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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 형' 미우나 고우나 "넌 또 다른 나"

형제나 남매가 있으면 더 인상깊은 영화가 된다.

by 무적스팸

크리스토퍼 드 빙크 의 ‘올리버 스토리’에서 이런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에릭시걸의 ‘올리버스토리’가 아닙니다.^^;)


“피할 수 없는 슬픔에
결코 절망해서는 안되고,
그 슬픔을 깊이 받아들이면
슬픔은 오히려 선물이다”


올리버는 어머니가 임신 중 석탄가스 중독 사고를 당함에 따라 장애를 지닌 채 태어납니다.


손, 발, 그리고 머리가 이상적으로 커서 자신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으로 말입니다. 옆방 형 올리버의 숨넘어 갈듯한 신음 소리는 어린 시절의 주인공에게는 최대 공포였습니다.


그 방에서 무방비로 아무에게나 내맡겨진 형의 짓무른 살을 쓰다듬어 보고 거친 숨소리에 맞춰 따라 숨도 쉬어 보면서 주인공은 자연스레 형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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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안권택 신인 감독의 영화 ‘우리형(2004 .10.08 개봉)’을 보고 나서 이 ‘올리버 스토리’가 생각났습니다.


언청이로 태어난 형 성현(신하균 분)은 엄마(김해숙 분)의 관심을 받으면서 자랍니다. 반면, 동생 종현(원빈 분)은 엄마의 관심이 온통 성현에게 가있는 것과 돈을 벌기만 하면 형 성현의 구순구개열 치료 수술을 위해 쓰는 것이 불만입니다.


이런 연년생 성현과 종현은 같은 학교에 다닙니다. 형 성현은 전교 1등을 꽉 잡고 있는 모범생인 반면 종현은 공부가 아니라 싸움 짱(!)으로 학교를 꽉 잡고 있습니다.

종현은 형 성현과 같이 다니는 것을 꺼리고, “형”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맨날 반말입니다. 성현은 한 여자(이보영 분)를 보게 되고 좋아하게 되지만, 적극적인 종현의 모습에 자신의 감정은 숨긴 채 그냥 넘어갑니다. 그러다 종현의 싸움에 싸움도 못하는 성현이 끼어들면서 형제는 둘 사이의 묘한 친밀감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을 갖고 살아갑니다. 부모와 형제는 태어날 때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우리의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필수 불가결(不可缺)의 요소 중 하나입니다. 가족 중 배우자는 예외이긴 하네요.


그런 필수 불가결의 한 요소인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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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날 낳아준 분이기에 운명처럼 쉽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형제는 운명이라기 보다 그냥 주변인물로 생각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처음 사회를 배우게 되는 것도, 사랑과 우정을 배우게 되는 것도 '형제' 혹은 '남매' 혹은 '자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형제애는 친구에게서 아니면 애인에게서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에게 심어줍니다.


친구 같고 때론 경쟁상대가 되기도 하지만, 진정 필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형제는 “또 다른 나”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 얘기를 좀더 하자면 신하균 역의 아역배우는 정말 신하균의 어린 시절을 담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원빈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나약한 모습이 아니라 강한 남자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통상적으로 신인 감독들의 영화는 별로 기대하지 않고 보는 경향이 좀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대부분이 그러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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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형’은 신인 감독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편집이나 스토리 구성의 복선들이 생각보다 탄탄했습니다. 어떤 관객들에게는 읽힐 수도 있고, 종종 어떤 영화에서 본 듯한 느낌의 장면들이 속출하긴 하지만 말이죠.


보고 나서 뿌듯한 영화였습니다.

종현이 형 성현에게 물어봅니다.


“니는 그렇게 태어난 거 신경질 나지 않나?”


라고… 그러자, 형은


“이렇게 태어난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라는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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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모습과 어떤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함께 나눌 형제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이만 줄입니다.


나를 닮은 또 다른 나를 생각하며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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