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주고 싶은 물건이 있나요?

물건의 가치

by 티타임

태어난 지 10여년 만에 새집을 지어서 이사를 갔습니다. 넓고 깨끗한 집에 엄마는 하나둘씩 가구를 들여 놓았고, 학교 갔다 왔더니 안방에는 새 장롱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즐거워하는 엄마와는 다르게 저는 너무 속상해서 울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비싼 거라고 했지만,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보아도 장롱은 허접하고, 엉성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물론 제 취향이 아닌 게 가장 결정적이었지요. 그 장롱은 십장생이 새겨진 원목 장롱이었는데, 어설프게 조각한 학과 소나무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고, 따로따로 조각해서 붙여놓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위에 싸구려 코팅 제품을 덧발라서 대충 마무리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죠.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 만큼 끔찍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런 물건을 엄마는 왜 산건지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 엄마한테 나는 그 장롱이 정말 싫다며, 왜 그런 제품을 샀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엄마는 아빠와 같이 가구점에 갔는데 엄마가 원하는 제품 대신 아빠가 가격이 훨씬 저렴한 그 장롱을 골랐다더라고요. 그러면서 엄마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역시나 얼마 가지 않아 손잡이가 떨어지고, 하나둘씩 고장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13살쯤이었는데, 20여년이 지나도 그 장롱은 좋아할 수가 없었고, 최근에 엄마한테 보답할 일이 생겼을 때 얼른 새 장롱을 선물했습니다. 새 장롱도 최고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급스럽고 튼튼해 보였습니다.


구구절절한 옛날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물건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외국에는 대를 이어서 가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TV를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요. 예능프로그램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였던 거 같은데요. 어떤 외국인의 집에 갔는데, 주인공이 친구들에게 가구를 보여주면서 자랑스럽게 할머니가 쓰시던 가구라고 소개하던 장면이었습니다. 그 물건에 담긴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브라운관 너머로도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제 머리 속에는 왜 우리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가구나 물건이 없을까, 나도 할머니의 할머니가 쓰던 가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나중에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집안에 엄마가 쓰던 물건이 있다면, 엄마를 추억하기에 더없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집안을 둘러보니 물건이 달리 보였습니다. 역시나 제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엄마가 결혼할 때 혼수로 사온 장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이렇게 가구에 관심이 많았는지 새삼 깨닫는 중입니다.) 좋은 건 아니었지만 저와 거의 나이가 같고, 30여년을 넘게 제 역할을 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그 장롱이 어딘지 특별해 보였습니다. 나중에 저 장롱만은 제가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이 디테일하고 아름다운, 백제금동대향로.


새삼, 좋은 물건이란 뭘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 명품이라고 부르는 물건이 좋은 물건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산 물건이 좋은 물건일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브랜딩이라는 말로 거창하게 이미지를 덧씌워놓은 제품이 좋은 제품일까요.


일회용같은 물건의 홍수 속에 살다보니 어느 순간에는 물건 자체를 혐오하기도 했습니다.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다 갖다 버리고 완전한 미니멀라이프를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는 못하고, 소극적으로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면서 내다버릴 물건과 간직할 물건을 나누는데, 비싼 건 아니더라도 귀하다고 느껴지거나, 추억이 있는 제품은 차마 버리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렇다고 물건을 ‘아가’라고 부르면서 애지중지하거나, 진열장을 만들어서 ‘감상’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물건은 제 기능을 할 때 비로소 빛이 난다고 봅니다. 신어야 하는 신발을 한정판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들이고, 진열해 놓고, 재테크한다고 파는 삶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물건이 아닌, 이를 테면 장인이 만든 것처럼 '좋은' 물건을 곁에 두고 산다는 건 삶의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허접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에 버릴 수가 없어서 방 하나에 가득 쌓여있는 물건이 삶의 피로도를 높이고 자존감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면, 반대로 정말 정성들여서 가장 좋은 재료와 오랜 시간의 노하우를 들여 만든 좋은 물건은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좋은 물건과 삶의 만족도, 가치관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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