전자의 경우는 사인의 인격뿐만 아니라 회사라는 법인격도 피해 대상으로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모 인터넷 문서에서는 표절로 지적했지만 해당 사건은 표절이 아니라 인격권 침해로 보는 쪽이 옳을 것이다. 표절의 대상은 저작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해당 조항의 의미는 간단하다. 첫째로 이제 법도 사회도 변했다. 그러니 실재하는 인물, 사건, 상황 등을 그대로 문학작품 속에 집어넣는 행위는 도의적 문제뿐만 아니라 법적 문제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예상할 수 있겠다.
1. 특정인(법인 포함), 사건, 상황 등이 불특정 다수 / 특정 소수 / 특정인의 주변 환경 및 인물 / 특정인이 '이것은 특정인이다'라고 인지할 수 있는 형태로 문학작품 속에 재현되었을 때
2. 재현되기 전에 특정인과 합의를 거치지 않았을 때
3. 합의를 거쳤더라도 재현 결과에 대해 특정인이 자신의 인격권 침해를 제기할 때(이 부분이 가장 어려울 듯)
덧붙여서 외국의 경우 전문 작가에게 자서전 집필을 맡기고 출판한 후에도 그 내용이 인격권 침해 우려가 있다고 하여 벌어지는 소송이 제법 있다. 즉 2번을 충족하더라도 3번을 충족하지 않으면 다툴 여지가 있는 것이다.
둘째로 짚을 부분은 해당 조항의 인격권은 '인격적 이익'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이 이익의 침해를 '예비'하여 예방하거나 '담보'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인격권을 일종의 재산권으로 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범위가 상당히 모호하다. (사실 시작의 시작에 불과한 조항이니 모호할 수 밖에 없지만)생명, 신체, 건강은 그렇다쳐도 자유, 명예, 사생활, 성명, 초상, 음성, 개인정보, 그 밖의 인격적 이익까지 명시했기 때문에 범위가 대단히 넓고 경계도 애매하다. 일단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그물을 최대한 넓게 쳤다고 읽게 된다. 앞으로 판례로 보완될 것이지만. (고로 판검사 변호사들의 머리가 터져나갈테니 수많은 법학 논문이 필요할 듯)
셋째, 표현과 창작에 있어서 각 분야마다 그 정의와 역사, 취지, 맥락, 관행 등이 모두 다른데다 법조인들은 자기 분야 공부하기도 바빠서 문학예술 잘 모른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각기 다른 분야에 관심가진 전문가들의 소통이 필요하다(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법만 알아서는 재판에 이길 수가 없다. 작품과 실재의 세부를 맥락 속에서 하나하나 늘어놓고 예술적으로, 법률적으로, 사회적으로 세분하여 분석해야 한다. 그것이 어떻게 인격적 이익과 연결되는지도 따져야 한다. 게다가 인격적 이익이란 계층과 젠더, 연령, 직업, 지역, 국적, 성정체성 등등 개인차와도 직결된다. 개인차에 따라 인격적 이익이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인격권이란 한국 사회에서 아직 생소한 분야지만 앞으로 점점 중요해질 것이고, 이 분야에 적절한 소양을 갖추지 못한 작가는 활동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문학적 가공이 들어가야 인격권 보호가 가능할지 작가마다 견해가 모두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무한의 자유라는 것은 사회에서 불가능하다. 표현 및 창작의 자유는 물론이고 인격권 보호의 자유도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인격권 침해로 여겨지는 케이스들이 의외로 문학 분야에서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지켜보는 부분이다.
보충 1 : 인격권 조항이 일단 생겼지만 침해되는 이익의 경계나 실제 산정할 수 있는 손해배상 금액이 모호하기 때문에 앞으로 재판으로 다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작품 속 재현 대상의 원본이 고소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고, 고소인과 피고소인 사이에 그 재현대상에 대한 정보가 교환되었다는 사실도 같이 입증해야 한다. 이거 어렵다. 게다가 한국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없다.
2 : 인격권 침해를 당한 사람이 사회적 약자일 경우 본인의 침해 사실도 잘 인지할 수 없을 수 있고 인지한 후에는 시효 등이 지나 있을 수 있다. 가령 어린이라면 성인이 된 후에나 다툴 수 있다. 이러한 경우들은 어떻게 다툴 것인가.
3 : 문학 이론에 비춰볼 때, 사실 이 문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하면 안 되는 것'이라서, 해당 이론이 오히려 별로 없기도 하다.(혹 있다면 제보 좀 부탁) 그런데 이렇게 사고(?)가 자꾸 나니, 오랜만에 이론적 정비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왜 하면 안 되는지, 어떻게 사회와 부딪치게 되는지, 문학 내적으로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지 - 이른바 재현과 실재의 관계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거기에다 근현대 문학이론이 큰 관심이 없는 분야, 즉 독자의 해석과 수용도 사실 중요한 문제다. 작가론, 작품론은 흔해도 독자론은 많지 않은 이유다. 평론가가 아닌 일반 독자가 재현과 실재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양상도 이론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