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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영혼 Apr 15. 2020

파킨슨병과 함께 살아가다.

엄마에 대한 단상 3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응급실과 병원을 오가야 하는 상황에서 동생은 지칠 만도 했다. 대한민국 전체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숨죽여 지낼 때 동생은 오히려 더 위험할지도 모를 병원에 평소보다 더 자주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바이러스에 감염이라도 되면 당뇨와 고혈압이 있는 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 동생은 당장 생계를 이어갈 작업실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까 본인 감염보다 더욱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동생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밤마다 동생을 괴롭히셨다. 혼자 계실 땐 하시던 것도 동생이 집에 있으면 못 하신다고 하시니 동생은 집에서 단 10분도 쉬지 못했다. 자려고 누웠을 때조차 동생을 계속 불러대니 동생은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엄마는 이유 없이 기력이 없고 몸이 안 좋아지시는 게 느껴지니 어떻게든 병원에 가시려고 하셨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이웃을 붙들고 병원에 보내달라고 하기를 여러 번이었다고 한다. 꽃샘추위로 싸늘한 아침에 옷도 제대로 안 입고 집을 나서기를 여러 번이라고 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엄마 얼굴을 아시는 옆 집 분께서 엄마를 급히 데려다주시기도 했단다. 지금 당장 가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씀드려도 막무가내셨다. 최근 9개월 동안 MRI며 CT를 두 번씩 찍고 피검사까지 모두 마쳤을 때도 병원에서는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인한 후유증이라고만 했다. 작년 9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엄마를 모시고 동생과 함께 정신건강의학과를 갔을 때였다. 전문의를 만나기 전 컴퓨터로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그 결과 우울증이 높은 단계로 나왔다. 그러나 직접 전문의를 만나 진료를 볼 때 당신은 전혀 우울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었다. 당신은 힘들다고 하는데 병원에 가면 모든 검사의 결과는 정상으로 나오고 우울증은 높은 단계라는데 본인은 우울이 뭔지 모르고 산다고 하니 원래도 그랬지만 엄마의 말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신경과 검사를 먼저 해 보는 게 좋다는 말을 들은 날, 진료의 끝에 기력이 너무 없으신 게 걱정이라는 동생의 말에 의사가 수액을 권해서 2시간여 맞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곧 카톡이 울렸다. 동생의 목소리와 표정이 카톡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1분에 한 번 꼴로 동생을 불러 몸을 반대로 돌려달라 다리를 올려달라.. 침대를 올려달라 내려달라 주문을 하신다는 것이다. 의사도 간호사도 계속 불러서 나중엔 그들도 엄마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는 것 같다며 수액이고 뭐고 그냥 집에 가겠다고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래도 2시간 수액을 다 맞고 집에 왔다고 한다.


  프랑스, 미국 그리고 한국 이렇게 세 나라에 흩어져 사는 우리 세 자매는 거의 매일 엄마 문제로 전화기를 붙들고 살았다. 카톡은 매일 울려댔다. 특히 미국 시간으로 새벽에 울리는 카톡은 무서웠다. 대부분 갑자기 응급실에 간다거나 하는 문자였기 때문이다.


  동생이 두 손 두 발 모두 들고 포기하겠다 했을 때 언니와 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누가 끊을 것인가에 대해 얘기를 하다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성인이야 마스크 쓰고 최대한 자발적 보호를 할 수 있지만 이제 겨우 만 4살, 1살 두 아이는 마스크를 가만히 쓰고 있을 리도 만무하고 15시간의 비행, 그리고 한 번의 경유를 안전하게 갈 리가 없었다. 도착한다 한 들 두 아이를 데리고 엄마를 간호한다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언니가 가는 게 낫겠다고 했다. 그러나 언니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감기로 보름 이상을 고생하고 있는 터라 목소리도 안 나오고 두통으로 힘들어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가면 14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데 집안에서 기저질환이 있는 엄마와 함께 아무리 조심한다 한들 그게 가능하겠냐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혹시나 잠복기여서 귀국행 비행기의 다른 승객이나 한국의 가족들에게 감염이 될까 걱정하고 있었다. 결국 셋이서 얘기하다가 언니나 혹은 나의 귀국은 답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다 한밤중에 엄마는 주무시던 침대에서 앉아 그냥 바로 큰 일을 보셨고 동생이 씻기도 닦이고 다시 뉘어 드린 후 정말 본인 혼자 하는 것은 무리라며 하소연을 했다. 답이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해외에서 들어가는 건 무리가 있어 보였고 동생도 물리적으로 24시간 붙어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 당장은 병원 입원만이 답이었다. 그리고 선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언니의 한국행 비행기를 탈 준비를 한다는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그때가 유럽에서 들어온 모든 입국자의 전수조사가 이루어지기 며칠 전 일이었다. 지인을 통해 힘들게 티켓을 끊었고 귀국행 비행기 안에서는 마스크 한 번 벗을 수 없는 만석이었다고 했다. 다행히 공항에서 확인한 체온은 문제가 없어 자가진단 어플 안내를 받고 귀가 후 14일간 자가격리를 잘하라는 상황이었다.


