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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Oct 11. 2023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피리 부는 게 꿈이라던 당신께

인도 다섯 번째 편지

 아주 작은 버스를 타고 쿠리 사막으로 가고 있다.

 낙타를 탈 것이다.

 군복무 시절 김호영 일병이 말하길 "인도를 다녀왔었는데 좋았다. 훗날 인도에서 낙타를 타고 피리를 부는 게 꿈이다."라고 했다.

 그 사막을 만나러 간다.


 도착하고 나서야 내가 기대하던 사막이 있음을 알았다.

 황금빛 모래의 땅.

 끝없이 이어지는 작고 높은 구릉.

 쉽게 파묻히는 발. 타는 갈증.

 사방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로 일그러지는 시야와 잃어버린 방향 감각.

 작렬하는 태양과 벗어날 수 없는 막막함.

 무심하게 파란 하늘. 그리고 고요함.


 그래서 사막에 오고도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내가 기대하는 사막을 찾아서.

 그런 것과는 사뭇 다르다.

 여행에서 나는 나의 이상을 찾고 있지만 돌아갈 현실 역시 이상과 다르다.

 사막처럼. 사막의 신기루처럼.

 그럼에도 유랑하는 자들은 신기루를 쫓고 오아시스를 찾아 헤맨다.

 오아시스가 어딘가에 존재하는 탓에.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쩌면 내면의 오아시스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지난밤부터 속이 좋지 않았는데 결국 탈이 났다.

 몇 차례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서 장염에 걸렸음을 깨닫고 탈수에 열이 오르지 않기 위해 연거푸 물을 마셨다.

 약을 짓고 수분 흡수가 빠른 이온음료를 마실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먹은 것 자체가 없으면 화장실 갈 일도 없다는 생각으로 아침은 거른 채 몸을 늘어뜨리고 방 안에 앉았다.

 아픔이라는 것은 몸에 힘을 빼게 한다.

 어딘지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경직돼 있던 것들도 몸의 허약함 앞에서 단박에 풀어진다.

 이따금 아프지 않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지만 건강할 때 가졌던 의욕과 욕심 사이의 치열함엔 전혀 비할바가 아니다.

 풀어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은 이전과 다르다.

 아침 햇살의 따스함 사이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나 역시 공기 중에 뒤섞여 있다.

 잠시 후 아뿌가 방문을 두드리며 사막행 버스가 도착했다고 한다.

 메마른 웃음을 지으며 알겠다고 답하고선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장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숙소 앞에 대기 중인 차에 올라타는 동안 주방장과 아뿌, 지배인 세 명이 나를 배웅했다.

 배앓이하는 나를 안쓰럽게 보는 아뿌의 눈동자에 온기가 있었다.

 우리가 만난 시간을 모두 더해도 24시간이 채 되지 않는데 내 안에 피어나는 애틋함을 느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상이 다반사인 여행 중 유독 인도에서 그렇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마음을 풀어지게 하는지 모르겠다.

 떠나는 순간에 사막에서 돌아와 이들을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한다.


 지난밤 옥상에서 떠들썩하던 대학생 무리와 동행하게 됐다.

 그들과 별다른 약속을 한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서로의 일정이 맞았다.

 혼자가 아니란 사실에 위안받고 잠깐이라도 스친 인연에서 기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다시 한번 통성명을 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문답을 한 뒤부터 차 안은 꽤나 떠들썩했다.

 그들의 인도식 영어는 말 간격이 매우 촘촘하고 억양이 독특해서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저 따라 웃을 때가 많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부터는 내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들의 말을 듣거나 창밖 풍경을 봤다.

 그들도 자국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편했는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는 나를 흘깃하며 본인들의 대화를 나눈다.

 인도어가 들리는 것이 즐겁다.

 이곳에 오기 전 나에게 인도란 <세 얼간이, 내 이름은 칸>이라는 두 영화의 나라였고, 인도어란 영화를 연상케 하는 강력한 매개체였다.

 저들의 대화 속 언어와 억양에서 영화 안에 초대된 느낌을 받는다.

