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힘들게 하는 못된 습관 버리기
화창한 일요일 오후다.
한겨울 따스한 햇살이 침대위 이불에 쏟아졌다.
'음.. 햇빛덕분에 자동으로 살균되겠군'
회사 직원에게 산미가 적고 부드러운 커피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브라질산 원두를 알려줬다.
뒷면에 ‘브라질산’이라고 적힌 드립백을 한 장 찢어 물을 천천히 붓는다. 20초 뜸을 들여야 맛있다고 했다. 잠시 기다리며 향을 맡는다.
머그컵에 채워지는 커피처럼 집안에 커피 향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커피 향만으로 브라질에 온 것 같다. ‘따봉’을 외치는 삼바의 나라!
눈부신 햇살이 가득한 오후, 원두가루에 물을 붓고 있는 내 모습이 창문에 비친다.
잔잔히 퍼지는 커피 향을 맡으며 천천히 커피를 내리고 있는 이 순간은 흡사,
#완벽한 삶 #도시 감성 #핸드드립
아차, 음악!
감성엔 재즈지! 목소리만 들어도 왠지 흑인이고, 고향이 뉴올리언스일 것 같은 가수의 걸걸한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
커피와 함께 브라질에 머물던 나는 다크 초콜릿 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재즈의 본 고장인 뉴올리언스로 떠나는 상상을 한다.
“깨똑!”
‘언니 뭐하세용? 엄마가 김치 담갔는데 좀 드릴까요? 젓갈 엄청 많이 넣어서 맛있어요 ㅎㅎ’
이 녀석, 나 지금 창가에 서서 드립 커피 마시면서 재즈 듣고 있단다.
젓갈이라니… 내가 전라도 김치를 사랑하긴 하는데…
그렇게 브라질을 거쳐 뉴올리언스로 향하던 나의 비행기는 전라도에 착륙해버렸다.
다시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글쓰기와 책 쓰기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나는 결국 글쓰기를 택했다.
전처럼 공동저서를 집필하거나 자가출판에 도전하는 것도 글쓰기에 지칠 때쯤 해볼 만한 즐거운 이벤트라는 생각도 든다.
어느 쪽이건 내가 즐거운 것을 택하고 싶어서다. 독자를 위한 책 쓰기보다 나를 위한 글쓰기가 지금은 즐겁다는 의미다.
한가하고 심심할 때만 손가락이 움직이는 게으른 작가지만,
라이킷 알림이 울리는 매 순간마다 기쁘고, 어쩌다 달린 댓글에 행복하니 우선은 ‘즐거운 글쓰기’에 전념하고 싶다.
어깨를 살짝 짓누르던 ‘축구 에세이’라는 강박도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만 봐도 축구와는 거리가 멀다. 옛 추억이 그리워지거나 직장 생활하면서 축구생각이 나면 또 적당히 버무려 글을 쓰면 그만이었다.
힘든 일에 얽매이지 않는 것, 내가 지금 풀어가고 있는 숙제이기도 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스트레스 때문이다. 나는 요즘 스트레스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즐겁고 재미있는 일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쇼핑을 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실컷보고 책을 읽다가 게임을 했다.
하지만 즐겁고 재미있는 일은 잠깐일 뿐이고, 다시 스트레스를 받는 돌림노래와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못된 습관이 있다.
누군가에게 혼날 것 같은 상황이 닥치면 할 수 있는 한 힘껏 최악을 상상했다. 집에서 쫓겨나거나, 기절할 때까지 두들겨 맞는다던지…
끔찍할 정도의 최악을 상상하면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받는 충격이 조금 덜한것 같았다. 영화의 결말을 미리보기로 살짝 엿본것 같은.
마음의 상처를 덜 받기 위한 징크스이자 일종의 의식이 되었다.
의미 없는 발버둥이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숨을 쉴 수 없었다.
마흔이 넘은 나는 이제야 깨닫고 있다.
그래 봤자 돌아오는 것은 얼굴에 나는 뾰루지와 조금 일찍 받는 스트레스라는 걸.
사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은 나였다.
이유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예민하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사람들을 마주했다.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미리 걱정하는 바보짓마저 모두 내가 나에게 한 짓이다.
세상의 모든 길은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 향한다.
결국 브라질 원두커피와 재즈음악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불안과 스트레스는 못된 습관을 하나씩 거두는 일에서부터 시작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