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한계

블루아이(blue eye)

by Dinnerout

아침 여섯 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한국과 13시간 시차 차이가 나지만, 신기하게도 온 지 하루 만에 적응해 버렸다.


개운했다.


숙소는 2인 1실 구조로 생각보다 쾌적했다. 두 개의 방과 하나의 화장실 구조로 한국의 전형적인 오피스텔형 기숙사 같았다.

창문밖에는 여전히 파란 하늘과 야자수 가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룸메이트 제이슨은 올해 스무 살로 미시간 대학교에서 왔다고 한다. 나이는 나보다 어린 22살이지만, 피지컬만큼은 형 같은 느낌이다. 수영선수가 아니었으면 미식축구 선수라고 해도 손색 없는 몸매였다.


아침은 캠프 측에서 준비된 숙소와 가까운 식당에서 체력을 고려한 탄, 단, 지를 고루 섭취가 가능하도록 제공했다.


나는 바나나 한 개와 달걀, 빵 한 조각을 접시에 담아 몇몇 선수들과 담소를 나누며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마친 뒤 웨이트 트레이닝 장으로 향했다. 체육관은 선수촌에 있는 웨이트장 안 부러웠다. 최식식 기구와, 스트레칭, 프리웨이트, 유산소존으로 나눠져 있어 여유롭게 운동이 가능했다.


스트레칭과 간단한 유산소를 마친 뒤, 모두가 수영장에 모였다.


드디어 캠프의 첫 오전 수영 세션이 시작됐다.


참가자는 대략 스무 명 남짓. 대부분이 미국 대학 수영팀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었고, 나를 포함해 세네 명 정도만이 외국에서 온 듯했다.

누가 봐도 수영을 잘할 것 같은 몸과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메인 보드 앞에 모이자 선수들 사이로 작은 웅성임이 일기 시작했다.


“듀라셀이다!”


듀라셀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까이서 처음 본 듀라셀은 '거대하다'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190cm를 훌쩍 넘었고, 어깨는 마치 태평양처럼 넓었다. 그 위에 얹힌 근육은 단순히 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밀하게 조각된 갑옷 같았다.


골반뼈가 살짝 보이는 스폰서 검정 수영복을 입고 있는 그의 몸은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근육들이 이어지면서 탄력이 느껴졌고, 피부는 태양빛을 흡수한 듯 구릿빛이었다.


특히 어깨, 코어, 광배근이 압도적이었다.


'저 근육이 한 번에 폭발하면 보라색빛이 일어나는구나'


다들 같은 수영선수임에도 '차원이 다른' 느낌을 받았다.


"Alright, liaten up!"

코치가 손바닥을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Warm-up : 800m(Choice, include drill & kick)

Drill set : 12x 50m(25m kick + 25m swim, fin optional)

Power set : 8x 25m with bucket(sprint, max effort)

Main set : 6x 100m(Race pace, paddles + fins)

Warm - down : 400m easy


코치는 화이트보드에 매직으로 설명과 함께 훈련 스케줄을 설명해 주며 포인트를 말해줬다.


"오늘은 워밍업으로 몸을 풀고, 스프린터와 파워 세트에서 강도를 최대한 올린다. 각자 준비해!"


워밍업과 드릴은 우리나라 선수촌에서 하던 거와 비슷했다.

생전 처음 하는 훈련은 버킷 훈련이었다.

풀사이드에 줄지어 놓인 작은 물이 담긴 플라스틱 양동이들에 줄이 달려 있었다.

허리벨트 형식으로 허리에 차고, 스타트대에 서면 버킷은 풀 뒤쪽 물속에 가라앉는다.

선수촌에서 했던 풀리시스템(pulley system)과는 저항력이 달랐다.


"렛츠고!"


코치의 지시가 떨어지자 온 힘을 다해 물속에서 25m 전력 질주를 시작했다. 스트로크와 킥이 평소의 두 세배 정도 힘이 들었다.

양동이가 도르래처럼 위로 올라가자 저항을 만들어 내면서 잡아당기는 답답한 느낌이었다.


팔과 다리에 걸리는 부하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평소 다섯 개의 스트로크면 15m를 가뿐히 지나갔지만, 양동이의 저항 때문에 10m를 채 못 나가고 호흡은 거칠어졌고, 다리는 서서히 잠기고 있었다.


"정호! 최대치로 더 힘내. 네가 버킷을 끌고 앞으로 가야 돼! 끌려가지 마!"


팔과 다리에 힘을 더 쥐어짜면서 온몸의 근육을 최대치로 썼다.

