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토토가 3를 보고 울었을까

HOT 그리고 80년대생 우리들

by 티타임


시작 전에는 말이 많았다.

오래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더 컸던 건지 무한도전의 식은 인기를 반영이라도 하는 건지 HOT가 재결합 무대를 선보인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생각보다 반응은 미지근했다. 불과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기대보다는 작은 공연장과 설날 공연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더 많은 듯 했다. 하지만 막상 공연 참가자 신청을 받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급하게 더 큰 공연장으로 옮기면서 뭇사람들의 기대에도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84년생인 나는 HOT팬이었다. 내 기억 속에 누군가를 좋아했던 건 HOT가 처음이었고, 아주 강렬했다. 공연을 쫓아다니거나 잡지책과 팜플렛, 사진, CD를 사서 모을 상황은 안됐지만 나는 격정의 사춘기를 HOT를 생각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로 채웠다. 아직도 TV화면 속 뮤직비디오 한 장면에 마음이 설렜던 그 순간이 머릿 속에 생생하다. 친구들도 10에 9명은 HOT를 좋아했다. 사촌 동생 방과 친한 친구 방에는 그들의 사진이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고, 학창 시절 우리들의 수다는 그들의 관한 이야기가 대다수였다.


그렇게 몇년을 좋아했지만 열성팬은 아니었던지 그들의 해체 소식이 들려올 때 쯤에는 크게 감흥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뒤를 쫓아 새로운 아이돌 그룹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그들은 해체했고, 누군가는 솔로로, 누군가는 그룹을 다시 만들어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어쩐지 그들의 얼굴을 늘 어두운 것처럼 보였다.

challenge_photo180226183733entertain1.jpg 사진출처. 무한도전 공식 홈페이지

팬들에게는 아이돌 그룹이 해체한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당시에는 아이돌 그룹 내의 불화나 의견 차이같은 건 방송 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이고, 늘 칼군무와 끈끈한 모습만 보여졌기 때문에 그들은 마치 한 몸처럼 보였다. 떨어질 수 없는 존재였다. 해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팬클럽은 SM 사장인 이수만의 장례식을 치르며 '저항'했다.


지금 어른이 돼서 생각해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나도 얼마 전 연봉 협상을 하고는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자존감이 낮아지는 상황에서는 다른 방안을 찾는 게 답일 수도 있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그들도 이런 문제였을 것이다. 재계약을 한 멤버는 그 멤버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을테고, 그에 동의하지 못하는 멤버들은 또 그만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아나운서의 프리선언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됐고, 연봉 협상 이후에 이직을 하는 회사원을 비난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분명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쨌든 HOT는 공중분해됐다. 믿었던 사실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상처를 추스르는 건 개인의 몫이었다. 간간히 재결합 소식이 들려왔지만 번번히 무산됐다. 1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재결합과 무산은 반복됐고 HOT는 없다는 사실을 점차 받아들이는 듯했다.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 과정들이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른이 되는 과정이었던 거 같다.
시간도 많이 흘렀다. 우리의 10대 시간은 HOT를 빼놓고는 기억의 파편을 맞출 수 없지만, 우리의 20대에는 그들은 없다. 입시와 남자친구, 취업, 해외연수 같은 흑역사가 더 많다. 이제는 30대가 됐다. 아직도 또래 중에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팬이 되는 건 좀 남사스럽다. 그보다는 취업이나 결혼이나 해외여행, 인테리어, 요리, 캠핑 등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challenge_photo180226183733entertain0.jpg 사진출처. 무한도전 공식 홈페이지


그렇게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잊고 살았는데, 다시 한무대에 선다는 소식에 들렸다. 여전히 HOT팬을 자처하는 친구와 다르게 나는 HOT팬이 아니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없었다. 포털 연예 뉴스에 무한도전 토토가 3에 HOT가 나온다는 소식에 별로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공연날이 되니 검색을 해보고, 방송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믿었다가 발등 찍혔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턱대고 좋아할 수 없었다. 공연이 열리는 그날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만났다. 드디어. 그리고 공연을 하고 예전처럼 칼군무를 추며 공연을 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들의 노래에 맞춰 가사를 부르고 있었다. 수많은 시간이 지나고 그 시간동안 다시 HOT 노래를 듣거나 부른 적도 없었던 거 같은데, 중학교 1학년 일요일 오후에 인기가요를 보며 목이 터져라 불렀던 그 노래를 잊지 않고 따라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방송을 보는 내내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왜 울었던 것일까. 그들의 재결합을 기다렸던 적도 없는데.


나만 울었던 건 아니었다. 이제 아이 엄마가 되고, 기자가 되고, 캐나다에 이민 간 80년대 생들은 다시 토토가 3를 봤냐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서먹했던 시누이와 HOT 이야기를 하자 갑자기 친한 언니 동생 사이처럼 느껴졌고, 직장에선 평소에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던 동료와 HOT로 이야기의 공감대를 만들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그들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HOT 팬이 아니었던 사람도 방송을 보는 내내 울컥했다고 했다. 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깔깔대며 웃다가 대성통곡하는 모습 앞에 남편들이 정신나간 사람처럼 쳐다봤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challenge_photo180226183733entertain5.jpg 사진출처. 무한도전 공식 홈페이지


말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X세대, N세대라고도 했고, 나중에는 88만원 세대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3포세대, 5포세대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떤 세대라고 불러본 적이 있던가? 공동체는 집단 기억으로 유지된다고 한다. 80년대생들의 가장 최초의 집단 기억은 대통령 직선제도, 88올림픽도 아닌 HOT일 것이다. IMF도 있지만 그건 사실 우리의 기억보다는 우리의 부모님에게 받은 기억일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우리 세대에 이름을 붙여보자면 에이치오티 세대가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아직도 나는 왜 그렇게 울었는지 의문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