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스태프들이 모여있는 건 나 때문이다.
흰색 헬멧도 심플하고 예쁜데 굳이 꾸미겠다고 과도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 남부 여행을 떠났던 봉사자 테스가 돌아왔다.
코에 피어싱을 하고 너무나 해맑게 웃는 봉사자다.
착하고, 예의 바르고, 배려심이 깊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정말 좋은 봉사자다.
여행을 마친 그녀가 교실로 들어와 아이들을 안아줄 때부터 나는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돌아왔기 때문에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조금 더 신경 쓸 수 있게 됐고, 점심도 혼자 먹지 않게 됐다.
테스는 쉬운 영어를 사용하고 내가 말을 다 할 때까지 기다려주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충분한 대화도 할 수 있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자신에게 오토바이가 있다며 괜찮다면 뒤에 타라고 했다.
정말 멋진 사람이다.
테스의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이틀을 출퇴근 한 뒤 굉장히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오토바이가 있어야 한다.
1층 사무실에서 스태프들 옆에 앉아 오토바이를 조르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두 개의 버스를 타고, 걸어서 봉사지에 도착하면 한 시간이 걸리곤 했는데 오토바이를 타면 겨우 15분이라니.
스태프들 옆에서 이런 사실을 내게 감춘 것은 기만이라고 성토하고 있는 중이다.
봉사자들의 안전을 위해 봉사자 입소 첫날 오토바이를 이용하지 않도록 안내하기 때문에 그 말에 따라 오토바이에는 일체 관심 갖지 않았는데 생각해 보니 야푸와 바티스도 오토바이를 갖고 있지 않은가.
이런 내가 측은했는지 스태프들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봉사자 숙소 한편에 사용하지 않는 오토바이가 있는데 수리해서 사용하겠냐는 것이다.
기꺼이 그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외쳤고, 오토바이를 인계받아서 곧장 쌀국숫집 옆에 있는 수리점에 맡겼다.
헬멧은 스태프 중 한 명이 안 쓰는 것이 있다며 선물해 줬다.
그 흰색 헬멧에 모두 달려들어 그림을 그리거나 문구를 새기고 있다.
이왕이면 하노이에서 가장 특별한 헬멧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본인들 서명과 꽃, 차, 해골, 기하학적 무늬,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한글을 새겨뒀다.
나도 한쪽에 내 이름 석자를 썼다.
미적인 요소는 포기한 헬멧이지만 나만의 것이 생겨 마냥 즐겁다.
오토바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많이 다르다.
한국에서도 자전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달랐고, 차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달랐다.
운전을 하다 보면 움직임의 반경이 커지고, 대중교통이 가지 않는 길로 바퀴가 굴러 자유롭다.
어딘가 가보려 하는 마음의 시작점부터 다르다.
마을 마실이나 나가 볼까 하던 일상에서 호안끼엠 호수나 한 바퀴 돌고 올까라는 생각이 쉬운 일상이 된다.
봉사자 숙소에서 호안끼엠호는 오토바이로 20분 거리다.
다르고, 다르고, 다르다.
베트남 도로에는 굉장히 많은 오토바이가 움직인다.
멘티들 말로는 중학생 때부터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자동차는 가구당 한대, 많아야 두대이지만, 베트남에서는 사람당 오토바이 한 대인 셈이다.
2019년 기준으로 하노이 인구가 750만 명, 오토바이 등록수가 570만 대이니 말 다했다.
그래서 오토바이를 타야 베트남의 진면목 중 일부를 느낄 수 있다.
보기에 위험해 보이던 오토바이 대열도 그 틈에 있으니 무척 안전하다.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고, 특히 운전자들의 눈을 마주 본다.
이렇게 시선을 마주하는 것이 오토바이의 가장 큰 매력이고, 베트남에 한발 더 다가서는 방법이다.
더운데도 살이 타지 않기 위해 옷을 머리까지 둘러쓴 여성 라이더들, 서로 위치와 방향을 알리기 위해 쉴 틈 없이 울리는 경적소리, 그 많은 오토바이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주차 관리자, 도로를 건너는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면 위험하다는 것도 직접 오토바이를 운전하면서 알게 됐다.
봉사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베트남 도로를 건널 때는 오토바이가 오는 방향을 보면서 발걸음을 멈추지 말고 가던 속도 그대로 앞으로 걸으면 된다고 했다.
발걸음이 멈추거나 뒷걸음질 치면 사고가 난다.
라이더들은 보행자의 걸음을 예측하며 지나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자전거를 탈 때도 도로를 건너던 보행자가 나를 보고 발걸음을 멈추면, 내가 지나갈 때까지 멈춰 계실지 앞으로 발을 딛을지 알 수가 없어서 난감해하며 자전거를 멈추곤 했다.
이런 것들을 전해 듣고 스스로 공부해도 알 수 있겠지만, 경험으로 체득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여행자들에게도 오토바이를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오토바이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과 많은 것이 비슷해서 하노이 모든 지면을 온몸으로 비비고 다닌다.
오토바이를 갖게 된 후부터는 아침이 더 즐거워졌다.
절약한 출근 시간을 이용해서 아침에 쌀국수나 찹쌀밥, 갓 구운 빵 등을 사 먹었다.
똑같이 지나던 길을 오토바이로 지나가니 다르고, 마을을 벗어난 뒤에는 버스와 다른 길로 가게 되니 또 색다르다.
