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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Jan 18. 2023

줄곧 비우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인도 세 번째 편지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만난 세 청년은 오토바이 한 대에 올라타 있었다.

 기묘한 자세로 앉고 선 무리는 카메라를 가리키며 자신들을 찍어달라고 했다.

 여행자로서 이국의 어느 것이든 담을 수 있다면 좋았으므로 기꺼이 카메라를 들었다.

 인도 어디에서나 자신을 찍어달라는 이가 많다.

 그들이 사진을 건네받는 것도 아니다.

 단지 찍히길 바라는 그 마음의 저변은 짐작할 수 없었다.

 간신히 정상에 올라 돌담에 걸터앉았을 때 청년들 역시 숨을 헐떡이며 도착했고 이번에는 나를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들이 찍어준 사진은 기묘하게 인도의 것이었다.

 발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같은 카메라로 찍었음에도 이들의 사진에 인도가 배어있는 이유 역시 알 수 없었다.

 북적이던 정상에 나만 있는 고요한 시간이 찾아왔다.

 요새 성곽에 걸터앉은 채로 노래를 들었다.

 'Love Me Again - John Newman'

 그들이 나를 영화 같은 앵글에 담아줬으므로 발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있었고 음악도 마침 그와 어울렸다.

 

 요새에서 내려다본 도시 풍경은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일상으로 빼곡한 도심엔 이층 집이 즐비하고 삼층 높이를 넘어서는 건물은 보기 힘들었다.

 핑크 시티라는 명칭은 메인 시가지에서만 유효한지 대부분 흰색 도료로 외벽을 단장했고, 옥상마다 늘어진 빨랫줄에 원색의 옷가지가 알록달록했다.

 시야는 선명하지 않았다.

 노후된 공장의 배출물, 산업 폐기물 및 폐자재 소각, 고여있는 대기, 사막과 흙으로 된 대지, 열악한 난방과 취사, 저감장치가 없는 화력 발전소, 이동수단의 배기가스 등의 이유로 발생한 대기오염 탓이다.

 물론 인구와 산업이 밀집된 델리의 심각한 사정보다는 낫다.

 여하튼 그런 오염의 영향으로 도시의 풍경은 뿌옇고 햇빛은 그러한 대기 속에 몽환적으로 아롱졌다.

 서풍이 불면 미세먼지가 부유하는 한국의 일상을 겪는 탓인지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요새에 오를 때는 도시 전체를 눈에 담고 싶었으나 이젠 일부를 자세히 눈에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내려간다.


 나는 본디 기록의 욕구가 몸에 배어있는 사람으로서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것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인터넷의 발달과 SNS의 등장, 스마트폰의 보급화로 어디에서나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세상이 됐지만 같은 곳을 여행하고 같은 것을 보더라도 각자의 사진은 각자의 주관에 의해 다르기 마련이기에 미묘한 지점에서 내가 간직하고 싶은 것은 그때 내 손에 의해서가 아니면 붙잡을 수 없다.

 특히 일상의 모습들이 그러하다.

 일상이란 말에는 반드시 사람이 포함된다.

 누군가의 사진을 찍는 것이 무례라는 것을 모른다면 많은 것이 쉬울 테지만 나는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묻거나 얼굴은 가려 순간을 담았는데 솔직히 여행자의 뻔뻔함으로 사진을 간직한 적도 있다.

 그럴 때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반면 내가 그것을 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들이 이것을 무례인 줄 모르는 곳 가령 인도, 그래 인도에서는 스스럼없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곳엔 나를 발견하고 포즈를 취하거나 먼저 사진을 청하는 일이 많다.

 상황이 늘 유쾌하다.

 얄팍하고 간사한 마음으로 나를 위한 셔터를 누른다.

 그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내가 무례인지 알았으면 응당 행하지 않거나 양해를 구했어야 맞다.

 정상에서 만난 세 청년들은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가파른 경사에서 함께 오토바이를 탈 수 없었고 두 명은 걸어야 했다.

