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22초

블루아이(blue eye)

by Dinnerout

존이라고 소개한 그는 회색 티셔츠에 'Duracell elite team'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네 이력서를 보고 한국 국가대표 코치에게 직접 연락해서 물었더니 너를 엄청나게 높이 평가하더라."


"내 수영실력에 대해서?"


"... 뭐 집중력과 기술적인... 하지만 수영보다 트레이닝 방법과 선수들의 몸 컨디션을 보는데 굉장하다고."


"아... 그게 내 대학교 전공이었다. 그리고 많은 일을 하기도 했고."


"괜찮으면 듀라셀의 자세와 몸 상태를 한 번 봐줄 수 있어?"


"듀라셀을? 내가?"


이미 세계최고의 선수의 몸을 보고 분석하라는 뜻인데. 상상도 못 했다.


"물론 네 수영도 우리가 꼼꼼히 봐줄 거야. 서로 배우고 밀어주는 관계가 되는 거지."


갑자기 심장만 뛸 뿐 한동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영광이야"


짧은 악수와 함께 단순히 참가자에서 드디어 세계무대라는 여정이 시작되는 걸 느꼈다.



3일째 되는 날 저녁, 숙소로 돌아와 침대 위에 몸을 던져 잠시 누워있는 순간, 메신저 전화가 울렸다.


화면엔 '다영 누나'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훈련은 어때? 듀라셀이랑 이제 친구 된 거야? 사진 보니깐 완전 베프던데?"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밝았다. 그리고 갑자기 몸이 따뜻해졌다.


"힘들긴 한데... 즐거워. 정신이 이렇게 맑은 적은 처음이야."


혼자 미친 사람처럼 웃으면서 대답했다.

"듀라셀이랑은 뭐... 친구라기보다 경쟁상대지 이제 크크크"


"진짜야? 너도 참 대단하다. 아, 나 비행기표 끊었다!"


"진짜?"

침대 위에 벌떡 앉았다.


"응. 너 훈련 끝나기까지 5일 남았잖아? 끝나고 마이애미에서 만나면 될 것 같아."


"숙소는 내가 잡을까?"


"아니, 이미 내가 괜찮은 에어비앤비로 예약했고, 렌터카도 끝냈어."


"누나... 나 갑자기 눈물 날 것 같아."


"하하하, 웃기고 있네 갑자기 감성적이 됐나요?"


"아냐, 진짜야 메신저로 응원도 많이 해주고..."


"그래, 다치지 말고 훈련 열심히 하고 있어. 주말쯤 다시 통화하자."


"응.."


순간 고백이 입안까지 올라왔다가 겨우 삼켰다.


전화가 끝나자 갑자기 몸이 말끔하게 회복되는 것 같았다.


오전 수영이 끝난 뒤, 이틀 동안 따로 훈련하는 듀라셀의 스프린터 훈련을 유심히 지켜봤다.


결론은 하나였다.


'완벽.'


표면적으로 보이는 근육의 밸런스는 물론, 수영 동작에서 드러나는 코어의 안정성과 회전근개(팔을 연결하는 4개 근육)의 움직임까지 어느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특히 스트로크를 할 때 머리에서 발까지 이어지는 연결선이 매끄러웠고, 근수축과 신경근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근육은 짙은 파란색으로 안정된 수축을 보여주고 여전히 보라색이 불꽃처럼 튀었다.


세계최고 수준의 신체 메커니즘


하지만, 스타트 동작을 반복해서 지켜보니 미세한 차이를 발견했다.

듀라셀이 스타트 불록을 힘차게 밀고 나갈 때, 오른발 엄지발가락 쪽 근육과 인대 부위가 순간적으로 붉게 물들었다.


아주 미세한 차이였다.


듀라셀 본인 또한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지만, 블루아이로 본 순간 색 변화가 분명했다.


엄지발가락은 스타트 시 지면을 마지막으로 밀어내는 최종 추진점으로 피로가 쌓여 염증이 일어나거나 부상이 일어나면 반응 속도나 폭발적인 스타트 타이밍이 지연된다.


0.01초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스프린터에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신호였다.


"듀라셀, 스타트할 때 오른발 엄지 쪽... 약간 불편하지 않아?"


듀라셀은 놀란 듯 눈동자가 순간 커지며 고개를 들었다.

"오... 가끔, 하지만 무시해도 좋을 정도데."


"아마 오른발 엄지인대나 근막에 미세한 피로가 쌓인 것 같아 정밀검사나 당분간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코치가 놀라워하면서 다가왔다.

"스타트 반응이 예전보다 좋지 않았는데 그게 진짜 원인이었나?"


듀라셀을 포함해서 스태프의 시선이 정호에게 쏠렸다.


