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yon Feb 27. 2021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우리 수묵화의 철학과 깊이

서양 미술과 동양의 미술의 차이는 여백의 미에 있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듣곤 했다. 서양의 휘황찬란한 색깔과 다양한 소재에 익숙해져 있는 나는 동양 미술에서 나타나는 여백의 "미", 그리고 다양하지 않은 색깔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이번 책을 통하여 그 안의 철학과 깊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P.26
옛사람들은 그래서 사물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보았다. 마음을 그리는 것이었으므로 눈에 보이는 형태 그 자체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며, 특히 현상 속에 드러나는 색채 효과에 집착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정신 풍토는 결국 점차 색깔을 배제하고 '수묵으로 그린 작품'에 대한 사랑을 배양하게 되었다.
...
수묵화는 사물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가능케 한다. 수묵화는 회화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양식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정신적인 것이다. 그것은 명상을 낳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절이나 궁궐에 단청이 있고, 다양한 색깔의 한복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색이 없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왜 유독 그림에는 색이 없었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색이 없는 수묵화를 보아도 나는 그 색을 보고 있었다. 먹색으로만 가득한 수묵화를 보아도 그려진 풍경이나 사물의 색이 떠오르고 여백이 있어도 그 공간을 채우는 배경, 느낌, 감정 등이 전해지고 있었다.


이를 가장 크게 깨닫게 한 작품이 김홍도의 <주상관매도>이다. 그리고 이 그림과 함께 전해지는 시조가 있다.


봄 물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가 물이로다
이 중에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김홍도 <주상관매도>

어느 봄 날- 술 상을 담은 배가 강물을 따라 흐르는데 안개가 자욱하여 저 언덕 위에 꽃나무만이 살짝 보이는 풍겨을 담았다. 이 때 여백이 그 안개를 표현하는 듯, 늙은 선비의 서글픔을 전하는 듯, 또 취기의 몽롱함과 봄 날씨의 나른함을 전하는 듯 하다. 또한 꽃나무를 사실은 늙은 선비가 보는 시선으로 그려서 마치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선비가 되게 한다.


이러한 여백의 미와 서양미술과 같이 사실적인 풍경을 담기 보다는 다양한 시선을 담은 것에 더해서 수묵화의 또다른 묘미를 발견할 수 있었던 작품은 김유성의 <설경산수도>와 정선의 <인왕제색도>이다.

김유성 <설경산수도>
정선 <인왕제색도>

<설경산수도>에서는 하늘과 눈이 쌓이지 않은 부분을 칠하여 마치 눈이 나뭇가지와 길에 쌓인 느낌을 온전하게 전해주고, <인왕제색도>에서는 큰 비 뒤에 생긴 물안개를 옅은 색으로 칠하고 그 속의 소나무를 짙게 표현하여 물안개에 휩쌓인 인왕산을 표현한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소복히 쌓인 눈과 촉촉한 물안개를 느끼고 이 작품 속의 색깔을 상상하여 볼 수 있게 한다.


마지막으로 수묵화의 묘미로 묵선의 굵기에서 전해지는 느낌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김홍도의 <무동>을 소개하면서 "다른 악공들의 옷주름의 주름선은 대체적으로 굵기의 변화가 적지만 소년의 옷주름으니 팔꿈치나 손목과 같이 선이 꺾어나가는 부문에서 묵선이 우뚝우뚝 서면서 기운이 뭉쳤으며 윗몸에 두른 끈이 바람에 날리는 부분이나 빨간 신발의 윤곽산에 잘 보이듯이 선이 매우 빠르고 탄력이 있다"고 하였다.


김홍도 <무동>

그러고보니 수묵화는 그림에 대체적으로 스케치선들이 모두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던 - 바깥 선들이 있어서 서양화와 다르게 그림이 평면적이긴 하지만 작가가 원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다시 인왕산으로 돌아가면 강희언의 <인왕산도>는 얇고 균일한 묵선으로 사실적이면서 정갈한 느낌을 주지만,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다양한 굵기의 선들로 짙은 물안개 속의 거친 산을, 폭포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당시 정선이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가장 친한 벗인 이병연이 사경을 헤매던 시점이라, "궂은 날씨 속에서 사경을 헤매는 벗을 생각하며 정선은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조급한 마음으로, 이제 막 물안개가 피어올라 개어가는 인왕산처럼 이병연이 하루빨리 병석을 털고 일어날 것을 빌면서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강희언 <인왕산도>

그 외 여러 우리 옛그림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다. 옛날 사람들은 그림을 "보는"게 아니라 "읽는"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 그래서 책으로 만들기도 하고 접고 다니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글을 읽는 것 처럼 그림도 오른쪽 상단부터 왼쪽 하단 순으로 그림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얼굴만 있어서 사실적이면서도 무서운 인상을 주는 윤두서의 <자화상>은 사실 원래 몸 부분도 있었다고 한다. (1937년 조선사편수회에서 편집하고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사료집진속>에 있던 사진속 작품에 따르면) 몸 부분을 유탄(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숯)으로 그리고 미처 먹선을 그리지 않아 유탄 부분이 지워졌다고 한다.

윤두서 <자화상>


매거진의 이전글 <코뿔소 가죽> 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