 뚱뚱한 두 친구가 땀을 흘리며 걷는 동안 마르고 다부진 몸매의 사내는 오토바이를 통통거리며 친구들 뒤를 따랐다.

 셋 중 나를 발견한 이가 수줍게 인사를 건네자 서둘러 고개를 돌린 두 친구도 나를 향해 미소 짓더니 저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찍어달라며 자세를 취한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시선은 도시에서 마을로 옮겨왔고 사방이 트인 이 층집 위로 아이들의 일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옥상마다 아이들 한둘이 서서 연을 날리고, 글을 쓰는 아이, 그림 그리는 아이, 투구 폼을 잡고 공을 던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삶이 한꺼번에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건넨 말 하나 없지만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좋았습니다.

 요컨대 생이고 삶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지금을 살아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미래에 그들이 어떤 것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어떤 것이든 하게 될 수 있다는 수많은 가능성이 좋습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은 하루에도 여러 개가 떠오르고 사라지니까.

 꿈이라는 거창한 말에 삼켜진 나와 달리.




 겨울의 런던에서 비행기를 타고 넘어왔으니 북반구의 계절은 여전히 겨울이었으나 인도의 공기엔 여름의 더위가 실려있었다.

 그래도 해가 저물면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이 정도에도 추위를 느끼는지 많은 사람들이 스웨터를 입었다.

 나는 대게 반팔이거나 가벼운 바람막이 정도를 걸쳤다 벗었다 할 뿐이었다.

 옷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나 차림새가 이방인으로 튀는 듯하여 다시 찾은 시장에서 옷을 기웃거렸다.

 시장에는 전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려있었고 축제의 현장 같은 기이한 열기가 있었다.

 왠지 기분이 고조되어 수많은 질문에 일일이 응대하고 웃으며 걸었다.

 서울의 동묘처럼 옷을 수북이 쌓아두고 판매하는 곳이 많았고, 수십 장의 팬티를 높이 걸어두고 이목을 끄는 곳도 있었다.

 현지인들의 옷을 구입해보려 했지만 내 눈에 괜찮은 옷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고 걸치는 옷마다 한국적인 느낌과 다르지 않아 선뜻 구매할 수 없었다.

 이들의 현란한 믹스매치를 따라갈 센스가 내게 없음에 자괴감을 느끼며 지나가는 이들의 옷차림과 쌓여있는 옷가지를 연신 바라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비우기도 바쁜데 구태어 가방에 짐 하나 더 늘리려 하는 내가 한심해질 때쯤 발을 돌렸다.

 시장을 떠나기 전에 야간열차에서 사용할 침낭 하나를 샀다.

 나중에 찍어둔 사진을 보니 그저 내 얼굴이 한국적이었을 뿐이었다.


 경로를 틀어 인도로 오기 전까진 다음 행선지를 캐나다로 계획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짐은 영국의 택배사를 통해 캐나다로 가있었다.

 배낭에는 두어 벌 옷과 세면도구, 노트북, 카메라뿐이어서 전과 비교할 바 없이 가벼웠고 당장 입고 있는 차림새 또한 가벼웠다.

 자랑할 부도 없었지만 이곳에선 부를 자랑할 것이 없었고 그러한 부 또한 필요하지 않았다.

 한 없이 비워져서 나라는 사람의 몸만이 남아 땅을 걸어 다니게 만드는 것이 인도의 매력인 듯했다.

 지금 나에게 적합한 여행지는 인도였다.


 행색이 초라하고 헐벗어도 괜찮다.

 지저분한 것도 괜찮다.

 걸음을 멈추고 땅에 앉아 명상을 해도 괜찮다.

 고뇌하고 고통을 토해내도 괜찮다.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되고 머리나 수염을 자르지 않아도 괜찮다.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고자 한다면 누구든 그럴 수 있다.

 땅이 나에게 다 괜찮다고 말하는 듯했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결심한다면.


