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베트남에 도착했을 땐 여전히 여름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멘 등과 어깨, 겨드랑이에 금세 땀이 찼고 검게 그을린 얼굴을 따라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하노이의 여름은 평균적으로 낮 최고 34도, 저녁 최저 26도로 우리나라의 혹서기와 같다.
이 여름은 5개월 동안 지속된다.
마중 나오기로 한 사람을 찾아 분주히 눈과 발을 움직이고 있다.
잠시 후 공항 밖 주차장에서 나를 찾고 있는 남자를 만났다.
픽업 차량을 타고 공항을 빠져나가는 길은 수많은 아지랑이로 일렁였고, 수백 대의 오토바이가 그 도로 위를 달리며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아득한 느낌을 받으며 낮게 신음을 뱉는다.
기쁘다.
낯선 풍경 다른 세상에 도착했음을 인지하며 내 삶이 도전 속에 있음을 느낀다.
이곳에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청춘들과 함께 봉사하며 1달간 머물기로 했다.
어제까지는 준비돼 있던 마음이 공항에서 바로 봉사기관으로 간다는 말에 하나도 준비되지 않고 허둥지둥하다.
봉사지는 어떤 곳인지, 봉사 기관과 숙소가 분리되어 있는지 그 어느 것 하나 머릿속에 그리지 못했고, 내가 가고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창밖을 본다.
오토바이들이 앞뒤 좌우, 사방으로 에워싸고 도로를 달리고 있는 탓에 귀빈의 입성과도 같은 풍경이었으나 쉴 틈 없이 경적을 울려대며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가고 있었기에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차가 도로의 걸림돌 같았다.
함께 지낼 봉사자들이 궁금했다.
봉사자들과 방을 같이 사용하는 걸까? 침대가 있나? 숙소의 형태도 알지 못했다.
해외에 봉사를 올 정도면 어떤 사람들일까? 쾌활하고, 붙임성 좋고, 끼가 많은 사람들을 상상했다.
정작 나는 모든 게 적당한 사람이다.
평범한 나 자신도 봉사에 지원했으면서 왠지 그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특별할 것 같았다.
새로운 도전 새로운 만남을 앞둔 내 심장은 빠르게 뛰고, 긴장과 흥분, 설렘이 공존한다.
차가 멈춘 곳에서 내려 봉사센터 문을 열었다.
세계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어떤 준비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런 구성(봉사활동)을 일정에 넣기 위해 노력했다.
나의 갈증과 갈망으로 시작한 여행이 새로운 지역에 대한 답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전과 경험으로 점철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 특별한 기회를 만나 다채로운 경험을 할 것이라는 불확실성과 희박함을 기대하기엔 너무 어렵게 얻은 기회고 소중한 시간이기에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어 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기대하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껴보는 것이고, 기존과 다른 활동을 해보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봉사는 이에 꽤 적합한 활동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봉사자들과 숙소에 모여 살며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봉사를 준비하고, 봉사를 마친 뒤 자유시간에 함께 놀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근교 여행을 계획해서 다녀올 수 있다.
봉사 이전과 이후에도 계속 여행을 이어가는 내게는 해외봉사가 그 지역을 여행하는 방법 중 하나로 생각됐다.
하루 중 보람 있는 무언가를 하고, 그 지역 문화를 알아가는 근사한 여행 말이다.
가장 근사한 것은 행위의 목적이 봉사에 닿아 있다는 것이다.
봉사자들이 이곳으로 오기까지 다양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다른 이유들 만이라면 굳이 봉사 단체에 올 필요가 없다.
마음에 어떤 이타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나의 베트남 소식을 들은 한 선배는 '넌 뭘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했고, 한 친구는 '착한 짓 말고 하고 싶은 거 하고 다녀'라고 했다.
그 선배가 모르는 건 내 여행뿐만이 아니고, 내 친구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뭔지 모른다.
타인의 이견을 들을 때마다 세계여행 자체가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므로 덤덤히 넘겼다.
이를 이해하려면 세계여행을 떠난 이유를 알아야 하고 나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아야만 하니 전체를 설명할 자신이 없는 탓이다.
