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라

by 혜윰


한강 작가 작품에서 처음 마주하는 미스터리 소설. 나아가서 스릴러적인 요소까지 느껴지기도 해 섬찟했다면 과장일까. 작가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경탄이 흘러나왔던 작품.


한강 작가는 20대 후반에는 불교에, 30대 후반에는 천체 물리학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평소 미술과 음악을 즐긴다고 한다. 그 천체 물리학과 먹그림, 조각 등을 포함한 미술, 말러의 음악 등 다양한 요소가 종합되어 있어 굉장히 밀도 높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종합예술. 작가가 이 글을 쓰면서 소설을 쓰는 것에 회의가 와서 1년 정도 중단한 시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아마도 과학,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를 하나의 글에 조화롭게 녹여내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짐작해 본다.


노란 바탕에 표지의 사 분의 삼 가까이 되는 띠지의 그림이 예사롭지 않다. 검은 바탕에 연회색, 진회색이 번져있는 그림을 처음에는 뭔가가 불타오르는, 혹은 태양의 이글거림을 표현한 건가, 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한지에 먹을 입히고 중앙부에 물을 머금은 종이떡을 두어 그것이 번져나가며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소설 속 인주의 삼촌이, 나중에 인주가 도전한 기법.


그 표지 색이 내게는 소설 속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는 색으로 다가왔다. 노랑 표지는 주인공 정희가 알고 있는 친구 인주의 밝음을. 하지만 정희는 인주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표지 중앙부에 그려진 어둠 속 여리게 번져나간 희뿌염의 면모를. 인주의 마음속 깊이 뿌리 내린 어둠, 그 속에서 서서히 자라고 있던 죽음에 이끌림을. 우리가 서로를 또는 당신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 그 안다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일부에 지나지 않는지. 겉으로 보이는 것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작가는 묻고 보여준다.


긴 시간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온 주인공 정희는 너무도 갑작스러운 친구 인주의 죽음을 맞닥뜨린다. 친구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 간절하고도 처절하게 그려진다. 한강 작가 특유의 시제를 넘나드는 구성이라 때로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다. 어떤 장은 인주의 죽음을 파헤치려 만난 사람들이 혼자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글을 이끌어가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자주 죽음을 향했던 사람은 끝내 ‘살고 싶다’를 외치며 생을 붙들고, 겉으로는 강인하고 단단해만 보였던 사람은 끝내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듯한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어쩌면 그 행위조차 인주가 정희를, 엄마를 “통으로 외워보려는” 사랑의 몸짓이 아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제목이 “바람이 분다, 가라”일까? 바람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바람이 분다’ 할 때의 바람도 있고 인생의 굴곡(고통, 역경)을 의미하는 은유로 사용되는 바람도 있을 것이다. 그 바람은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바람일 경우가 많다.


바람이 부는 날, 장대높이뛰기를 하다 장대에 허벅지가 찔리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인주는 더는 운동을 할 수 없게 된다. 그 후 3년이라는 세월을 텅 빈 집에 틀어박혀 고립을 자초한다. 이후로 바람은 그녀에게 “단박에 목숨까지 꿰뚫을 수 있는 삶을 지금 살아내고 있다는 걸 무섭도록 분명하게” 인식시켜 주는 존재가 된다. 바람이 부니까 뛰지 말까, 생각했지만 넘어가고 싶다는 갈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처럼 삶은 때론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뛰어들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이 아닐까.


삶이란 지극히 불확실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처럼 감촉되지만, 먹그림의 중앙에서 번져나가는 흰 불꽃처럼 그 어둠 속을 각자의 힘으로 밀고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삶의 먹구름 속에서 보이지 않는 바람을 헤치고 나아가라고. 그렇게 바람의 의미를 더듬다 보니 문득 떠오른 노래가 있다. 바로 들국화의 <행진>이라는 노래다.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나의 미래는 항상 밝을 수는 없겠지

나의 미래는 때로는 힘이 들겠지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야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소설 캐릭터에 한강 작가 본인을 이입해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경하’가, 이 책에서는 ‘정희’가 아닐까 싶다. 작가는 자신의 출생 연도와 형제 관계를 정희에게 빌려주었다.


그런 정희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얼까?

“바람이 분다, 가라”의 의미를 제대로 보여준 것이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다. 어느 때보다 강한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그녀. 결국 진실은 삶으로, 생명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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