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코로나에 무뎌진다.
3월 12일부터 첫째 아이의 프리스쿨이 문을 닫았으니 어느새 42일째 집콕이다. 그것도 혈기왕성 19개월, 55개월 두 아이와 함께. 새벽 5시 반이면 병원으로 출근하는 남편이 아무리 쥐 죽은 듯 조용히 나가도 '우리는 엄마가 쉬는 꼴은 못 보겠다'는 일념으로 5분, 10분 시간차로 일어나는 두 아이 덕분에 남편 배웅 후에 엉덩이를 바닥에 댈 틈이 없다. 바로 두 아이를 데리고 거실로 나가 해도 뜨지 않는 새벽에 아침밥을 차린다. 무슨 새벽부터 그리 배가 고플까? 하루 세끼와 간식을 챙기고 매일 싸움꾼처럼 으르렁대는 두 놈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고함을 지르고 눈을 뒤집으며 혼내면 더 이상 소리 지를 힘도 없어질 즈음 저녁이구나 싶고 그제야 두 아이를 씻기고 눕힌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일상...
미국의 코로나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볼 때면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백만에 가까운 확진자에 5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라니... 나는 42일째 장도 보러 나가지 않았을뿐더러 (장은 오로지 남편이 본다. 마스크와 장갑 중무장을 하고 최소한 2주에 한 번 보려고 노력한다.) 두 아이와 남편 외에는 접촉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실 지금 미국의 현실이 다가오지 않는다. 한국에서 파킨슨병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신 엄마의 상황 또한 내가 미국에 살고는 있지만 미국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매일 병원으로 출근하는 남편을 통해 병원도 한산하다는 얘기를 들으며, 수술 케이스가 평소의 2-30%로 줄어들었다는 얘기를 들으며 혹시나 남편도 직장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다. 장을 보고 온 남편을 통해 마트에서는 마스크를 대부분 쓰고 장을 보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보름여 전에 접하면서 왜 이리 미국 정부의 대처가 늦은 것인지 한참을 얘기를 했다.
한국에 계신 엄마의 상황이 워낙에 위급해 최근에는 미국 뉴스를 볼 정신이 없었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금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준중환자실로 옮기신 상황이고 한국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면회는 금지된 상황이다. 게다가 보험공단에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 신청을 위해 연락을 했더니 코로나 바이러스로 병원 방문은 안 되고 오로지 가정 방문만 가능하다니 난감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언제 잠잠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엄마는 계속 병원에 입원한 상태시니 언제 즈음 집으로 퇴원해 등급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우리 집뿐만 아니라 많은 가정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난달 말, 코로나를 뚫고 한국에 들어간 언니가 없었다면 지금 동생 혼자 엄마를 보살펴야 했을 텐데 가히 상상이 안 간다. 언니가 한국에 있어 정말 다행인 요즘이다. 물론 엄마 옆에서 언니랑 동생이 힘든 거야 두말할 나위 없고 고마운 거야 내가 백번을 반복해도 부족할 테다.
여전히 확진자 수와 사망자수는 급격하게 증가하는데 사회적인 거리 두기는 조금 느슨해지고 있다. 검사역량과 병상을 확대한다고는 하지만 공원, 해변을 비롯해 식당과 심지어는 미용실, 영화관 등도 모두 다시 여는 추세이다. 남편이 일하는 병원도 수술 케이스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다만 달라진 것은 마스크 착용의 의무화다. 우리 가족이 거주하는 휴스턴 내 해리스 카운티의 경우는 만 10세 이상은 무조건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을 해야 하고 어길 시 벌금 1000불이 부과된다는 행정명령이 4월 27일부터 한 달간 발효될 예정이다. 마스크의 중요성을 매우 늦게 인정한 셈이다. 3월 중순에 남편이 장을 보러 나갈 때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나 역시 한 두 번 동네 마트에 갔을 때 마스크를 쓴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지금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인 것이다. 초반에 마스크를 쓰고 나갈 때면 이상한 눈초리들이 신경 쓰였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이번 학기까지는 문을 열지 않고 9월 새 학기가 시작될 때 문을 연다고 한다. 가을에 다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할 수도 있다고 하니 9월에도 학교에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20년이 이런 식으로 진행될 줄이야...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되는 건 아닌가 싶어 억울하고 불안한데 그렇다고 믿고 따를 정부도 없다. 미국 땅에서 살며 한 국가의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일 실감하고 있다. 며칠 전, 저녁 준비를 하며 우연히 라이브로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백악관의 브리핑을 보다가 이게 코미디인가 싶었던 경우가 있었다. 트럼프가 짧은 브리핑을 한 후 본인의 치적을 나열한 영상을 보여주는데 그 표정이 가관이었다. 몇 장면 보다가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붙들고 라이브를 껐다. 많은 국민이 죽어나가도 본인 브리핑 조회수나 실시간 시청자가 많으면 좋다는 대통령을 두고 뭐라 더 할 말이 없다.
사실 요즘 나는 무슨 정신으로 살고 있나 싶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외출은 못 하고 집 안에서 아이 둘과 복닥복닥 거리며 마음은 한국에서 파킨슨 진단 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시는 엄마와 그 옆에서 힘들어할 언니와 동생으로 혼란스럽다. 하루에도 몇 번씩 멍하니 있다가 옆에서 울어재끼는 두 아이를 보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가도 또 그러기를 반복이다. 내게는 늙어 병들어가는 엄마가 있지만 동시에 나만 바라보는 두 아이가 있다. 두 아이를 돌보면서 내 엄마가 나를 이렇게 키우셨겠지 싶고, 내 아이들이 지금의 내게 그러하듯 40년 전 어린 나에게도 엄마가 세상의 전부였겠지에 생각이 다다르면 아득해진다. 사람이 늙고 병드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지만 그러한 부모를 편히 가서 볼 수 없다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리고 헛헛하게 흐르는 시간이 잔인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