이 글이 여행의 끝에 닿으면 뒤늦게나마 많은 것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청춘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도 닿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꽤나 통찰력 있고 사려 깊은 선배도 이런 말을 전하는 것을 보니 가히 내 여행이 범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 기관에서 제공해 준 픽업 서비스를 통해 하노이 공항에서 기관까지 편하게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봉사지의 문을 열었다.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ㄷ자 형태로 앉은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크게 인사하려던 입을 막고서 안내한 곳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해외 봉사를 하러 모인 사람들은 왠지 시끌벅적하게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적막하게 앉아있을 줄이야.
정면에 있는 기둥에는 신짜오(Xin Zhao : 안녕)라고 쓰여 있었다.
흘깃거리는 시선이 느껴져서 왠지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애써 태연을 가장하고 앉았다.
나름 멋스럽게 챙겨 입고 돌아다녔던 싱가포르에서 바로 하노이로 왔다면 봉사단체와 협약을 맺으러 온 업무 담당자 정도의 느낌은 났을 텐데 호찌민에서 온종일 걸으며 고된 여행을 하고 넘어온 터라 행색은 초라하고 검게 그을린 피부는 현지인에 가깝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쭈구리처럼 앉아있다.
왠지 모르게 긴장됐다.
새로운 곳에 가면 이전보다 나은 모습으로 시작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이전에 밝지 못했다면 밝게, 자주 웃지 못했다면 환한 미소를, 친근하지 못했다면 친근하고 싶은 것 말이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내가 아닌, 마음에 쏙 드는 내가 되고 싶은 것은 단체 생활 중 반복되는 갈망이었다.
사람들은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했고 나 역시 처음을 신경 썼으나 그 첫인상을 내가 원하는 만큼 좋게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십 대의 나는 새로운 무리 속에서 흡족할 때도 그 반대일 때도 있어서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여기에서는 무리에 잘 어울리고 인정받고 재밌는 사람이었는데, 또 다른 쪽에서는 어정쩡한 존재로 어색한 미소를 지어야 했다.
첫날 섣불리 말을 건네고, 소위 나대다가 겉돈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집으로 돌아와서 난 원래 이렇지 않은데 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머리가 컷을 때는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자신의 색이 뚜렷한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변하지 않고 자신으로써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조화와 평화의 상징처럼 늘 맞추고 포용하려고 노력했기에 흔들리고 새로운 색을 덮어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존재감이 드러나거나 사람들이 무리에 정착한 후에 존재감이 옅어질 때가 많았다.
다양한 팀 활동에서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들은 말을 참 맛깔나게 하는 사람이었다.
색이나 주관이 뚜렷한 것과 무관하게 말주변이 좋은 사람은 주변을 웃게 하는 재주가 있다.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아는 사람도 재밌으나 말 자체를 맛깔나게 하는 사람들은 흡입력을 갖는다.
글도 그렇다.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사람의 글은 분명 흥미롭지만 글 자체를 맛깔나게 쓰는 사람의 글은 어느 소재든 흥미롭다.
나로서는 그런 맛깔난 표현의 재주가 늘 부럽다.
어쨌거나 당장의 나는 경직된 쭈구리였다.
분명 도착하기 전까진 여행 중 끌어올린 텐션이 있었기에 어디에 가든 자신이 있었다.
다른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는 게 별건가 싶었다.
필리핀, 일본, 대만 등 각국의 친구들을 사귀며 여행해 온 내가 아닌가.
문을 열 때까지도 분명 그런 생각을 했었다.
철문을 당기면서 인사를 뱉을 때까지도 말이다.
"신! 짜.. 오...." 라며 목소리를 줄여 입을 막게 될 줄은 몰랐지만.
뜨거운 한낮에 정숙하고 있을 것은 뭐란 말인가.
기둥에 크게 신짜오라고 적어뒀으면서 기둥 말고 아무도 크게 인사해주지 않은 이상한 상황에서 나는 조용하고 태연하게 그러나 분명히 어색한 표정과 경직된 몸놀림으로 회계를 담당하는 스탭 앞에 앉았다.
괴상할 정도로 큰 배낭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