 줄곧 비우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엔 복잡한 내 삶의 관계들과 머릿속의 생각, 정리되지 못한 내 삶의 흔적과 고민, 나도 모르게 쌓인 안 좋은 것*들을 비우고 싶었으나 이제는 모든 것을 비우고 싶다.

*학습된 무기력, 다들 그렇게 산다는 것, 보통의, 평범한, 관습, 타인에 대한 무감각함, 이유를 묻지 않는 태도, 본질을 잊은 행위, 보이지 않는 시선, 강박, 예민함

 사람이 새로 태어나듯 기존에 가진 모든 것을 비워내고 신생아가 걸음을 떼듯 처음부터 쌓아가고 싶다.

 이 생각이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나라는 사람은 새로 태어날 수 없지만 내 안의 것을 비우면 새로운 것으로 채우며 새로 거듭날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욕심들을 덜어내고 하루의 여행에 온몸을 맡기며 한국에서 짊어지던 것을 잊은 채 많은 나날을 지나왔다.

 많은 것이 사라지고 희미해졌으나 아직도 무언가 내 안에 잔재해 있다. 혼재해 있다.

 나는 그것을 정확히 정의할 수 없다.




 아침엔 여덟 시 반, 눈을 떴습니다.

 숙소의 일본 여행자가 여덟 시에 떠난다고 했던 기억이 들자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란 단어가 스쳐 지나갔고, 그 짧은 시간에도 애틋함이 있었던가 하며 이내 다시 잠들었습니다.

 밤잠보다 더 달콤한 잠이었습니다.

 다시 눈을 뜨고 샤워를 마칠 때쯤엔 한발 늦게 깨어난 장기가 움직이며 배고픔을 알렸습니다.

 한 것도 없이 벌써 배가 고플 수 있나 하며 뇌의 기만을 의심했지만 본능은 정직하고 탐욕스러워서 기어이 발걸음을 주방으로 옮기게 합니다.

 열한 시, 너무 늦어서 염치없는 시간에 조식을 물었습니다.

 짙은 눈썹과 쌍꺼풀, 두터운 입술을 찡긋거리며 거대한 체구를 흔들던 주방장은 이제 일어났냐며 웃더니 준비하겠다며 옥상에 올라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근사한 장소에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메일을 확인하고 아기새 마냥 식사를 기다립니다.

 조식으로는 빵과 계란, 바나나, 한잔의 짜이가 나왔습니다.

 길에서 종이컵에 담아주는 짜이에 비해 당도와 농도가 연합니다.

 떡볶이처럼 짜이 역시 길 위의 맛이 있나 봅니다.

 숙소는 오늘 비워야 하지만 야간열차를 타기로 했기에 짐을 맡기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도시 동쪽, 호수에 떠있는 궁전(실상은 잠긴 것이나) '잘 마할'에는 인도 전통 복을 입은 세 여인이 꽃다발 목걸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옥색의 호수와 그 중앙의 노란색 궁전을 배경으로 앉아있는 세 여인의 모습이 몹시 기묘하여 연신 눈길이 갔습니다.

 배경을 밀어낸다면 그늘도 없는 길가에 덜렁 앉아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명소 중 하나이기에 터를 잡은 것인가 과연 사려는 사람은 있는 것인가 생각하던 찰나에 인도 여행자 커플이 값을 치른 뒤 그것을 두르고 호수 난간에 기대어 포즈를 취했고 어디선가 나타난 이가 무릎을 꿇고 연신 사진을 찍었습니다.

 세 여인과 커플과 사진사와 잘 마할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뮤지컬을 보는 듯 기묘했습니다.


 몸을 돌려 포트로 가는 길엔 낙타 한 마리가 메어 있었습니다.

 관광 명소에 가깝기 때문에 메어있는 낙타인지, 생활에 사용하는 낙타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사막이 아닌 곳에 낙타는 자연스럽지 않았고, 전날 온종일 걷는 동안 도심에서 보지 못한 낙타가 이곳에만 있는 것 또한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낙타라는 동물 그 자체가 이국적이란 말에 어울렸으므로 사진을 남겼습니다.

