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후기
이제서야 윤식당 2를 정주행했네요.
다른 어떤 tv 프로그램보다 재미있게 봤습니다.
방송하는 내내 여러가지가 화제가 됐었죠. 출연자들의 위생 문제를 질타하는 일부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었습니다. 그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다 보고 나니 그런 부분을 문제 삼는 시각이 매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부 시청자들이 정유미씨가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음식을 하다가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박서준씨는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채로 음식을 만들어서 불편했다, 윤여정씨는 장갑을 낀 채로 이것저것 만지다가 음식을 했다며 비위생적이라고 질타했습니다. 나영석 피디는 "미처 그런 부분까지 신경쓰지 못했다"며 다음부터는 주의하겠다며 재빨리 진화에 나섰습니다.
위생의 기준이 뭘까요. 언제부터 위생의 기준이 머리수건과 입마개 마스크가 됐나요.
머리수건과 입마개를 쓰면 위생적인 식당인가요.
윤식당에서 회식했던 식당의 쉐프들이나 주말에만 문을 여는 유명한 피자집의 쉐프들이
머리를 꽁꽁 동여싸매고, 불순물이 나올 수 있는 입과 코는 마스크로 빈틈없이 가렸던가요.
골목식당같은 프로그램에서 위생 문제를 제기했다면 타당하지만,윤식당2는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아니잖아요.
이건 마치 전래동화를 이야기해줬더니 '그게 말이 되냐, 팩트야? 도깨비가 나오고 코가 길어지는 건 허위사실인데 아이가 그걸 진짜라고 믿기라도 하면 어쩔꺼야'라며 따지고 드는 황당한 상황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전래동화는 교훈과 상상력, 재미를 위한 것이지 사실 증명을 위한 건 아니니까요.
윤식당 2에는 생각해 볼만한 더 재미있는 요소가 많은데, 어째서 시어머니처럼 팔짱을 끼고서
도덕보안관이라도 된 것 마냥 행동하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천연수영장과 예쁜 건물, 여유로운 사람들의 표정만 봐도 어쩐지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는데 말이죠.
윤식당2를 촬영한 가라치코 마을은 이번에 처음 들어봤는데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세상에 멋진 곳이 정말 많다는 생각과 이 넓은 우주의 작은 행성인 지구마저 다 돌아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건 조금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뿐만 아니라 볼거리가 또 있었는데요. 다양한 관점과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한식의 재발견입니다.
윤식당2는 비빔밥과 잡채, 갈비, 김치전, 닭강정, 호떡을 주 메뉴로 판매했습니다. 우리한테는 아주 익숙하고, 새로울 것도 없는 음식이죠. 쉐프의 레시피라고 해도 예상할 수 있는 맛인데, 사람들이 너무 맛있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좀 의아했습니다. 제가 별로 안좋아하는 한식 종류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윤식당을 들른 모든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니까 그 음식의 맛을 다시 떠올려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정말 맛있나? 어떤 부분이 맛있지? 라고 생각하게 되고요. 국적을 불문하고 사람들이 다 맛있어 하는 모습에서 묘한 자부심같은 것도 느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한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편견이 있었고, 덩달아 자신감도 부족했거든요.
만약 제가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하는 파티에 한식을 준비해서 가야하는 상황이라면 정말 부담스럽고, 맛없다고 안먹을까봐 상처받을 걱정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김치전같은 음식보다는 그나마 외국 사람들 입맛에도 맞을 것 같은 무난한 맛의 음식을 메뉴로 정했을 거 같고요.
윤식당을 찾은 사람들은 한식의 어떤 점이 좋았을까요? 제가 볼때는 열린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새로운 음식이 맛있게 느껴졌을 거 같습니다.
손님들은 대부분 30대 이상의 사람들로 평균은 아마 50세쯤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익숙한 것이 좋고, 새로운 것에는 거부감이 먼저 든다고 하는데,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한국 tv 방송에서 프로젝트 성격으로 하는 식당에 와보고 싶어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습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이런 이벤트를 벌인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요. 주민들은 우리 마을에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종종 하곤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똑같은 형식으로 외국인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20~30대의 젊은 사람들은 좋아할 수 있겠지만, 50~60대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아이같은 표정을 하고 식당을 방문했을지는 의문입니다.