 햇살이 비췄고 차 안에 그들의 웃음이 가득할 때마다 보석이 부서져 반짝이는 것처럼 눈부셨다.

 몸이 풀어진 나는 여전히 햇살에 뒤섞여 있었지만 그들의 반짝임은 햇살과는 다른 결정체였다.

 그 반짝임이 부럽다.

 나의 부러움이 그들의 여행인지 청춘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기사의 말에 따르면 지도에서 사막은 도시와 가깝지만 우리가 가려는 베이스캠프는 꽤 멀다고 한다.

 



 낙타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군대에서 만난 한 청년을 떠올렸다.

 작은 체구와 밤톨 같은 머리, 부리부리한 눈매에 두터운 입술, 근육으로 굵은 팔과 다리, 솟을 듯 튀어나온 엉덩이, 미성이지만 좋은 발성.

 특유의 부산스러움과 덜렁 거림으로 선임들에게 혼나는 것이 일상이었으나 쉽게 의기소침하지 않던 사람.

 맡은 일에 꾸준히 성실하며 누구에게든 인간적이었던 사람.

 장인에게 오카리나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아서 직접 오카리나를 만들던 사람,

 인도 여행을 다녀왔었는데 좋았다며 훗날 인도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피리 부는 게 꿈이라던 사람.

 부대원 모두가 알고 있던 그의 꿈은 무료한 군대 일상 중 우스개 거리 중 하나였으나 우습기보단 신기했다.

 그땐 어렸고 스마트폰이 없었고 워킹 홀리데이라던가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도 드물 때였으므로 인도가 어디인지 사막이 어떤 곳인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꿈을 갖고 있던 것이 부러웠다.

 물질이나 지위, 직업적인 것과 무관한 소망을 나는 품었던가 생각했다.

 선임이란 절대적 지위를 누리던 이들과 부리부리한 눈으로 수줍게 웃던 그도 나도 고작 스물한두 살의 나이였고 우리의 세상은 좁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을린 피부의 마른 남성이 터번을 두른 채 낙타 위에서 흔들거리는 것을 떠올렸다.

 상상 속 남자는 사막 능선을 넘었고 그의 무리는 일렬로 뒤따랐다.

 이따금 가늘고 긴 곰방대에서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지식이 적고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상상이란 빈곤한 구석이 있어서 그런 이미지만 반복적으로 떠올렸다.  

 그가 그리던 사막에 왔다.

 이제 사람들은 구태어 사막을 횡단하지 않고 낙타를 타지 않는다.

 사막용 차를 타고 여행자들이 오고 간다.

 사막 변두리에 아스팔트 도로가 깔렸고 그 도로 주변에 마을이 있다.

 그곳을 주거지로 삼은 이들은 여느 인생사처럼 산다.




 자이살메르에서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을 달려 쿠리 사막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베이스캠프의 책임자가 말하길 해가 지는 것을 보기 좋은 장소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해지는 것을 보고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하루 일정이 마무리된다고 했다.

 낙타 타고 사막을 건너가는 긴 여정을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사막과 낙타 단기 체험코스인 셈이다.


 인도의 어딘가는 사막을 건너야만 다음 도시로 갈 수 있는 것으로 알았다.

 이제 사막이란 애써 가려고 해야 가는 곳임을 안다.

 무작정 혼자 갈 수도 없다.

 스스로 일정을 세워 걸으면 되는 도시 여행과 달리 사막엔 길잡이와 숙련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이살메르로 오면서 찾아간 사막 여행 업체에서 말하길 여러 코스가 있는데 사막의 정수는 일주일 이상 여행에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에 수긍하며 장기간 사막 여행을 결심했다.

 막상 일정이 다가오자 용기는 부족해졌고, 나른한 귀찮음이 찾아왔으며, 마침 몸이 좋지 않았기에 그것을 핑계 삼아 단기 일정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놓치는 경험이 아쉽지만 아무렴 어떤가, 인도도 사막도 낙타도 처음인 내게 모든 경험이 즐겁고 경이롭다.

