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집에만 갇혀 지냈나...
봄이 왔나 싶었는데 여름 같기도 하다. 뒷마당 나무들에도 연한 초록잎들이 무성해지고 있다. 워낙에 추운 겨울이 없는 휴스턴이긴 하지만 겨울이라는 이름값 하려고 뒷마당 나뭇잎이 죄다 떨어져 앙상했었다(이 곳의 겨울은 한국의 늦가을 정도 되는 날씨가 열흘 정도 될까.. 그 외에는 거의 1년 내내 반팔을 입고 지내도 무방한 곳이다.). 그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파릇파릇, 초록초록 잎들이 부드러운 봄바람에 흩날리는 소리로 잠시나마 마음이 도톰해진다.
요즘은 수시로 울컥한다. 파킨슨병으로 병원에 누워 계신 한국에 있는 엄마와 전화통화 끊고 나면 울컥하고 한국에 있는 언니와 동생과 편히 통화하기 힘든 내 마음에 또 울컥한다. 그러다가도 한국의 뉴스를 보면 자랑스러워서 울컥하기도 하고 새벽부터 깨서 서로 잘 노는가 싶다가 금세 투닥투닥 거리며 울어대는 소음에 또 울컥한다. 첫째가 한국 나이로 6살, 둘째가 3살인데 첫째는 여전히 밤에 한두 번씩 깨서 안방으로 건너오는 터라 쪽잠 자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나는 아침 6시도 전에 깨서 놀자는 아이 둘이 이제 슬슬 버거워진다. 떨어져 지낼 틈이 없다. 집에서만 지낸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니 조만간 머리에 꽃이라도 꽂고 이 구역 미친년은 나야 하며 동네를 미친 듯이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아... 뛰기엔 체력이 좀 저질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지 남편 일이 줄어 일찍 퇴근하니 지난달은 살만 했는데 이제 일이 조금씩 늘어 예전의 퇴근시간에 집에 오니 오히려 더 힘든 기분이다. 한국은 5개월을 버티고 이제 5월 중으로 학생들의 모든 등교가 이루어진다니 한국에 계신 모든 학부모님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니 지금까지 2개월에 더해 앞으로 4개월만 더 버티면 되니 나는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3월 초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을 때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서웠다. 나와 아이들이야 집에만 머무니 걸릴 확률이 희박하다지만 남편이 직장이나 밀폐된 출퇴근 통근 기차에서 걸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으로 매일 긴장하며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편이 걸리면 자가격리할 공간이라고는 안방뿐이고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집안에서 겹치는 동선들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이 모든 것이 지나친 걱정이었지만 지금은 또 다른 불안감이 엄습해오고 있다. 여전히 감소 추세를 보이지 않는 확진자와 사망자수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거리 유지를 위해 문을 닫았던 가게들은 다시 문을 열 수 있도록 하는 행정명령이 시행되는 주가 하나 둘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휴스턴도 5월 중순부터는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열 수 있도록 했다. 제2의 웨이브가 6월에 나타날 거라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주들은 해변도 다시 대중에게 열었는데 시행되자마자 바닷가는 그동안 누리지 못 한 자유를 누리러 나온 사람들로 바빴다고 한다. 자유를 달라며 총을 들고 의회를 점거하며 시위를 하는 자들도 있으니 무식하면 용감한 것인가 싶기도 하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지금은 포기해야 할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기도 했다.
