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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혜윰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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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쓰다 Feb 27. 2020

성가신 존재가 떠난 뒤

애잔한 마음이 드는 일.

 우리 가족을 괴롭게 했던 윗집이 이사 갔다. 분명히 성가시고 괴로운 존재라고 생각했던 그들이 떠났는데, 나는 자꾸만 가슴이 아리다. 그들이 처음 이사 온 날, 요즘 사람답지 않게 떡을 돌렸다. 정확하게는 도넛을 돌렸다.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소란하더라도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우리 가족은 달콤한 도넛을 맛있게 먹었다. 상냥하고 조심스러웠던 당부까지 없던 말인양 꿀떡꿀떡 삼켰다. 이사 첫날은 언제나 그렇듯 시끌벅적했다. 그러나 그 왁자지껄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분명히 어렸다. 통로에서 마주칠 때마다 곱고 작은 고사리손을 공수하고 꾸벅 인사했다.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그 앙증맞은 아이들의 얼굴은 쉽게 잊혔다. 어떤 날은 쿵쿵, 다른 날은 콩콩, 쿵덕쿵덕, 닥다그르르… 무얼 굴리는 소리인지, 뛰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수일 동안 반복되었다. 하루는 천장이 무너질 것 같았고, 하루는 전등이 찌르르 소리를 냈다. 두통이 심화하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참는 데 한계를 느끼고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올라가 사정했다. 그 후로 매트를 깔았다고 하는데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우리 가족은 아홉 시 이후에 뛰면 주의를 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아홉 시 직전까지 뛰었다. 우리 집이 예민한 거라 생각해서, 한창 뛰어놀 아이들이라서 참았다. 주말마다 부부모임을 갖는지 열 두시까지 소란스럽다가 헤어졌다.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던 어느 날, 아랫집 아주머니가 찾아오셨다. 청소기 소리 때문에 미칠 것 같다며, 약을 먹고 자는데도 잠이 안 온다던 아주머니의 말씀. 우리는 청소기를 돌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주머니와 나의 시선이 닿는 곳에 윗집이 있었다. 그런 청소기 소리를 들어본 일이 없다. 웽웽 버억버억 하는 소리가 매일 같은 시간에 들렸다. 부지런히 소음을 생산했다.


 아마 억울했을 것이다. 아랫집뿐 아니라 아랫집의 아랫집까지 자신의 소음으로 고통스러워한다는 것,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지만) 아이들이 깨금발로 집안을 누빈다는 것은 비참했을 수도 있다. 올라가 청하는 것조차 지쳐서 천장을 콩콩 치는 우리 집이 미웠을 것이다. 어제 아랫집 아주머니가 올라왔다. 뭘 하는데 이리 쿵쾅거리냐며 항의했다. 엄마가 "우리 집은 아이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위층의 아이들이 와 아아 아 하며 뛰는 소리가 들렸다. 심기일전한 아랫집 아주머니는 위층으로 쿵쿵 걸어갔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오늘 아침, 위층이 이사 갔다. 아침부터 소란해서 고통스러운 차에 창문을 내다보니 사다리차로 부지런히 가구를 나르고 있었다. 최근에는 거의 해탈해서 어떤 주의도 주지 않고 그저 감내했는데도, 이사 전날까지 아랫집 아주머니의 항의를 들었을 그들을 생각하니 양심이 쿡쿡 찔렸다. 다정하게 이사 소식을 건넸던 그들은 아무 말 없이 홀연히 떠났다. 창문 너머로 그들이 버린 가구를 보았다. 알록달록한 아이들의 의자와 책상, 아이의 옷장, 책장, 용도를 알 수 없는 빨간 수레… 저녁 어스름에 내다보니 누군가가 대부분 가져갔다. 그들의 유일한 흔적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가구 수거를 마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하루 종일 마음이 쓰여서 엄마에게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뛸 수도 없고 조심해도 이 집 저 집에서 항의하니 더러워서 이사 갔나 봐"라고 말하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코로나로 어린이집을 가지 못한 아이들이 집에서 악을 쓰며 노래부를 때 질색팔색 했던 엄마도 신경 쓰이나 보다. 이따금씩 "원래 가려고 했겠지. 다른 지부로 직장을 옮겼나 보지. 전세라서 2년만 살았나 보지." 핍진성 있는 이야기만 툭툭 던진다. 전 국민이 외출을 삼가고 자가 격리하는 마당에, 아이에게 왜 그토록 박했을까. 아이 혐오를 멈추기 위해 노 키즈존 반대를 주장했고, 그와 관련한 책을 읽으며 각성하던 나는 어디로 증발한 걸까.


다시 그들의 아랫집에 살 기회가 찾아온다면 견딜 수 있을까. 솔직히 이 헛헛한 마음으로도 그럴 자신은 없다. 나는 잠을 자고 싶고 두통으로 고생하기 싫다. 그런데 천장을 통통 쳤던 시간, 화가 나서 공연히 머리카락을 쥐 뜯었던 날들에 퍽 가슴이 아프다. 도량 좁은 아랫집을 만나 고생했던 아이들과 어머니가 부디 관대한 아랫집을 만나길. 그곳에서 이사 갈 때는 오늘처럼 휙 떠나지 않아도 괜찮길. 되도록이면 1층으로 이사가기를 바란다는 글을 남기며 이 씁쓸한 마음을 추슬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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