 마음은 참으로 얇고 쉽게 위안거리를 찾는다.


 잠시 후 사막으로 인도할 이들이 도착했고 낙타와 낙타를 끄는 한 소년을 만났다.

 소년의 이름은 아수라고 했다.

 아수의 도움을 받아 무릎을 꿇은 낙타의 안장에 올라탔다.

 이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낙타란 존재는 타는 즐거움보다 타본 경험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딱딱하고 불편한 등, 뻐시고 엉킨 털, 주변을 맴도는 날파리들.

 낙타를 탄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간직하는 게 더 유용한 듯했다.

 하지만 공간을 격하고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사막의 초입에서 안쪽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결국 스스로 걷거나 이동수단을 필요로 하는데 모래로 이뤄진 지면을 견디며 걷는 것보단 딱딱한 등에 타 있는 편이 이동에 수월하다.

 낙타 등 위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을 때쯤 높은 시야로 사막을 본다.

 모래로 이뤄진 땅이 있었고 시야는 단조롭다.

 사막이기에 더 덥진 않았다.

 그저 사막이었다.

 낙타의 이동에 따라 흔들리는 몸을 지탱하는 동안 다시 김호영 일병을 생각했다.

 왜 사막이어야 했을까.


 해가 땅으로 내려오면서 푸르던 세상이 물들기 시작했다.

 모래 위에 지은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하늘이 매우 높았고 그 하늘이 물들었으므로 세상이 물든 것과 같았다.

 모래는 빛에 물들지 않았다.

 낙타 위에서 내려와 사막을 걸었고 모래의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더 높은 구릉으로 가면 더 근사한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발걸음 했지만 구릉 위에 서면 그보다 더 높은 구릉이 저 멀리 보였다.

 어디든 지금 있는 곳이 가장 좋은 곳이었다.

 앉은자리에서 양손을 들어 머리를 감싸 안았다.

 석양이 지는 사막은 모든 순간을 사진에 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사진을 찍으려 애쓰다 쉬이 감동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 순간에 머물러 세상을 본다.

 노래가 듣고 싶었는데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핸드폰에 저장된 곡들을 무작위로 틀었다.

 음악으로 인해 공기의 질감이 달라지며 다시 한번 세상이 물든다.


 한참 뒤 해는 땅 밑으로 내려갔지만 여전히 하늘은 물들어 있었고 열기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에도 해의 온기만큼 일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기력이 없는 몸은 풀어졌음에도 내면에 단단한 중심이 있었다.

 그 순간 내면의 충만함으로 내 모습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땐 끝내 순간을 간직하고 싶은 욕망보다는 욕망이 해갈된 뒤의 맑은 감정이었다.

 카메라를 가지고 돌아다니던 아수가 다가와서 사진을 찍어줬다.

 사막 여정을 시작 한 뒤부터 한참을 재잘거리던 아수가 카메라에 많은 관심을 보여서 쉬는 동안은 내 카메라를 건네줬다.

 사막에 눕고 걷고 앉아 있는 동안 내면에 알 수 없는 평화가 가득했다.




 일정을 마치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니 캠프에서 숙박할지 사막의 텐트로 가서 야영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잠시 사막에서 자는 낭만과 도전이 고개를 들었지만 여전히 몸이 좋지 않은 탓에 캠프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예정돼 있던 물갈이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됐다.

 온갖 길거리 음식을 먹는 데다가 건네주는 차를 마다하지 않고 마시니 스스로도 언제 시작되나 싶었는데 하필 그게 사막에 오는 날이었을 뿐이다.

 일행들 모두 별다른 고민 없이 베이스캠프 숙박을 희망했다.

 사막의 밤은 느리게 다가와서 급작스럽게 어두워졌고 식사를 알리는 외침이 들렸다.

 준비된 식사를 앞에 두고 잠시 고민했으나 결국 먹기로 했다.

