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클라우드 도시작가/누군가의 작업실 편.
지난 10월 20일, 스페이스클라우드 도시 작가들과 함께 상수동을 대표하는 ‘누군가의 작업실' 공간 탐사를 다녀왔다. 그중 작가이자 예술가인 김상우 님이 운영하는 이리카페의 이야기를 공유하려 한다. 작가&예술가의 작업실이자 협업공간인 이리카페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
유자차, 매실차, 모과차 이런 것들은 지금 드셔야 해요. 11월 즘에 1년 치 먹을 것을 담아요, 김장하듯이. 담아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1년 동안 쓰는 거예요 지금 모과차가 제일 맛있을 때에요. 모과차는 오래되어야 맛있어요. 묵히듯 해야 맛있거든요.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누군지 모를 사람들에게 과실차를 설명하는 작가님. 한참을 끄덕이며 듣다가 잠시 침묵이 이어졌고, 초롱초롱한 우리들의 눈동자에 긴장하신 작가님이 갑자기 본인 소개를 먼저 해주셨다.
저는 이리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김상우라는 사람입니다. 부산에서 오래 살았어요. 이리카페는 2004년에 서교동에서 시작되었어요. 그때는 반지하였습니다. 장사 잘하고 있는데 5년이 지나니까 주인이 조카가 카페를 해야 한다며 나가라더군요. 임대차 보호법이 5년 이거든요. 5년 뒤에는 주인이 나가라면 무조건 나가야 해요. 그래서 2009년에 상수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가끔 술 먹고 서교동에 가봅니다. 가서 카페 이용도 해보고, 저기서 내가 커피 만들었는데~ 하면서요. 거기는 서교동 미술학원이 많이 있는 그쪽 근처였어요. 참 재밌었던 게 그때 거기가 옛날 목욕탕이었어요. 그 동네가 아무것도 없었어요. 미술학원도 그때는 많이 없었거든요. 홍대 내에서도 번화가 쪽이 아니라 외진 곳이었습니다. 장사를 하다 보니 하나씩 뭐가 생기고, 재미있는 가게도 생기고, 재밌는 사람들도 모이고 부동산 집세가 오른 거죠. 지금 이 상수동은 과거에 비해서 2.5배쯤 오른 것 같아요. 2009년이니까 지금 딱 9년째입니다. 2.5배 정도 올랐고 건물 주인이 한 번 바뀌었어요.
아무것도 없었다는 작가님 말씀이 믿기 어려웠다. 과거 이 동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질문을 드렸다.
그때 아무도 없었어요. 서교동에서 상수동으로 넘어올 때 이리카페를 좋아했던 단골손님들이 같이 왔어요. 우리들 주변에 맛있고, 편안한 의자에 인테리어가 예쁜 카페들 많잖아요. 사람들은 그런 것도 좋아하지만 그런 것 외적인 것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때는 이 동네가 비싸지 않아서 많은 예술가들이 자취를 했어요. 서교동에서 자취하는 분들도 걸어서 2-30분 되는 거리를 걸어와서 상수동에서 같이 놀았죠. 그때 제 나이가 서른 중반쯤 되었거든요. 그분들이랑 맨날 가게 마치는 시간에 노래 부르고 술 마시고 놀았어요. 그때는 가게 안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어요. 지금 우리가 이야기 나누는 이곳이 분리되는 공간인데, 예전에는 금연실이었어요. 담배 안 피시는 분들은 이쪽에서 작업하는 공간이었죠. 이리카페는 담배 많이 피우는 카페로 유명했었어요. 하루아침에 법이 생기더니… 좋은 거 같아요 담배 안 피우는.. 하하하하.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런 이야기도 굉장히 유쾌하게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역시 작가는 작가라고 생각되었다. 대화를 나누는 ‘분리된' 이 공간에는 책이 굉장히 많았다. 딱 보아도 구하기 어려운 예술 관련 잡지나 책이다. 예술 관련 서적들은 대부분 영문이다. 나도 외국에 여행 가면 오래된 서점에서 예술 관련 서적을 찾아보는 취미가 있는데, 이 공간에 있는 책들을 보아하니 꽤 오랫동안 모은 것 같았다. 도시 작가들은 상우 작가님에게 이 책들에 대한 것과 공간을 이렇게 꾸미게 된 부분을 질문했다.
이리카페는 시 쓰고 음악 하는 저 김상우와 미술과 디자인을 하는 이주용이라는 친구와 동업하고 있어요. 그 친구가 뉴욕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그 친구가 패션도 공부했었어요. 미국에서 들어올 때 아마존에서 주문한 책들이에요. 되게 희귀 서적이 많아요. 예전엔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으니까 이런 책은 도서관 가야 볼 수 있었어요. 바로 뒤쪽에 위에 잡지들이 있어요. 예전에 서교동에 있을 때에는 보기 힘든 외국 잡지들 구입에 많이 투자했어요. 개간지, 음악잡지, 음악 기술잡지, 건축잡지 등 손님들 보고 싶어 하는 잡지를 물어보기도 하고요.