운동이 끝나고 정호는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발가락과 발목의 근신경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고안해 코치진과 상의했다.


"정말 놀라워. 솔직히 그걸 어떻게 알아차린 거야? 스타트 반응 속도도 0.60초에서 어쩔 땐 0.70으로 늘어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문이었던 거 같아."


어깨를 약간 으쓱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냥 유심히 지켜봤는데 스타트 순간 오른발에 걸리는 힘이 약간 다른 거 같아서 눈에 들어온 것뿐이야."


"난 네가 물 밖에 멍하니 서서 바라만 보길래 피곤한 줄 알았는데."

듀라셀이 팔짱을 낀 채 웃으면서 말했다.


"관찰하는 내 습관 같은 거지."


"병원 갔다 와서 이번 주는 네가 말한 대로 발가락 근육부터 천천히 조정해 보자."


"이제야 진짜 팀의 일원인 것 같네."


"뭔 소리야 여기 온 순간부터 우리 팀이었어."



(수영장)


"정호, 후반 35m부터 킥이 무너지잖아"


코치의 목소리가 수영모 사이를 뚫고 들려왔다.


"하악하악 후-"


숨을 몰아쉬며 풀사이드 위에 손을 얻었다. 팔이 무겁게 늘어졌고, 호흡은 계속해서 거칠었다.


"봐봐, 여기서부터 리듬이 흐트러지잖아 이 패턴 그대로 이어져야지. 거의 30m 이후에 급해져서 스트로크 템포와 킥 템포가 따로 놀아"


태블릿으로 영상을 되돌리며 보여 줬다.


"호흡하지 마! 숨 쉬러 나오는 그 잠깐이 타이밍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어. 국가대표 하고 싶다며 그럼 하지 마!."


"알았어. 참고할게."

한국에서 그렇게 안되던 무호흡이 미국에 와서는 몇 번 성공했었다. 그동안 내 폐활량이 트인 건지 간절함인지 모르겠으나 결론은 정신 상태였다.


"킥은 6 비트킥을 유지하고 서지 킥(surge kick)에 집중해."


"오케이"


"산소가 부족하다고 상체를 더 쓸려고 하지만, 오히려 에너지 낭비야. 너 코어 좋잖아

복부를 제대로 고정시키고 리듬을 잡아. 리듬!"


"리듬으로..."


"후반부는 힘도 힘이지만, 타이밍과 리듬이야. 명심해 다시 간다 준비해."


스타트 대로 걸어가면서 다시 한번 코치가 등을 두드린다.


"네 몸은 충분히 준비돼 있어 기술적으로도 완성형이야. 그 완벽함을 살리는 건 처음 리듬을 끝까지! 꾸준히 유지하면 돼!"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순간 온몸은 피로 대신, 확신이 번지고 있었다.

다시 한번 짧은 순간 이미지트레이닝으로 스타트 한 뒤 물속 구간들의 감각을 선명하게 그렸다.


킥, 코어, 타이밍, 리듬을 되새기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스타트대 위에 섰다.


"레디... 업!"


신호와 동시에 공기를 가르고 물속으로 날아들었다.

마지막 한 호흡과 함께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추진력이 끝나는 찰나 손부터 허벅지 그리고 복부에 전신의 근육을 당기듯 긴장하며 돌핀킥을 시작했다.


발등이 물속에서 내리찍는 순간 소리가 들렸다.


한번. 두 번, 세 번, - 부드럽게 이어지고 어느새 수면 위로 몸이 솟구치며 폭발적인 스트로크와 함께 발차기를 시작했다.


리듬이 살아났다.


왼팔이 물을 잡고 뒤로 보내면 오른발 이 얕고 강하게 차면서 스트로크가 이어지며 앞으로 미끄러졌다.

물살이 온몸을 휘감은 듯 흐름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35m 지점

폐가 타오르면서, 호흡중추신경인 숨뇌가 본능적으로 알려준다. 숨 쉬라고.

하지만 숨 대신 코어에 힘을 더 주자. 복부가 단단히 조여지고 골반과 엉덩이가 리듬을 타며 흔들렸다.

여기서 나오는 킥은 더 이상 차는 동작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을 이어가는 진동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을 만들어 냈다.


마지막 10m. 시야의 끝이 일렁였지만, 더 깊게 물을 밀고, 전거근을 최대한 늘렸다.


"푸아아악!"

수면 위로 거친 숨과 함께 물보라가 쳤다.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드는 순간, 코치가 웃으며 외쳤다.


"정호! 22.57"


순간, 주변의 소리가 멈추고 현실감각이 없어졌다.


"진짜야?"


"크레이지 보이 축하한다!"

이전 20화20.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