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안녕히
비행기는 타자마자 움직이더니 곧 이륙했다.
베트남에 대해 많은 것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라오스로 간다.
세계여행을 시작하고 비행기를 많이 탄 것은 아니지만 이젠 비행기 타는 것이 별스럽지 않다.
어떤 감정이 무덤덤해진다는 것이 아쉽다.
이 여행 동안 감정에 대해서는 하나라도 더 예민했으면 한다.
베트남을 떠나기 전에 동네 이발소를 찾아갔다.
한국을 떠난 후로 한 번도 자르지 않은 머리가 덥수룩했다.
동네 모퉁이를 돌아가면 길에서 머리를 자를 수 있다.
벽에 거울을 걸고, 그 앞에 푹신한 의자를 두고 앉는데 왠지 낭만스럽고 그리운 풍경이다.
도전의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하다가 더위속에서 잘리는 머리카락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세탁소 앞 이발소로 방향을 틀었다.
머리를 정리한 뒤에는 사진관에서 사진을 찾았다.
봉사하는 동안 틈틈이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아이들에게 주기 위함이다.
마지막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뭔가 줄 수 있는 것을 떠올려 봤지만 사진 말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줄 수 있는 것은 수업 중에 다 줬다.
하노이에 머물면서 정든 것이 너무나도 많다.
일상의 말벗이 되어주고 나중에는 정말 벗이 된 스태프들과 봉사자들, 매일 가던 쌀국숫집, 오토바이와 매일 다니던 길 그리고 봉사지의 아이들.
아이들은 내가 언젠가 떠날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찾아온 모든 사람들이 그랬으니까 하루라도 안 보이면 떠난 줄 안다.
언젠가 양해를 구하고 사파에 다녀온 적이 있다.
화요일에 등장한 나를 보고 아이들이 몹시 반가워하던 것이 떠오른다.
그날은 유별나게 아이들이 곁에 있었다.
월요일 하루 보이지 않자 어느새 떠난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헤어짐을 앞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 어떤 행동들,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표현하고 싶은 게 내 마음에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이런 고민들만 한다.
고민만 하다 시간이 갔다.
나는 참 헤어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담담히 지난 일과 미래를 말하고 멋진 미소와 포옹으로 마무리하던데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영화가 아니어도 일상을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은 헤어짐을 잘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나는 늘 그것이 서툴고 참 못한다.
마지막 날 아침에 봉사지에 도착해서 사진을 나눠줬다.
현재의 예쁜 모습을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와 함께한 시간도 있었음을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한 사진이다.
아이들과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싶었지만 알 수 없게 가라앉은 기분은 쉽사리 올라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내게 준 그림들, 내가 준 사진들, 아이들의 소리 그리고 어떤 온기가 교실에 이리저리 뒤섞여있었다.
이따금 들려오는 정의 박수 소리가 내가 아직 이곳에 있음을 알려주지만, 내일이면 들리지 않을 정의 박수 소리가 내가 그곳에 없음을 알려줄 것이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그 시간이 더 애틋해졌다.
나눠준 사진들은 점심때쯤 되니 바닥에 나부꼈다.
수업을 마칠 시간엔 1분이라도 빨리 교실을 나가고 싶은 아이들 눈이 일찍부터 교실 밖으로 향해 있었고, 마치겠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우당탕 모두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렇게 아이들이 떠났다.
교실 바로 옆이 숙소면서 교실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끼는 아이들을 보며 웃음이 났다.
봉사만 했던 것은 아니다.
틈틈이 사파, 탐콕 등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특히 사파에서는 시가지와 먼 곳에 숙소를 예약했는데, 숙소가 논 한가운데 있었다.
마을 이장님의 오토바이를 빌려서 말도 안 되는 장소까지 오토바이로 질주하고, 시가지에서 새로 사귄 베트남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다가 칠흑 같은 밤길을 운전해서 내려오며 극한의 공포를 맛보기도 했다.
여행은 여행대로 이야깃거리가 많지만 아무래도 주제가 벗어나 있어서 딱히 다루진 않았다.
몹시 짧은 한 달이었다.
공항을 가기 전 아침, 늘 가던 쌀국숫집에서 늘 먹던 퍼보를 먹고 마을을 한 바퀴 빙 둘러 걸었다.
늘 수줍게 웃어주던 쌀국숫집의 주인 부부도 안녕히.
그렇게 많이 갔음에도 사진 하나 남기질 못했다.
신선한 과일을 살 수 있던 시장과 좋은 향으로 깨끗하게 세탁해서 곱게 개어주던 세탁소, 빵집, 사진관, 이발소, 야푸가 추파를 던지던 길가의 카페.
밤이면 슬리퍼를 신고 나가 세상 신나게 받아오던 길거리 반미.
옹기종기 쪼그려 앉아서 마시던 수통 맥주.
내 마음속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호안끼엠 부근보다 이곳이 베트남의 풍경이었다.
베트남이여 안녕히.
세계여행은 '언젠가'라고 말하던 것 중에 하나였고, 그것은 이 여행을 시작하던 날 이뤄졌다.
우리가 바라는 어떤 것을 꿈이라고 칭한다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꿈이 이루어지는 걸까? 나는 떠나온 날 그 꿈속으로 왔다고 느꼈다.
‘그는 세계여행을 떠났어’
‘그는 세계여행을 다녀왔어’
나는 앞의 문장이 더 좋다.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의 시간들이 눈부시게 느껴졌다.
시작했다면 이제 이 여행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기대하고 즐기고 방황하면 된다.
세계여행이라는 단어에는 분명 특별한 것이 있고, 그 특별함은 자신의 여행일 때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멋진 장소를 가지 못해도 도로 옆 가로수에 저무는 해와 그 아래 멋진 벤치가 있던 곳이 내게 만족스럽고, 이국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기지 못해도 식당에 앉아있을 때 들려오던 이국의 언어들과 음식의 냄새가 각인되고, 탄성이 나오는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초점 나간 사진 속에 나는 기억하는 그때의 장면, 온도, 햇살이 있다.
타인의 여행이 아니라 자신의 여행이면 그 자체로 특별하다.
나는 왜 베트남에서 봉사를 하려 했을까.
착한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했다.
새롭고 멋지다는 장소를 찾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배우기도 하고 봉사하기도 하는 것이 내가 세계를 여행하는 방법이다.
세계여행이란 조각이 내 마음 어딘가에 있었기 때문에 선택으로 꺼내어 결정할 수 있었지만, 여행을 결심한 계기는 내 삶에 대한 갈증이다.
방황이고, 탐색이고,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