 드문드문 도로에 과일을 파는 사람, 주스를 파는 사람, 로티를 굽는 사람이 제각각으로 있습니다.

 모두 행위는 하고 있지만 큰 의욕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인적이 드문 도로에서 그들이 노동의 대가를 얻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더러 도로에 누워 자는 이도 있습니다.

 세 여인과 커플, 사진사, 낙타, 상인들과 잠을 자는 이들을 봤습니다.




 어린 날 스스로 좋은 것을 많이 가졌다고 생각했었고 더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것들을 깎여나가고 나쁜 것이 몸과 마음에 엉겨 붙었다.

 어느 순간 그렇게 됐다.

 부단히 노력했으나 스며든 것은 쉬이 털어지지 않았고 내면에 쌓여 단단해졌다.

 수긍하고 받아들이고 흘려보내고, 그러다가 더는 안될 것 같아 "아니요"라는 말을 하고,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져 가는 나는 달갑지 않았다.

 이전보다 나의 가치관이 또렷하게 확립되고, 세상 속에서 내가 중요하다 여기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런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달갑지 않았다.

 이런 변화를 제외하더라도 머릿속은 늘 복잡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었고 답은 먼 곳에 있었다.

 아니 답은 내 곁을 맴돌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삶의 시야가 지금보다 더 좁아 내가 찾는 것이 업종이나 직무에 있다고 생각하는 탓에 모든 게 막막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더 값진 일을 하며 하루 끝에 보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했더랬다.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것처럼 하루의 일부분을 노동으로 보내야 한다면 그 역시 내 마음에 합한 것이길 바랐다.

 삶 속에 일이 일부로 존재한다는 것이 분리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을 때였다.

 나는 청춘으로 푸르렀고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어도 다시 타오를 만큼 뜨거웠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납득할만한 삶의 방향을 찾고 그리 살고 싶었다.

 

 회사를 출퇴근하는 동안 그런 고민에 대한 탐구 시간은 부족했고 절대적인 시간은 섭리대로 흘러 미래로 향했다.

 달력은 넘어가고 모험 가능한 시간이 줄어든다고 느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결혼, 집, 차, 소득 등 내 나이대의 과제가 앞에 즐비했고 그것은 거대한 성벽으로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떻게 살 것인가 묻고 내 삶의 방향을 찾고 싶은 마음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하나도 정해지지 않은 것, 정형화되지 않은 것, 누구도 내게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을 찾으려 애쓰는 동안 하루 안에서 스스로를 마주할 시간을 확보하려 노력했고 하루가 부족하면 일주일을 가져왔다.

 관심이 가는 것에 문 두드리고 도전의 발을 담갔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늘 시간이 부족하고 소중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동안 이전에는 쉽던 모든 것이 노력해야 되는 것으로 변했다.

 노는 것 하나도 선택하고 결심해야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의 절대량이 내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을 정리하고 탐구하며 오로지 내 안에서 답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허구한 날 사람들 틈에서 부대껴왔기에 그런 만남을 줄이는 것으로부터 시간을 확보했다.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전까진 눈을 감을 때 외엔 무엇을 해도 좋았기에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했고 사회와 타인에게 내 모든 시간을 내어주고도 여유와 기쁨이 가득했다.

 사람들과 즐겨 노는 것은 여하튼 원 없이 했다.

 그때는 같은 시간을 살며 바쁘다 말하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원 없이 즐겨봤기 때문인지 지금 갖는 시간의 소중함 때문인지 모든 시간이 나에게로 수렴한다고 해서 내가 갖지 못하는 타인과의 시간이 아쉽진 않았다.

 거리를 둔다며 서운해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으나 그들이 납득할 만큼 적합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타인에 대한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사람의 인연이 베어지고 단절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대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에 나는 큰 위안을 받고 당신의 삶을 응원하고 존중하므로, 그것으로 족하므로.

 

 어려운 것들이 으레 그러한 것처럼.

 답은 찾아지지 않았고 찾는 행위를 지속하는 것도 어려웠다.