온몸이 화끈거렸지만, 이 훈련은 확실히 근육 깊숙한 파워를 깨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옆에서는 듀라셀이 같은 훈련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뿐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듀라셀과 양동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의 팔, 다리는 대회 때처럼 흔들림 없이 정교하게 물살을 가르며 물을 잘 타고 움직였다.

물살과 함께 근육들이 파란색에서 스파크가 번쩍이듯 보랏빛으로 스쳐 지나갔다.

'이게 클래스 차이다'라고 온몸으로 말해주는 듯했다.


"정호! 한눈팔지 마!"

코치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귀에 꽂혔다.

"집중해서 다시 더 풀파워로 땡겨"


'개풀파워로 땡기고 있어요. 안 나가서 그러치'


다시 한번 이를 악물고 몸을 던졌다.


착! 착! 착!

거칠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전진했지만, 정작 앞으로 나간다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물장구만 치는 수린이 같았다.


"정호! 버킷이랑 그만 싸워!"

코치가 다시 데시벨을 높였다.

"네 리듬을 살리고, 물속에서 팔꿈치 세워서 캐치 제대로 해! 팔 떨어져서 손끝으로만 휘젓지 말고 전완으로도 물을 단단히 잡아!


숨을 몰아 쉬며 다시 스트로크를 시도했다.

코치가 잡아 준 대로 다시 생각하며 팔꿈치를 세우고 물감을 느꼈다. 잠깐이나마 저항을 이기는 쾌감이 느껴졌다.


"좋아. 정호! 발차기! 급하게만 차지마! 리듬 있게 스트로크랑 템포를 맞춰!


0.1초 짧은 '굿!'은 곧 날아가고 귓가에 '킥!'이라는 소리가 쏟아졌다.


"엉덩이도 수면 위에서 안 떨어지게 코어에 힘줘! 배꼽!"


이 훈련의 의미는 단순히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저항을 받아들이고 나의 리듬을 잘 살리는 데 있었다. 바로 흔들림 없는 전진.


"벨트 풀고 스프린트!"


25m 지점을 통과하자 코치의 목소리가 울렸다.


허리를 붙잡고 있던 벨트가 풀리며 뒤쪽 양동이가 철컥하고 밑으로 떨어져 나갔다.

그 순간 마치 노예가 쇠사슬을 끊어내는 순간 같았다. 뒤에서 옥죄여 있던 무게가 사라지자 본능적으로 앞으로 치고 나갔다.


캐치, 킥 동작 하나하나가 제대로 돌아가는 느낌과 동시에 물보라가 터져 나왔다.

심장이 심하게 요동치고, 폐에서 산소를 온몸으로 보내는 감각이 기분 좋게 만들었다.


25m 구간이 끝나갈수록 점점 속도가 붙었다. 마지막 스트로크로 벽을 치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몸속 깊은 곳에서 새로운 스피드 감각이 깨어나는 듯했다.

오전 수영이 끝나자, 다리와 팔이 동시에 후들거렸다.


수년간 쉬지 않고 운동을 해왔는데도, 오늘 훈련은 다른 차원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쓰지 않던 근육들이 불붙듯 살아났고, 그 밀도와 압박감이 평소 운동 끝나고 나서의 느낌과 확연히 달랐다.


다리는 납덩이를 달아놓은 듯 묵직했고, 애프턴번(After burn) 효과 때문인지 샤워를 하고 나서도 땀이 계속 떨어졌다. 호흡은 여전히 가쁘게 이어지고.


처음 진천 훈련장에서 연습했던 것이 생각났다.


"너 , 얼굴이 많이 힘들어 보인다."


앞에서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일본에서 온 코스케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그는 키가 크진 않았다. 173cm 정도, 수영선수 치고는 작은 편이었다. 그러나 균형 잡힌 체격과 단단히 조여 붙은 근육선들은 서투른 몸이 아님을 말해줬다.

좁고 뚜렷한 눈매, 웃을 때 선하게 올라가는 입꼬리, 햇빛에 그을린 피부가 어우러져 호감형의 전형적인 일본 스포츠 맨의 인상을 풍겼다.


"난 주종목이 평영 100m야. 지금은 국대 상비군이지만, 3년 뒤 올림픽에서는 반드시 금메달을 딸 거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 매일 마음속에 새겨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그는 내 어 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따 웨이트 같이 하자. 네 자세 보니까 꽤 좋아 보이더라."


숨을 한 번 고르고 웃었다.

"좋아. 다음에는 수영 칭찬도 좀 해줘."


코스케가 소리 내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여기 모인 사람들한테 수영 칭찬은 더 이상 칭찬이 아니야."