이 가게에서 낭독회를 많이 했어요. 낭독하고 간 책들이 컵 아래칸에 있어요. 바로 뒤쪽에는 일반 인문서적들입니다. 만화책도 있어요. 이리카페는 책을 되게 좋아해요. 왜냐하면 예술을 하거나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인문적인 태도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인문적인 태도라고 해서 어렵고 그런 게 아니고 ‘죽으면 어쩌지’라는 걱정하는 태도, ‘나는 어디로서 왔을까’와 같은 것을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그런 태도를 가지고 차도 마시고 부동산 계약도 하고.
진지한 이야기 속에서 또다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작가님은 참 재미있는 분이었다.
찌들어 사는 게 아니라 별도 한 번씩 보고, 사막도 상상해보고, 그런 태도들을 계속 내가 습관화처럼 하면 좀 더 자유롭다고 할까요? 돈으로부터, 안됨으로부터의 자유? 그런 게 인문적 태도라고 생각해요. 음악이나 미술 같은 다른 예술활동도 중요하지만 책이 주는 게 되게 있거든요.
한참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역시, 이 공간은 보통 공간이 아니었다. 기획, 운영하시는 작가님의 내공도 만만치 않았다. 무용을 전공했던 나도 작가님 말씀에 동의하며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부러운 마음도 가득했다. 이상적인 미래였다. 예술을 하면서 그런 스토리를 차곡차곡 쌓아둔 공간을 운영하고, 그 공간에서 예술가들과 작업을 할 수 있다니! 나는 궁금했다. 예술만 했을 때에는 이렇게 돈을 모을 수 없다. 다른 일을 병행하고 예술활동에 투자한다. 작가님도 그런 방식으로 이 공간을 운영하는 것일까? 아니면 예술 활동을 하면서 수입이 되기 때문에 그 돈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것일까? 실례가 될 수 있는 질문이지만, 작가님은 진지하게 고민하신 이야기를 해주셨다.
글쓰기도 하고 음반도 발표하고 하고요.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까… 어렵죠, 어려워요. 우유가 제일 싼 데가 어디일까? 아침에 출근하면 시에 대해서도 생각하지만 딸기를 50원 더 싼 데를 찾기 위해서도 고민합니다.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예술도 참 좋은데 벌어먹고사는 그 부분을 절대 놓치면 안 돼요. 예술이 참 중요한데 예술보다 더 중요한 건 나의 삶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삶이 물질적으로 고통받는다면 되게 힘들잖아요. 내가 그것을 많이 생각해두고 예술적인 태도를 해야 나에게도 자유가 생기고 가게도 오래갈 수 있죠. 설거지하면 거품 있잖아요? 좋은 세제는 거품도 없어요. 저는 거품 없는 세제로 설거지하면 재미가 없어요. 설거지의 맛은 거품이지 않습니까? 뽀독뽀독해지고 깨끗하게 닦이는 그런 느낌인데, 장사를 하다 보면 필요 없는 거품이 많거든요? 살다 보면 그것도 맛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을 재미라고 생각하고 해야죠. 많은 분들이 그런 부분을 간과해요. 나는 예술가인데 이런 거 어떻게 하지(화장실 변기 막힌 것을 뚫거나 하수구에 막힌 쓰레기를 치운다거나) 라면서요. 내가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술보다 중요한 건 나의 삶이다, 내가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 참 와 닿았다. 작가님이 이리카페를 이렇게 운영할 수 있으셨던 이유는 인생, 예술에 대한 철학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예술보다 중요한 건 나의 삶이다 라는 말을 계속 곱씹게 되었다. 누군가 작가님께 공간 운영에 대한 고충을 물어보았다.
예술이 너무 과잉이 되어서 나의 삶을 침범하면 안 된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그런 걸 놓치고 카페나 술집을 많이 차리죠. 공방 같은 것들요. 그런데 오랫동안 하지 못해요. 그런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잉이 많이 되어서 인 것 같아요. 예술은 별게 아니에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겠다는 것은 예술가에게 꼭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예술과 삶은 마주 보고 있는 상태여야죠.
가게 차리면 근심과 걱정부터 생겨요. 장사 안 되면 월세 못 내죠, 장사 잘 되면 주인이 나가라 하죠, 하나부터 열까지 걱정이에요. 갑자기 일하던 친구가 그만 두기도 하고, 그러면 죽도록 혼자 해야 하고.
이리카페의 위쪽 벽면에는 많은 인물 사진이 걸려있었다. 우리는 저 사진에 대해, 뒤쪽의 전시된 작품들에 대해서 물었다.
가게에서 좋아하는 양반들이고요. 대부분이 일찍 죽었어요. 가게에서 보름 정도의 주기로 전시가 바뀌는데요. 그런 정보들이 ‘이리카페 페이스북'에 올라와 있어요. 대금 연주회를 할 때에도 있고요.
이리카페를 오픈할 당시에는 상수동이 저렴한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이 동네에 이리카페를 시작으로 하나둘씩 재미있는 공간들이 생겨났다. 무언가를 할 때 공간도 필요하고 역사도 필요하다는 작가님. 재미있는 사람들이 가게에 와서 내용을 채우고 또 재미있는 일도 벌였고 그게 지금의 이리카페를 존재하게 했다.