열린 태도가 항상 좋고, 보수적인 태도가 항상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낯선 이에 대해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그들의 태도가 조금 부럽긴 합니다. 우리 안에는 얼마나 많은 선입견과 장벽이 있는 걸까요. 이 마음의 벽은 우리가 살아온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의 열린 마음은 '경험'을 소중히 생각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식당을 경험해봐야지라고 생각하고, 한국 음식을 먹어본 경험, 젓가락을 사용해 본 경험, 매운 고추장을 먹어본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나이가 들어도 무언가 도전하는 걸 겁내지 않고 즐기는것 같더라고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른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유모차에 어린 아이를 태우고 와서 우아하게 식사를 하던 부부를 보다가 깜짝 놀란 장면이 있습니다. 이제 돌도 지나지 않았을 거 같은 아이에게 엄마가 손으로 김치전을 뜯어서 입에 넣어주는 장면이었는데요. 아이는 순간 인상을 지푸리면서 몸서리를 칩니다. 그런데 엄마는 이런 거 먹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한번 더 입에 넣어주더군요. 어릴 때 새로운 음식,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관점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12개월 전까지 소금이나 설탕의 존재도 모르고 크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소금이 아이의 신장에 무리를 줄 수 있다는 "의사"의 이야기가 지배적이라 아이에게 먹이는 음식에는 소금을 최소한으로 쓰는거죠. 24개월 전까지 김치나 고춧가루도 먹지 못하는 아이도 많습니다. 먹어도 씻어서 먹이는 게 대부분이죠. 6~7살이 되서도 조금만 고춧가루가 들어가도 먹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어른 입맛에 맞춘 김치전이라니. 우리나라에서 누군가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김치전을 먹인다면 '미친 엄마'라며 손가락질하며 다른 아이 엄마가 사진을 찍어서 유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서진씨가 아이를 준다면서 슈퍼에서 막대사탕을 몇개 사갈 때도 저는 속으로 '저건 아닌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들은 자기 아이에게 사탕을 주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그 엄마는 아이가 지금 먹지는 못하지만 고맙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마음을 본거죠. 그 아이 엄마를 통해서 저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되더라고요.
나이가 들어서도 저런 마음을 갖고 산다면 젊은 사람과 소통하기도 더 쉬워지고,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것을 보고 먹고 느끼는 것도 더 즐거울 거 같습니다.
출연진들도 보통 분들은 아닌데요. 이서진씨는 보면서 천상 사업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첫날 문을 열자 사람들이 관심은 갖지만 메뉴만 보고 가는 현상을 유심히 지켜보고, 메뉴가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지 않다고 판단을 합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메뉴로 잡채를 제안합니다. 현재 구성원의 실력에서 할 수 있는 게 뭔지 먼저 판단하고,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것 중에 간단하면서 사람들에게 식사로서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것, 잡채라고 판단한 거죠.
영업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서 디저트 플레이팅을 바꿀 걸 제안하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처음 플레이팅이 큰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았거든요. 끊임없이 뭐가 더 좋을까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게 보이더군요. 작은 식당을 하나 운영하더라도 경영자란 어떤 관점과 시각을 지녀야 하는지 이서진씨를 통해서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박서준씨를 기용한 건 신의 한수라고 봅니다. 제작진도 인터뷰에서 박서준씨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고 할만큼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안봐서 박서준 씨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데 요즘 인기가 많다고 하니 괜한 거리감도 들었습니다. 원래 시즌제 프로그램의 경우 전편을 재밌게 봤던 사람은 그 출연진들과 애착관계가 형성돼서 다음 시즌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올 때 거센 저항을 하곤하죠.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매번 반복되는 여성 주인공에 대한 저항이 대표적이죠.
어쨌든 박서준씨는 소위 대박을 친 프로그램에 숟가락을 얻는 모양새로 들어왔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편안함으로 단숨에 안티도 팬으로 만들어 버리는 힘을 갖고 있더군요. 누군가 과하게 열심히 하면 보는 사람이나 같이 있는 사람이 불편해질 때가 있는데 박서준씨는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열심히 하더라고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 같은 피곤한 걱정은 하지 않고 오로지 일에 전념하는 모습이 진실되고 소탈하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모든 게 과하지 않고 딱 알맞게 하는 게 그의 특장점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주방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윤여정씨는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예능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나영석 피디가 좋아하는 게 당연하죠. 한마디로 하자면 할머니같지 않은 할머니인거죠. 패션 감각이 좋고, 외국 문화에 익숙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순간순간 사람을 긴장시키는 촌철살인을 날리죠. 그런데 이번에는 음식하느라 매우 고단해 보였고, 그녀 특유의 맛깔스러운 멘트들은 보기 힘들었습니다. 가느다란 팔로 후라이팬 드는 것도 힘겨워하면서 겨우겨우 주방 일을 하는 게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윰블리라는 별명을 얻은 정유미씨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낯가림이 심하고 자신감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보여도 약간 뒤로 숨는 것 같은 느낌이더군요. 식당에 온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어울리는 걸 불편해 하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알바생이 모든 걸 능수능란하게 처리하고 진행하다 보니 과장이라는 타이틀을 단 정유미씨가 상대적으로 더 어리숙해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저 개성이 강하고 비주얼이 아름다운 배우들을 식당 주방과 홀서빙에 한정시켜놓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그들을 활용한 조금 더 예능적인 요소가 보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다 보고 나니 만약 그랬다면 이도저도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식당은 철저하게 출연자가 아닌 손님에게 포커스를 맞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윤식당 3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