거의 두 달 동안 마트라고는 가 본 적이 없었는데 지난 주말, 마트에 장 보러 나가며 남편이 아이 둘에 나까지 같이 가자는 도발과도 같은 제안을 했다. 물론 마트 안에는 데려가지 않고 날씨가 좋으니 드라이브도 할 겸 나가서 나와 아이 둘은 동네 놀이터에서 본인이 장 볼 동안 놀고 있으란다. 아이들도 좋아할 듯하여 그러겠다고 했는데 막상 동네 놀이터 두 군데를 가 보니 여전히 노란색 테이프로 그네며 미끄럼틀 등을 꽁꽁 싸놓은 상태다. 헛걸음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다시 20여분 차를 몰아 장을 보려는 한국 마트 근처 놀이터에 갔더니 우리 동네와는 달리 오픈되어 있었다. 농구장 2-3개 크기의 아주 큰 놀이터였는데 (놀이터라기보다는 숲 속에 놀이기구가 듬성듬성 많이 놓여있는 구조) 커다란 놀이터에서 다른 두 가족과 꽤나 먼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각자 마스크를 쓰고 놀았다. 날씨는 어찌나 화창하던지 집 뒷마당에서 바라보는 하늘이랑 집을 떠나 바라보는 하늘은 기분 탓이겠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그날따라 하늘은 어찌나 파랗고 이쁘던지... 바람은 또 왜 이리 살랑살랑 부는 건지... 1시간이 넘어갈 즈음 애 둘은 점점 망나니로 변해가고 집에 가자고 징징거리는 첫째를 겨우 달래다 나도 지쳐갈 즈음 남편으로부터 장을 다 봤다는 연락이 왔다. 이미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는 터라 Costco는 다음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들른 동네 마트에서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했다. 3월 초, 팬데믹이 터지기 직전 들렀던 전쟁통과도 같은 마트의 상황만 머릿속에 있었는데 사재기로 텅텅 비어있는 모습은 사라졌고 꽉꽉 들어찬 물건들로 보는 번개처럼 서두른 쇼핑이었지만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장을 봐야 하지만 이 정도쯤이야. 시리얼, 물 등은 이제 더 이상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 내 육류 가공 공장 내에서 직원들의 감염과 사망이 증가하여 가동할 수 없는 공장이 늘어나면서 육류 구입에 대한 제한이 시작되었다. Costco의 경우는 1인당 3팩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부분의 마트들이 마스크를 쓰고 입장하도록 강하게 권고하고 있는터라 마스크 없이 장 보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계산할 때 거대한 플라스틱 패널로 멤버십 카드를 어찌 줘야 하나 잠시 망설이는데 패널에다가 바코드가 보이도록 카드를 가까이 대란다. 그리고 아주 익숙하게 플라스틱 패널 너머로 스캔을 했다. 한 사람 계산이 끝나면 소독만 하는 직원이 옆에서 대기하다가 바로 투입되어서 스프레이 뿌리고 빡빡 닦으면 다음 사람이 계산대로 자리한다.
지난 주말, 첫째 프리스쿨 담임이 11명의 학생들과 Zoom이라는 어플로 화상통화를 하자고 다시 한번 제안했다. 지난달에 했던 화상통화는 30분 내내 산발적으로 떠들며 화면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11명의 아이들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에 다시는 화상통화를 하자는 제안이 없을 줄 알았는데 용감하게 2차 화상통화를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또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아침 10시에 접속했다. 다행히 방법을 바꿔 "가장 좋아하는 인형을 가져오라" 거나 "본인의 베개를 가져오라"는 식의 간단한 지문에 따라 아이들이 동시에 움직이게 했더니 한결 정리된 상태에서 30분간의 화상통화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여전히 소리는 겹치고 알아듣기도 힘들지만 오랜만에 서로 얼굴도 보고 인사도 하니 아이도 즐거워한다. 물론 그 시간이 20분을 못 넘기고 계속 언제 끝나냐고 노래를 부른다. 오히려 둘째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랜만에 바깥 외출에 사람들도 구경하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아이 둘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붙어서 지내는 것이 과연 나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니 그전에 내 아이 둘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도 고민하면서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적당히 타협하며 지내기로 했다. 앞으로 넉 달을 더 이렇게 지내야 하니 집에서 티브이도 보여주고 불량스러운 것도 먹이면서 말이다. 코로나 이전의 삶은 없다 했으니 새로운 코로나 이후의 삶에 적응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