  언니가 한국에 도착한 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그 누구보다 동생이 큰 짐을 던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니가 도착한 지 이틀 만에 엄마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자살시도를 하셨다. 동생이 고양이를 키우면서 들여놓은 카메라는 움직임이 있을 때 알람이 뜨는데 그 알람 소리에 모니터를 보니 엄마가 서랍에서 스카프를 꺼내 둔한 움직임으로 목에 몇 번씩 둘러보시는 것이다. 봄이라 꺼내보시는가 싶다가 뭔가 서늘한 느낌이 들어 유심히 보는데 천천히 욕실로 들어가신 후 10분, 20분이 지나도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다행히 자살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다들 정신적 충격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여태 엄마에게 그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언니는 시차적응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오로지 마스크 하나로 본인과 가족들을 지키며 엄마를 돌보기 시작했다. 언니가 도착한 이후로 모니터링 카메라를 끄면서 나는 더 이상 밤에 엄마를 살피지 않아도 됐다. 언니와 동생이 엄마를 돌보니 고맙고 미안하면서 마음 한편은 편안했다. 모니터링을 하면서는 계속 노쇠한 엄마를 바로 대하는 것이 불편했는데 그 과정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반면, 언니는 현실과 맞닥뜨리고 동생 말로는 흔한 말로 멘붕 상태라고 했다. 프랑스에서 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엄마의 상황 때문이라고 했다. 애들 저녁 먹이며 한국 시간으로는 아침에 전화를 하면 엄마는 전화기 들 힘도 없다며 끊으라고 하셨고 그렇게 반복하기를 여러 번이었다. 언니가 도착한 이후로 더 그러시길래 내심 언니가 옆에 있어서 더 아픈 척하시는 건가 했다. 그리고 그렇게 열흘여가 되자 언니가 나에게 폭발했다. 엄마가 걱정되면 전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엄마가 끊으라고 해도 더 말도 시키고 말씀도 하시게 해야 엄마가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국에 언니가 프랑스에서 들어와 엄마를 돌보는데 언니에 대한 그리고 엄마에 대한 나의 태도에 단단히 화가 난 상황이었다. 언니가 가장 힘들다는 거 알고 애쓴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내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결국 그 이후로 언니와는 얘기를 안 한다. 자연스레 동생과도 꼭 필요한 거 외에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4월 7일, 엄마는 파킨슨병 초중기라는 진단을 받으셨다. 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이 컸다. 엄마의 충격은 더 크셨을게다.


  사실, 우리 세 자매는 엄마의 지나친 자기애와 공감능력 부족으로 그리 살가운 사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대화가 없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언니와 나는 하루에 한 번씩 한국에 있는 엄마와 화상통화를 했는데 언니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꽤나 의무적으로 전화를 했다. 나는 과거에 엄마에게 서운하기를 여러 번이라 꽤나 사무적인데 반해 언니는 엄마에게 부드러운 말로 대화를 오래 이어갔다. 어쩌다 한국에 들어가 엄마와 있을 때도 혹은 엄마가 미국에 와 몇 달 지낼 때도 언니와 엄마의 화상통화를 보면 언니는 꽤나 엄마를 잘 다루던 사람이었다.


  그런 언니도 엄마의 계속된 거짓말과 고집에 태도가 조금씩 바뀐 듯하다. 언니가 한국에 들어가 엄마를 돌보던 20여 일 동안 밤마다 동생에게 하시던 걸 이젠 언니와 동생에게 하며 두 사람의 피를 말린다고 한다. 게다가 파킨슨 진단 후 처방약과 함께 꾸준한 운동을 병행하라는 의사의 강한 권유에도 힘들다며 안 움직이시다 허리의 압박골절로 당분간 움직이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청개구리처럼 이제는 더 움직이시려 한다니 옆에서 돌봐주는 사람들은 지치고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얼마 전엔 갑자기 코에 난 상처에 대해 언니가 때려서 그랬다는 황당한 거짓말로 언니와 동생이 기가 막혀했다. 이런 일은 너무 비일비재해서 언급하기엔 너무 사소하다.


  이런 엄마를 어떻게 간호해야 할까?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면 안 하시고 운동을 하지 말고 쉬라면 더욱 움직이시려 하니 옆에서 도와주는 언니와 동생은 몸도 마음도 지친다. 아주 작은 것조차도 스스로 안 하시려 하니 더욱 그러하단다. 하루 세 번의 양치질도 본인이 안 하시려 한다니 나으실 의지가 있는 건가 싶다.


  나는 미국에서의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아이 둘을 데리고라도 한국에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알 길이 없다. 코로나 팬데믹에 이어 엄마의 파킨슨병으로 우리 셋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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