봉사를 마친 뒤에는 내키는 대로 오토바이를 몰고 가서 호안끼엠의 콩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권지용 - 무제’라는 곡을 들으며 달리면 밤에 하노이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고독하고 멋스러웠다.
야푸, 바티스와 함께 다른 봉사자들을 태우고 경남빌딩에 다녀올 때도 있었다.
하노이에서 가장 높은 경남빌딩 옥상에는 라운지와 전망대가 있고 하노이 시를 사방으로 내려다볼 수 있다.
이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야푸와 바티스가 수시로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는 이유를 알겠다.
교통수단 하나로 생활이 바뀐 셈이다.
Grab을 이용하면서 본 경로와 야푸, 바티스, Tess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가며 익힌 경로로만 다니다가, 점차 다른 길도 알게 됐다.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호안끼엠을 포함해서 주변의 번화가들을 편하게 오갈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오토바이 운전에 자신감이 붙고 긴장이 없었다.
그리고 아스팔트에 넘어졌다.
나는 아스팔트에 누워있다.
오토바이가 넘어지고 나서 ‘나는 왜 아스팔트에 누워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언젠가 읽은 ‘일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라는 책의 문구처럼.
몇 초 뒤 '내가 오토바이를 탄 채 넘어졌구나'라고 상황이 인지되자 아직은 누워있는 몸에 대한 걱정이 찾아와 덜컥 겁이 났다.
오토바이에 깔린 다리와 팔이 있긴 한 것인지, 처참하게 피 흘리고 있는 건 아닌지, 어디가 움직이지 않는 건 아닌지. 그런 두려움 속에 아주 조심히 발가락을 움직였다. ‘있구나.’ 그것이 기쁘다.
손도 움직여보며 천천히 몸을 추스리기도 전에 주변에 라이더들이 모여들어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고 나에 안부를 묻는다.
그 걱정 어린 시선과 말들이 따뜻했다. 물론 부끄럽고.
경황없이 연신 '고맙다', '나는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조심히 일어났다.
‘아 일어설 수 있구나’ 그럼 정말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전기가 오는 듯 쨍한 다리를 움직여 오토바이 손잡이를 잡고 도로 옆으로 옮긴 후 그 옆에 앉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마주 오던 차가 내 앞쪽으로 급회전하는 것에 놀라 브레이크를 잡았고 비에 젖은 도로에 미끄러지며 혼자 넘어졌다.
다행히 차나 오토바이와 충돌은 없었다.
그 찰나의 순간이 기억에 없을 정도로 놀랐다.
헬멧을 썼기에 머리를 다치지 않았고 워낙 순식간에 넘어져서 신체로 지탱할 틈도 없었다.
원래 넘어질 때 버티면 다치는 법이다.
손목이 땅과 마찰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시계가 손목 대신 갈렸다.
가만히 앉아서 그 도로를 바라보다가 심호흡을 한 후 일어서서 본격적으로 몸을 점검했다.
정신 차렸을 때 왼쪽 다리가 오토바이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깡충깡충 뛰어도 보고 구부려 보며 다리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다 괜찮은데 왼쪽 발을 구부려 디딜 때 통증이 있었다.
부러진 건 아니지만 뼈에 금이 갔어도 정말 큰일이다.
앞으로 세계여행 여정이 까마득하고 짊어져야 할 짐은 무겁다.
사고 직후엔 일어설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아픈 다리가 큰일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참 마음이 약하고 간사하다.
다 괜찮을 것이다.
긁혀서 피 흘리는 손으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몹시 처량했다.
더러워진 옷을 벗고 곧장 샤워장으로 향했는데, 샤워기를 틀기 전에 차가운 물이 뿜어져 나올 것이 떠올라 잔뜩 움츠렸다.
이런 날은 뜨거운 물로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야 하는데 여지없이 찬물이다.
그래도 샤워를 하니 한결 기분이 나았다.
늘 그렇듯 평화로운 1층, 여기저기 흩어져서 각자 일기를 쓰고 책을 보고 잡담을 나누는 봉사자들 틈에 나도 한자리하고 앉아 있다가 컵라면과 반미를 사 왔다.
가뜩이나 봉사자들의 안전을 위해 오토바이 사용을 제재하고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넘어진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다.
이후로도 오토바이를 잘 탔고, 베트남에 가면 오토바이부터 구해야 한다는 생각도 여전하다.
봉사를 위해 베트남 어를 익히고, 제공되는 식사뿐만 아니라 동네의 길거리 음식을 탐닉하고, 오토바이를 타는 등 베트남 문화에 다가갈수록 베트남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가 많았고 봉사 기관 내의 스태프들과도 가까워졌다.
여타 봉사자들보다 그들 문화를 가깝게 여겼기 때문이다.
오토바이가 서로 있으니까 봉사기관 외의 장소에서 만나기도 하고, 멘티들도 먼 곳에서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한 번은 내 담당 스태프인 키엠 집에 초대받아서 가는 길에 오토바이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일이 있었다.
키엠은 오토바이 뒤에서 초록색 끈 하나를 꺼내서 내 오토바이 앞에 묶었다.
이후로는 키엠 오토바이에 매달려서 기차처럼 도로를 달렸다.
주변에 서너 명의 스태프들과 함께 가는 길이었는데 다들 나를 놀리느라 많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