 숨만 쉬다 한 달이 흘러도 알아서 들어오는 통장의 월급은 중독과도 같아서 발버둥 치지 않고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

 어떤 면에서 출퇴근을 반복하는 것이 가장 쉬운 것 같았다.

 수많은 마음의 파편들만 메모장에 떠돌았다.

 그 메모장들마저 너무 많이 쌓여 되돌아보지 않는 글자로만 남았다.

 이렇게 쌓이고 흘린 파편들은 혼란스러웠고, 어느 것이 진심인지 판별하기 힘들었다. 정리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뒤섞여 혼탁함을 알았기에 비우는 연습을 하고, 하나씩 비우며 파편들 속에 진심을 찾는다.

 비우고 다시 채우는 거다.


 한 번의 선택, 회사를 멈추고 세상으로 나가겠다는 말을 뱉고 사회가 정해둔 프레임 밖으로 나왔다.

 탑승한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떠나면서 순식간에 기존의 것들과 별개의 존재가 됐고 별다른 노력 없이 모든 사슬을 끊었다.

 나와 마음의 파편들만 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유효했다.

 그런 면에서 이 여행의 정점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던 그 순간인지도 모른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까지 모든 시간은 '온전히 나에게' 있었고 드리워진 의무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복잡한 생각도 시간의 유한함을 머리로만 알고 그 끝이 다가오는 것을 모르고 살 때 유효한 것이었다.

 삶의 모든 고민은 시간의 유한함 앞에서 별다른 노력 없이 사그라들었고 모든 것이 비워졌으니까.

 모든 것이 비워진 후엔 가장 중요한 것만 남았다.

 결국 많은 것이 욕심이었던가 보다.

 



 이전에 갔던 카페에 갔다.

 남은 시간 여유를 즐기기에 그만한 공간이 없는 것 같았다.

 여행자들에게 나름 인기 있는 곳이었던지 카페가 있는 루프탑엔 사람들이 많았다.

 한산할 때의 느낌을 떠올리며 찾아왔지만 사람들의 존재감과 저마다 대화를 나누며 발생하는 백색 소음 역시 좋아서 잠시 자리가 나길 기다렸다가 콜라와 물 한 병을 주문하고 앉았다.

 생전 즐겨 마시지 않던 이 검은색 탄산음료가 낮부터 그리웠다.

 목을 톡 쏘는 탄산의 청량함과 콜라 특유의 달달함에 미소 짓다가 하늘에 뜬 연과 지붕 위의 원숭이, 하와마할의 기괴한 창문들을 보고 해가 저물기 전까지 머물렀다.

 마찬가지로 Andra Day의 음악을 들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걷지 않고 오토 릭샤를 잡아 탔는데 흥정을 잘한 건지 10루피에 숙소 앞까지 왔다.

 내릴 때 그의 표정은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지체 없이 10루피를 쥐어주고 길을 건너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외지인에게 일단 높은 가격을 부르고 시작하므로 릭샤의 적합한 가격은 알 수 없으나 현지인들은 그보다 더 싸게 타는 것을 알기에 미안한 것은 없다.

 구글맵에서 목적지까지 거리에 따른 릭샤 가격을 검색할 수 있지만 해당 가격에 릭샤를 타는 일은 드문 일이다.

 기차를 기다릴 동안 숙소 주방 한편을 빌려 앉아있다가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빌려 얼굴과 발을 씻었다.

 발이라도 씻으면 피로가 풀린다는 엄마의 말에 따라 하루 여행을 마치면 발을 정성스럽게 씻고 있다.

 피로를 풀기 위한 의도를 차치하더라도 23시 45분에 출발하는 기차가 다음날 11시에 도착하기 때문에 어디든 씻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또 한 번의 밤을 맞이하고 있고 이제 야간열차와의 싸움이 다가온다.


 인도에서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

 지는 해와 부유하는 먼지, 버려진 쓰레기, 신발을 신지 않아 더러워진 발, 옥상 위의 아이들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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