공간이나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해보자는 태도거든요. 나도 작업자이기 때문에 당신의 작업이 나와 관계해서 작업되는 거다라는 태도죠. 때문에 굳이 애써서 잔칫집 운영하듯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이리카페에선 전시, 공연 등 다양한 활동들로 가득했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해보고 싶은 일들에 대해 작가님께 질문했다.
가게 오래 했으면 좋겠어요. 오래 하면서 더 재미있는 사람들, 그리고 젊은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이 같이 소통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카페가 가진 특징 중 하나가 사람과 사람을 관계시키는 겁니다. 이리카페가 미술 하는 사람은 음악 하는 사람에게 연결, 음악 하는 사람은 영화하는 사람에게 연결시켜주며 관계하고 성장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예술가 사이의 관계에 집중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과 관계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서예학원 선생님이 지나가다가 여기 너무 재밌으셨는지 오셔서 젊은 사람에게 서예를 가르치고 싶다고 하셨어요. 가게 한쪽 넓은 피아노 테이블 끝에서 서예를 가르치셨어요. 저희가 종이나 먹이나 준비해뒀어요. 생각보다 참여가 좋지 않았어요. 손님들이 부끄러워해서 우리가 가서 꼬셔와야 했죠. 내 이름 석자 서예 하기 함께 하시자고. 선생님 혼자 뻘쭘하게 계시면 내가 가서 꼬셔서 하고. 학원에서 하셨으면 돈 받고 서예를 가르쳐 주셨을 텐데, 선생님은 젊은 사람과 하고 싶다며 이리카페에서 무료로 서예(나의 이름 쓰기)를 가르쳐 주셨죠.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요. 그걸 1년 정도 했어요. 지금도 저기 피아노 뚜껑 열면 벼루랑 먹이랑 되게 많이 있어요. 그 선생님 너무 뵙고 싶네요. 그 선생님은 예전에 공무원 하다가 4.3 사건 때 운동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공무원 잘리고... 약간 나이 든 어른들과는, 아버지랑도 그런 이야기 잘 안 하잖아요. 어른인데 아버지가 아닌 어른이랑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기회가 참 좋더라고요. 한번 그런 기회가 있으면 굳이 만들어서라도 해보세요, 재미있어요.
이리카페 냅킨에는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무슨 뜻일까? 로고일까? 이 그림들은 동업자 이주용 씨 그림이다. 가게에서 오랫동안 일한 친구들 작품으로 만들기도 한다고. 작가님은 그동안 모아둔 냅킨 파일을 꺼내 주셨다. 누렇게 변한 파일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냅킨 그림과 문구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리카페엔 앤틱 한 가구가 많았다. 가구의 출처가 궁금했다.
가구는 주워도 오고, 아! 이 의자는 직접 디자인했어요. 초창기 때 이리카페 테이블이 낮아서 맞게 디자인했는데, 그걸 제작한 가게에서 ‘이리 의자'라고 이름 붙여서 팔더라고요. 검색하면 나와요.
옛날 나무를 좋아해요, 옛날 가구들요. 이 벽돌도 옛날 벽돌들이에요. 싸서 한 거죠. 나무가 싸요 싸. 그리고 책들이 인테리어가 되잖아요. 이런 거 다 황학동에서 사 온 거예요 색도 직접 칠하고요.
이쯤 되면 이리카페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하나부터 열까지 작가님의 취향과 정성이 가득했다. 중간중간 유희적 포인트도 있었다. 말을 참 재미있게 하신다. 이리카페의 ‘이리'는 무슨 뜻일까? 어떻게 지어졌는지 작가님께 질문했다.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라는 소설이 있어요, 거기서 발췌했죠. 주인공이 되게 막 쓸쓸하고 그렇거든요. 냅킨부터 유학시절 책, 좋아하는 위인들, 가구… 지나가면서 쓰윽 만지면 여기에도 이야기가 있는데~ 하는 것들이 마음속에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쓸쓸하기도 해요. 세월이 지나면서 생기는 부분이죠. 같이 앉았던 친구도 없어지고, 그런 것들이 느껴지니 쓸쓸함도 생기고.
이름마저 작가스러웠다. 한참 작가님의 이야기만 듣다가 우리들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어떻게 모였어요?
또 한 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작가님은 공간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셨다는 점이 너무 감사했다. 앤 스페이스의 소라님이 도시 작가에 대해, 오늘 모인 분들에 대해, 이곳을 방문한 계기를 설명했다. 작가님 이시면서도 멋진 공간을 운영하고 계신, 이리카페의 김상우 작가님. 이야기가 가득한 공간, 이리카페. 앞으로 내가 만들어갈 공간도 이런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마드를 위한 추천공간 : 스페이스클라우드
[로컬공간기록 프로젝트] 도시작가의 상수동 작업실 여행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 곳곳의 숨겨진 로컬공간기록, 도시작가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