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험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 한 느낌

세상에 발 디디다

by 김창훈

매미소리 쏴—

아이는 구급차를

못 쫓아왔네.


하이쿠 시인 이시바시 히데노의 시다.

여름이면 늘 이 하이쿠 시가 떠오른다.

김연수 작가의 책을 읽고 난 다음부터다.


매미소리 쏴—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에 따르면 이는 삶의 여백이자 죽음의 적막을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 귀를 때리는 한여름의 매미소리를 역설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매미소리가 천지를 울리다가 문득 멈춘 상태.

그래서 이시바시 히데노가 ‘매미소리 쏴—‘(소나기처럼 갑자기 일제히 들리는 매미소리)라고 할 때, 듣는 사람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매미소리 쏴—‘의 귓전을 울리는 이 매미소리는 적막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니까.


한국의 봄을 떠나 첫 발을 디딘 건 여름의 필리핀이다.

언제나 더운 필리핀에도 여름이 있고 4월, 5월이 그때다.

이 여름은 덥지만 아직 건기에 해당해서 물놀이를 즐기기 으뜸이다.


필리핀에 도착한 지 일주일, 스쿠버 다이빙에 도전했다.

물속에서 느끼는 적막은 안정의 적막함이다.

밑으로 내려간 물속에서의 소리는 대체로 온유하고 깊다.

내 숨소리만 들리는 적막 속에서 바라보는 앞쪽 바다 세상은 신비롭고, 수면 쪽은 황홀해서 점차 나의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다가 이따금 정신을 차린다.


같이 갔음에도 깊은 수심에서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면 두려움이 밀려오는데 그때는 숨이 가빠진다.

가쁜 숨소리보다 호흡기에서 더 이상 소리를 내지 못할 것을 떠올리는 것이 무섭다.

스쿠버 다이빙은 수영을 못하는 내가 두려움을 이기고 도전해 낸 것 중 하나다.

수영을 못해도 다이빙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수영을 못 하는 내게 들리지 않았지만 필리핀에 온 것은 그 용기를 낼 수 있게 했고 함께 해준 사람들은 그것을 실행하게 했다.

앤드류, 헤일리, 세라, 소피아에게 감사하다.


처음 물속에 들어간 날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앤드류의 입에서 뿜어진 뱃고동 소리에 웃음이 터진 탓인지 바닷속을 보게 된 감격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땅 위의 것들을 다 보지 못해 아쉬워하다가 바닷속 세상도 있음을 알게 되니 세계관이 얼마나 넓어진 것인지 모르겠다.


한번 물속에 다녀오면 어김없이 한 번의 휴식을 갖는다.

물속 세상은 신비롭지만 나는 물 밖의 세상이 더 좋다.

이국의 언어와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새파랗고 탁 트인 바다 풍경 속에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박힌다.

그늘 아래 스르륵 잠이 든다.


물속에서는 장비가 없이 숨을 쉴 수 없고 말로 대화할 수 없다.

놀라운 것을 발견해도 상대에게 의사를 정확히 전달할 수 없으니 말이란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다.

그래서 물속에서는 수신호라거나 불빛이나 소리 나는 물체를 때려서 의사를 전달하는데, 이 신호들은 모든 언어를 뛰어넘는 직관성과 통일성을 갖춰서 대화가 되지 않았던 상대들과도 대화가 되게 한다.

어쭙잖게 말로 표현할 뻔했던 것들도 간단한 손짓만으로 상대에게 알려 그가 보고 그의 것으로 해석해내게 하니 대단하다.


산호와 작은 물고기들에게 나는 땅에서 처럼 강하고, 어두워 깊은 수심과 큰 물고기 앞에서 나는 작고 연약하다.

땅에서 느리다고 했던 거북이는 물에서 몹시 빠르고, 물에서 느린 나는 땅에 가서야 거북이보다 빠르다.

어릴 때 나는 달리기를 곧잘 해서 달리기 대회에 나가곤 했다.

영채, 민수와 뛰어놀던 둑실의 언덕을 가장 먼저 뛰어내려왔고 나이 먹기나 얼음땡처럼 빠른 달리기를 필요로 하는 게임이 있으면 여간 잡히질 않았다.

엄마와 외할아버지가 화났을 때도 마당에서 나무를 두고 뱅뱅 돌기만 했다면 나는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운동회 때는 1등에게 찍어주는 도장이 손에서 지워지지 않게 간직했다가 엄마한테 자랑하는 것이 기쁨이었다.

목욕탕을 나오면 동순천 다리까지 달리기 시합을 하던 우리의 승패가 바뀌던 날까지 엄마는 내가 아는 가장 빠른 사람이었다.


운동회 때 계주가 열리면 어김없이 주자 중 하나로 뽑히곤 했는데 한 번은 반대항 계주에서 배턴을 놓쳤다.

이후로 나는 계주 때마다 배턴을 놓칠까 봐 불안해했다.

어떤 날엔, 무등경기장에서 열린 육상대회에 100미터 주자로 출전하여 세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결승선을 일등으로 통과하지 못한 날이었다.

출발이 빠르지 못했다거나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속력을 줄였으면 안 됐다는 자책을 했지만 그것보다 내가 가장 빠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움텄다.

청팀과 백팀으로 나눠진 내 기억의 마지막 운동회에서 나는 마지막 주자의 기회를 다른 아이에게 넘겼다.

왜 네가 마지막 주자로 안 나가냐고 아이들이 물을 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답했지만 사실 나는 두려웠다.

‘배턴을 놓치면, 따라 잡힌다면.’

그날 다른 사람이 운동장을 뛰는 것을 바라보던 기억은 선명해서 어떤 경험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 한 느낌을 나는 알고 있다.

이후로 나는 내 앞에 있는 도전 기회를 쉽게 놓치지 않았다.


다이빙 수업을 하던 마지막 날 야간 다이빙 후 물 위로 나와서 본 밤하늘에는 별들이 흩날려 있었다.

그대로 부표 위에 누워 하늘을 봤다.

사방이 고요했고 이따금 잔 파도가 곁으로 다가와 몸을 흔들었다.

금요일에 마지막 퇴근을 하고 일요일에 비행기를 탔다.

십여 일 만에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완전히 다른 일상을 살고 있다.

바닷속을 유영하고 밤바다 한가운데에 누워 별을 본다.


파도소리 쏴—

손바닥으로 귀를 막으면 물속의 소리가 나고 손을 모아서 귀를 막으면 물밖의 바닷가 소리가 난다.

어릴 때는 손을 모아서 귀를 막으며 물밖의 바닷가를 상상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손바닥으로 귀를 막아 물속을 떠올려볼 때가 많다.

글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감고 손바닥으로 귀를 막았다.

나는 세계여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