"맞네. 이따 룸메 제이슨도 같이 오기로 했으니깐 셋이 서킷으로 죽어보자



(트레이닝 룸)


웨이트장에 들어서자, 꽤 많은 선수들이 와서 쇳덩이를 부딪히고, 메디신볼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거친 호흡이 수영장에서의 훈련 리듬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듀라셀이 있었다.

그는 민소매와 짧은 반바지를 입은 채, 보수(BOSU) 위에 올라서 있었다.

불안정한 반구형 플랫폼 위에서 한 발로 균형을 잡은 채, 양손에는 10KG 케클벨을 움켜쥐고 런지 동작을 했다.

마치 땅 위에서 하는 마냥 흔들림이 거의 없었고, 안정적이었다.


'근신경 트레이닝...'


예상이 맞았다.

단순한 힘이 아니라, 신경과 근육의 연결을 극한까지 단련하는 훈련이었다.

단거리 운동에서 필요한 건 단순한 근육량이 아니라, 순간 폭발력을 효율적으로 끌어내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런지를 하며 케틀벨을 들어 올릴 때마다 그의 허벅지와 둔근, 종아리 근육들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전류가 흐르는 듯 신경 다발이 피부아래서 꿈틀거리며 살에서 파랑과 보라가 작게 번쩍였다.


박수를 치고 싶었다.


"정호! 우리 뭐부터 할까? 국가대표 재활 트레이닝 코치 경험 있다며?


“우리는 플라이오메트릭으로 간다.”


“먼저 스쿼트 점프 7회 5세트

착지 후 빠르게 튀어 올라야 된다. 명심해!


다음은 런지 자세로 박스 점프 후 위에서 스프린트 연결 두 번 이거 5회 5세트


상체와 코어는 메디신볼 로테이션널 토스.

한쪽 무릎 꿇고 옆으로 비틀면서 파트너한테 메디신볼을 강하게 던지는 거야


마지막은 메디신볼 슬램으로

양손으로 메디신볼을 머리 위로 올린 후 받을 때 스쿼트 자세로 받고 다시 바닥에 힘껏 내리치는 것

일단 이렇게 4개로 가자.“


"이게 끝? 쏘이지"

제이슨이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한다.


"아마 어떤 형태로든 해봤을 거야"


"난 두 개는 해봤는데 스프린트 연결은 안 해봤네."

코스케가 몸을 풀고 준비를 했다.


"이따 오후도 수영해야 되니깐 무리하지 말자. 하지만, 원하면 프로그램은 많아."


세트가 시작되자마자 분위기는 금세 달아올랐다.

생각했던 대로 이들은 일반적인 운동 신경 범주에 속하지 않았다.

첫 세트의 점프와 동작은 마치 기계처럼 정확했다. 스쿼트 자세에서 점프, 착지 후 반동을 이어가는 리듬

역시나 이들은 플라이오매트릭 훈련을 꾸준히 해왔다.

속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3세트째 들어서자, 그 완벽함에도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코스케, 스쿼트 자세 더 내려가! 내려갈 때 무릎 모이지 않게, 안쪽 근육에 힘줘!


처음에는 유연하게 움직이던 코스케의 내전근이 버티지 못하고 무릎이 안쪽으로 모이면서 다리가 떨렸다.

그의 내전근은 아직 다른 근육처럼 진한 파란색으로 물들진 않았다.


제이슨은 윗짱을 까고 땀이 기립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숨소리는 점점 짧고 거칠어졌다.


"제이슨 쏘이지?"


"아직은.... 버틸 수 있어."

이를 악물고 끄덕였다.


모든 세트가 끝나고 셋다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누웠다.


"이게 우리가 수영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되는 플라이오메트릭 동작이야"


호흡이 돌아오고 블루아이로 그들에게 나름 진단을 내려 줬다.

"코스케, 내가 볼 때 허벅지 안쪽 근육이 다른 하체 근육에 비해서 약해. 마지막으로 서서 발목에 스트랩을 묶고 안쪽으로 천천히 차 줘.


"맞아. 안 쪽 근육이 다른 근육보다 빨리 피로해져"

코스케의 눈이 빛났다.


"제이슨 넌 코어가 문제야. 특히 장요근이라는 척추에서 시작해 허벅지 뼈에 연결되어 있는 근육이 약하니깐

철봉에 매달려서 다리들어 올리기 10개씩 5세트 해 복부 조이고, "


"땡큐 썰"


나 또한 그들과 함께 하면서 신경근을 깨우고, 내 한계를 조금씩 늘려가고 있었다.

트레이닝을 한지 하루도 안 지났지만, 신체가 다시 재구성되는 느낌을 받았다.


"미스터 김?"

듀라셀 전담 스태프가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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