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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쓰다 Dec 11. 2019

수신묘: 뻬슈, 때메.

읽지 못하는 너희에게 쓰는 편지 part1.

외사랑을 하며 관심을 구걸해도 아깝지 않은 순정.

간식을 줄 때 스치는 찰나의 세모난 손과 뿌리치는 동그란 손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기쁜 마음.

한 번의 눈길에도 세상 모든 행복을 거머쥔 듯 즐거워지는 기분.

북슬북슬한 털 사이로 손가락을 끼울 때 느끼는 존재의 만끽.

행운의 상징인 콧수염을 꼭 일주일에 한 번쯤 책상 위에 올려놓고 떠나는 너희를 보며 뛰는 가슴.

말랑말랑한 흰 뱃살과 늘어진 푸른 회색빛 뱃살을 만질 때 느끼는 감정들.

내 생애 오로지 너희만이 줄 수 있는 것들이야.



그런데 가끔은, 아주 가끔은 가만히 앉아 봉긋 솟은 너의 등을 보거나 허공을 바라보다가도 금세 새근새근 잠드는 너를 보면 아프지는 않은지, 심심하지는 않은지 꼭 다문 입술 새로 아무 말도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너희의 입술을 들여다볼 때, 나는 그럴 때 너희를 추억에 묻어야만 할 아주 먼 미래를 떠올려. 온종일의 기분을 맞바꾸고 소파에 몸을 구겨 넣고 속상해져서 괜히 눈물이 맺혀. 그럴 때 너희는 내 눈물에 익숙해서 내 마음까지 읽으려 하잖아. 그럴 때마다 다가와서 냥! 하고 나를 부르잖아. 그 낭랑한 목소리도 동그란 눈도, 기분 좋을 때 가르릉 거리는 소리도, 골골대며 노래하는 목소리도 잊히게 될 먼 미래를 자꾸 걱정하게 되잖아.



나는 너희와 함께 살면서 공생을 배웠고, 참을 수 없는 분노도 삭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둥글둥글 해졌어. 너의 세모난 코처럼 둥근 눈처럼 내 삐쭉삐쭉 제멋대로 생긴 마음이 조금씩 모양을 찾아가는 거야. 나는 이런 마음이라면 나를 좀 더 사랑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어. 내 마음에 풍파가 일 때마다 너희들의 조그만 몸이 다가오면 그 미세하게 느껴지는 체온이 얼마나 반갑던지. 나는 너희한테 받기만 한 것 같아.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뛰어다니며 놀아주고, 너희의 간식을 갈구하는 목소리를 듣고서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밥그릇의 바닥을 여러 번 확인하며 밥을 부어주고, 시야를 가리는 눈곱이 끼지 않게 안약을 넣어주고, 치주염에 걸려서 아무것도 먹지 못할 노묘의 생을 떠올리며 매일 이를 닦아주고, 면역력이 약한 너의 귀를 청소해주고, 너희가 좋아하는 목욕을 시켜주고, 불편할까 봐 발톱을 정리해주고, 작은 코를 막고 있는 코딱지를 빼주고, 화장실을 정돈해줘도 말이야. 내가 너희에게 해줄 수 없는 일이 많은 큰 고양이처럼 보이는 건 알지만, 이 존재의 무력감은 언제쯤 떨칠 수 있을까. 너희의 눈빛을 읽고 싶을 때마다 차츰 속상해지곤 해.



속상한 얘기만 하면 섭섭하겠지. 뼤슈 네가 내게로 온 날 복숭아와 거리가 먼 푸른 회색빛 털을 가진 너에게 뼤슈라는 이름을 지어줬잖아. 불어로 pêche, 한국어로는 복숭아라는 뜻인데, 네가 복숭아처럼 토실토실해졌으면, 달콤한 과즙처럼 내 인생에서 여운이 짙게 남는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다면, 그럼 조금 위로가 되겠어? 매일 네 눈을 보면서 뼤슈야 사랑해,라고 말하지만 너는 아는지 모르는지 냐! 하고 마는데 그것마저 너무 귀여워서 늘 꽉 안게 되는 것 같아. 내 과도한 애정이 널 괴롭게 했다면 줄여보려 노력하겠지만, 그게 될는지 모르겠어. 아직도 처음 우리 집에 들어와서 빵빵한 뱃살과 가는 다리로 빨빨거리며 구석구석 누비던 네가 행여 다치진 않을까, 바닥에 이불을 잔뜩 쌓아뒀던 그때의 나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거든. 거구인 너지만, 나는 아직도 네가 아기 고양이 같아서 애정을 줄일 수가 없어.



때메, 너의 이름을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대.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름인 까닭이겠지. 그런데 널 데려오기로 마음먹은 건 오로지 뼤슈 때문이었어. 뼤슈가 내 생활을 나노 단위로 조각내고 침범한 순간 그게 뼤슈의 외로움이구나, 하고 잘못짚은 탓에 "뼤쓔 때메" 널 데려왔으니까. 그런데 전 주인의 배에 두른 주머니에서 고개를 쏙 내민 널 처음 본 순간, "너 때메"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은 다른 의미가 되었지. 너에게서 배운 모순된 감정들이 많아. 그러니까 텅 빈 충만이라든지 빈곤 속 풍요라든지 침묵의 소란이라든지 그런 것들 말이야. 너는 뼤슈보다 조금 더 고양이 같아서 요구 사항을 표현하는 법도, 내게서 도망치는 법도 잘 알고 있잖아. 그래서 내게 조금 더 무심하잖아. 몹시 서운하다가도 너의 본능이 그 작은 몸속에 움츠리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되는 그런 감정들. 너는 그런 감정을 품게 해. 미묘한 표정과 삐약 거리는 목소리, 말할 듯 말하지 않는 앙다문 세모 입술과 너의 작은 몸뚱이가 어쩜 그렇게 고마운지 아직도 근거 없는 사랑을 해.



생명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세밀하게 감각할 수 있게 되었어. 너희들의 작은 콧구멍으로부터 나오는 숨결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겠지. 길고양이를 보면 여름엔 더울까 봐, 겨울엔 물을 못 먹을까 봐, 몸 둘 곳 없이 떠돌다가 인간이길 포기한 존재로부터 학대를 당할까 봐 마음이 자꾸 아파졌지만 말이야. 내 곁에서 여전히 들숨과 날숨으로 내 삶을 지탱해줘서 고마워. 오랜 친구가 고양이 입양을 망설일 때,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품을 들이는 일이라며 만류했었어. 너희의 마지막을 떠올리는 게 습관이 된 탓이었지. 이젠 더 이상 오랜 뒤의 시간을 상상하며 너희와의 귀중한 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너희에게 품을 내주는 지금이 행복하기 때문이야. 가끔 너희에게 편지를 쓸 때면 언어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떤 말로 형용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내 표현에는 바닥이 있어서 이만 줄일게. 미안한 마음을 접고 사랑하는 마음을 펴야겠지. 그 고이 편 마음으로 너희를 오랫동안 지켜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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