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지의 아이들
신짜오! 하고 외치면 그 어느 누구도 응답해주지 않는다. 원래 그렇다.
무심한 아이들 뒤로 다가가 하나씩 안아주거나 눈 마주치면서 이름을 불러주고 나면 그제야 봉사지의 하루가 시작된다.
반갑다 애들아 잘 잤니.
그림 그리기를 잘하는 히오우
춤을 잘 추는 센
교실 탈출 달인 륵
손뼉을 잘 치는 정
퍼즐을 잘 맞추는 하이
다른 친구들을 잘 보살피는 투우
동그라미를 잘 그리는 두우
집중력 좋은 남
운동신경이 좋은 탕
우리 교실에는 이렇게 9명의 아이들이 있다.
이들 중 세명의 아이는 자폐 증상을 갖고 있고 다른 아이들을 각자의 불편한 점이 있다.
그래서 우리 교실은 바깥세상보다 조금 느리다.
낮말 맞추기, 그림에 색칠을 하거나 색종이 오려 붙이기,
숫자나 낮말 등 기초 베트남어 공부,
퍼즐 맞추기, 블록 조립 등을 하다 보면 어느새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 된다.
물론 중간에 점심시간도 있다.
베트남의 점심시간은 2시간으로 굉장히 길어서 점심을 먹고 책을 보고 낮잠을 자도 충분하다.
잠을 자다가 너무 많이 잔 것 같아서 화들짝 놀라 일어났지만 여전히 점심시간 인적도 여러 번이다.
밥은 식당 건물 3층, 넓은 강당 같은 곳에서 혼자 먹는다.
이곳에 배정된 봉사자가 나뿐만은 아닌데 한 명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다며 안 먹고, 다른 한 명은 여행을 떠나서 아직 만나지 못했다.
덕분에 이곳에서 자유롭게 밥도 먹고 누워서 잠도 잔다.
학교에서 봉사자 휴게 장소를 따로 마련해줬는데 그곳엔 에어컨이 없다.
첫날 그곳에서 열사병 같은 낮잠을 잔 이후로는 이곳에서 의자 세 개를 붙여서 쉬고 있다.
한 것이 많지 않은데도 점심시간에 무척 깊은 잠에 빠지곤 한다.
낮잠이란 놈이 원래 잠들면 헤어 나올 수 없이 몸을 잠기게 하지만 스스로는 그만큼 아이들에게 마음을 쏟고 있다고 생각했다.
2시간의 점심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한번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이다.
수업을 마치는 시간은 나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해서 청소를 하는 동안 이미 갈 준비를 하고 눈동자는 밖으로 향해 있다.
륵은 몸도 이미 나가 있어서 매일 선생님에게 혼난다.
하루 중 이 순간에 아이들 행동이 가장 기민하고 단결된다.
수업 중 가끔 레크리에이션과 체육 활동을 하지만 이렇게가 대체로 반복되는 일과다.
아이들은 지루해하는 것 같기도, 흥미로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은 행복할까'
선생님이 준비한 프로그램이 아이들에게 도움되겠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내 다시 '아이들은 행복할까’ 생각에 빠지곤 한다.
행복이란 단어가 등장하면서 행복하지 않은 것과 행복한 것을 구분하려 하는 것이 불행한 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생각하는 것은 이 수업 과정이 아이들을 위한 최선일까 단지 그것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 아이들에게 나의 시선과 몸짓이 도움 되고 위로가 되고 있을까.
베트남어를 모르는 탓에 아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마음밖에 없다.
아이들은 단어를 소리 내지 못하고 뭉뚱그려진 말과 표정 몸짓으로 의사를 전달하지만 듣는 것은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나 스태프들에게 매일 물어가면서 아이들이 표현했던 것 중 모르는 단어와 내가 말해주고 싶은 단어를 적어서 외운다.
A4용지에 이런 단어와 문장을 적다 보니 앞뒤로 한 장이 빼곡해졌다.
그래도 언어를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많은 한계를 가져와서 그저 눈을 맞추고, 웃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단호한 표정 짓는 것 등을 주로 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과 동일한 의사소통을 하는 셈이다.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것으로도 충분하지만 마음으로 수업 이상의 것을 해주기엔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이 교실에 있는 선생님보다 더 많이 아이들을 살핀다.
아이들의 교재보다 아이들의 표정을, 아이들이 색칠하는 종이보다 아이들의 눈을 더 본다.
그렇게 아이들 그 표정과 시선 속에 녹아있는 마음을 짐작하다 보면 '아이들은 행복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란 고민을 하게 된다.
아이들 중 한 명의 이름은 ‘정’이다. 손뼉 치기를 잘한다.
그렇게 큰 박수 소리를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다.
정이는 귀를 막기도 하고, 아프리카 원주민 같은 소리를 내기도 하고, 손을 지휘자처럼 휘젓거나 허벅지를 때리기도 하면서 고요한 교실에 신나는 BGM을 만든다.
다양한 소리 중 박수 소리가 제일 크다.
젬베 같은 악기를 가르칠 수 있다면 굉장한 음악가가 될지도 모른다.
정이는 가끔 슬프고 그래서 운다.
가끔은 화가 나서 달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선생님께 혼난다. 잘못인 걸까. 모르겠다. 이곳은 일반적인 교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의 감정이 요동치는 것은 그가 가진 장애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이 테이블에 둘러앉는 동안 정은 교실 우측 뒤에 혼자 앉아있다.
슬플까, 기쁠까, 화가 날까, 행복할까 어느 것도 알 수 없다.
봉사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다 보면 유독 교실 밖 사람들을 바라본다.
한편에 혼자 앉아있는 사람, 슬픈 사람, 기쁜 사람,
도로에서, 버스에서 시끄럽게 하는 사람, 달려 다니는 사람.
내가 사는 서울 망원동에는 밤 열두 시 무렵이면 음이 하나도 안 맞는 노래를 허공에 부르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자폐증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치료 전략으로써 수업이 진행돼야 할 것 같았다.
고작 2년이란 시간 동안 배운 상담심리학의 기초 지식으로는 어림없었다.
정이는 입에 항상 무엇을 물고 있다.
때로는 고무줄, 때로는 철사, 때로는 컵 그리고 손등. 그래서 정이의 양쪽 손등에는 흉터가 있다.
그런 정이가 가끔 웃는다.
그럴 때면 나도 기뻐서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다.
다 함께 티브이를 보다가 댄스음악이 나왔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우르르 앞으로 나와서 춤을 췄다.
신나서 춤을 추다가 나에게 보여주겠다고 그동안 배운 것을 하나도 안 맞게 춘다.
모두 다 달라서 어떤 것을 따라 해야 하는지 모른 채로 나도 춤을 춘다.
못 추면 못 추는 대로 모두 춤을 춘다.
정은 너무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르고 박수를 쳤다.
그 동동 구르는 발소리가 아직도 생각난다.
발을 동동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