 모닥불에 둘러앉은 분위기와 그들이 마련해 준 만찬을 밀어낼 수도 없었지만 빠른 회복을 위해 종일 굶주린 몸이 음식 냄새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아수 역시 저만큼 멀리에서 동료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

 낙타를 타는 동안 내 몸상태로 인해 몇 번이나 멈춰야 했고 다른 일행들과 간격을 고려하느라 아수가 고생했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왔을 때 감사 인사와 함께 팁을 건넷지만 성에 차지 않았는지 불퉁한 표정을 하고는 훽 돌아서 가버렸다.

 타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꽤 많은 팁을 줬던 걸까 괜히 초라한 현금을 건네서 미움만 샀다.

 그 적은 금액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저녁은 훌륭했다.

 그간 굶은 것이 유효했는지 속이 예민하지 않았다.

 풍족한 식사와 음악과 흥겨운 춤이 있었고, 아홉 시 이십 분 하늘에서 달이 사라지며 달빛에 가려졌던 별이 하늘을 채웠다.

 별을 잘 보기 위해 베이스캠프에 켜진 불빛을 다 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사막을 생각했다.

 이제 와서 사막에서 야영을 청할 순 없지만 어둠이 내린 사막이 궁금하다.

 모닥불을 빙 돌아 캠프 책임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흔쾌히 알겠다며 캠프에서 일하는 청년을 붙여준다고 했다.

 당연히 해야 할 경험이라고 말해주는 듯한 그의 태도가 반갑고 감사하다.

 식사를 마치고 다가온 청년은 왠지 나보다 신난 얼굴로 친구 둘을 붙들고 왔고 우리는 지프차에 옹기종기 모였다.

 이들은 베이스캠프를 나온 것 자체가 즐거운지 음악을 틀고 환호성을 질렀다.

 어둠이 내린 사막에서 지프차는 용케 방향을 잡으며 빠르게 내달린다.

 잠시 후 구릉 위의 몽골 텐트에 도착했고 그들이 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떠드는 동안 나는 매트를 적당한 위치에 펼치고 하늘을 향해 누웠다.

 어둠이 내린 사막에 빛나는 것은 달과 별뿐이다.

 사람이 만든 조명도 하늘의 빛이 반사될 물도 없다.

 별이 밀집된 은하수로 인해 하늘은 희뿌옇게 빛나고 그 별들로 인해 사막 언덕의 형태가 멀리서도 뚜렷하다.

 고개를 우측에서 하늘 그리고 좌측으로 돌리는 동안 모든 것이 별이었고 별이 없는 곳은 사막이었다.

 별을 카메라로 찍어보려고 노력하고 다시 눈으로 보길 반복하는 동안 별을 몹시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사막으로 불시착한 어린 왕자를 생각한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사막의 고요함과 어둠을 달 없이 별이 비추고 있다.

 야간 기차를 타고 간 지리산 노고단에서도, 필리핀에서 야간 스쿠버 다이빙을 마치고 물 위로 올라왔을 때도, 노르웨이 오두막에서 쌀밥을 성공한 그날밤에도 수없이 많은 별들이 있었다.

 몇 억 광년의 거리와 시간을 넘어온 별빛은 내 짧은 인생 중 언젠가와 다름없이 동일하다.

 변한 것은 나뿐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김호성 일병이 말했던 사막은 내가 보고 겪은 사막과 다를 것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것처럼 각자의 여행도 달랐을 테니까.

 그래서 그가 말하던 꿈은 그의 여행과 삶을 듣고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될 듯하다.


 그의 이야기를 이제 들을 수 없으므로 이 글들로 내 이야기를 먼저 전한다.

 나는 내면의 오아시스를 찾아 이곳에 왔다.




 별이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여행이 끝나면 어떻게 하나

 여행이 끝날게 너무 아쉬워

 영원히 지속할 수 없는 이 여행이 언젠가 끝나는 게 아쉬워

 이 세계와 헤어지고 이곳에 있을 시간이 다시 안 올 것이 아쉬워

 사람들은 이 여행이 다시 있을 거라고 언제든 할 수 있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걸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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