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아이(blue eye)
"스톤 이 마운드에 올라왔습니다!"
"사실상 오늘 경기는 타이탄우승으로 끝날 듯합니다."
"거기다 스카우터 크리스 호퍼가 왔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미 메이저 리그로 가는 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아나운서와 해설위원은 벌써부터 흥분해 있었다.
타이탄의 선발투수 서준혁, 일명 '스톤'이라고 불리는 프로야구 5년 차다.
최근 팔꿈치 부상으로 인한 토미존 수술과 그에 따른 부진이 소속팀 타이탄에서 입지가 불안정해진 것을 넘어 방출설까지 돌았지만, 그의 미친듯한 노력으로 모두 극복하고 팀 내 에이스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선발투수로도 활약했다.
오늘 경기는 FA 자격을 앞둔 그의 마지막 선발 등판이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자신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서준혁은 큰 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시 초심으로.'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마운드에 올랐다.
이 만 오천 관중이 가득 찬 경기장의 함성과 응원은 스톤 서준혁에게 향하고 있었다. 심지어 상대팀까지도
1회 초 첫 타자 상대로 초구 167km/h 직구가 포수의 미트 한가운데 꽂였다.
"우와아아아아!!"
잠실에서의 응원함성이 이처럼 크게 들린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공기가 크게 흔들렸다.
가을이지만, 구장 안은 올여름 못지않은 열기가 올라왔다.
"첫 공부터 미트 한가운데 꽂혔습니다."
"타자가 봤다고 해도 배트가 못 따라가죠."
"두 번째. 슬라이더!"
"스윙!"
"삼구. 왼 투 스플리터 낮게 들어갔습니다."
"헛스윙! 삼진."
첫 타자를 단 삼구만에 삼진으로 끝내고 두 번째 세 번째 상대팀 선수들도 타석에 채 5분을 서 있지 못했다.
신들린듯한 강속구, 변화구, 포크볼로 그야말로 요리 중이었다.
'한국프로야구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메이저리그로 간다.'
작게 주문을 외우듯이 중얼거리는 그의 무서운 집념은 관중들 조차 땀이 나게 만들었다.
"떨어지는 각도가 정말 예술입니다."
"어어어. 포수가 볼을 놓쳤습니다."
"하지만, 1루 아웃!"
"162km/h 넘게 커브로... 정말 말이 안 나옵니다."
"3타자 모두 삼진 처리 하면서 스톤 선준혁! 역시 최강입니다."
그렇게 6회 초까지 그 누구도 1루 베이스로 들어가지 못했다.
7회 돌핀즈 4번 타자 강현우가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이 대결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원 볼"
"2구 백도어 투심 원앤원"
"3구 바깥쪽. 쳤습니다. 바깥쪽 땅볼. 투수가 잡았습니다. 1루로 송구!"
"7회도 삭제당했습니다."
"아니, 이거 너무 빨리 끝나는 거 아닙니까?"
"해설위원님, 원래 맛있는 음식은 빨리 없어지잖아요."
"그건 그렇죠. 근데 이건 거의 입에 넣자마자 사라지는 솜사탕 같은 느낌이네요."
하지만 그도 인간이었다.
9회 초 이사 1, 3루로 위기가 찾아왔다.
허를 찌르는 번트가 성공하며 2사 주자가 1루로 가고, 그 뒤 다음 타자가 친공을 유격수가 실수로 떨어트려 2사 1, 3루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다시 돌핀즈 4번 타자. 그의 선배이자 국가대표 동지인 강현우가 마지막으로 올라왔다.
"마지막 대결 어떻게 될까요. 이 대결은 프로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것입니다."
장내 아나운서까지 호들갑을 떨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2:0 타이탄이 점수를 리드하고 있는 가운데 원정인 돌핀즈 팬들의 응원소리도 거세졌다.
"운명의 대결입니다."
"지금 상황, 서준혁 선수도 엄청 긴장하고 있을 거 같은데요?"
"그렇죠 아무래도 이 순간 심박수가 엄청나게 올라가 있을 텐데. 이 압박을 견디는 게 프로의 숙명이죠."
"초구. 몸 쪽 깊었습니다. 볼!"
"2구. 몸 쪽 직구. 강현우의 헛스윙! 스트라잇!"
"167km/h!"
"와 말이 안 나옵니다 정말 저게 가능한 구속입니까?"
"3구. 떨어지는 볼! 조금 빠졌습니다만 구속이 163km/h입니다. 놀랍습니다."
"4구. 꽉 찬 직구 때렸습니다."
"파울 볼. 방망이가 조금 늦었습니다."
"서준혁 대 강현우, 강현우대 서준혁 떨립니다."
"투앤투. 누가 웃을 것인가"
"5구. 이제 스트라이크 하나 남았습니다!"
"서준혁, 강현우... 과연"
서준혁이 숨을 한 번 정리 한 뒤 그대로 전력으로 뿌렸다.
"딱!"
모든 관중 아니 모든 선수들 까지도 자리에 일어나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공을 주시했다.
외야로 날아가는 공은 한 없이 높고 파란 하늘 위로 사라질 것 만 같았다.
외야수가 펜스를 향해 미친 듯이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슬라이딩과 함께 공은 외야수 글러브로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웃!"
"경기 끝났습니다. 2:0으로 타이탄의 승리로 우승입니다."
"완투승! 사실상 서준혁이 우승시켰습니다.""
"이이야아!!!"
마운드 위에서 서준혁은 포효를 하며 모자를 크게 허공으로 던졌다.
모든 동료들이 나와 그에게 달려든다.
"으아아아아 ~ 아!!!"
"정말 위대한 선수였습니다. 프로야구에서 이보다 더 멋진 마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이 순간을 중계해서 즐겁고, 고마웠습니다."
"이제 미국으로 가면 국민들 잠은 다 잔 것 같네요."
[STONE IS KING!]
전광판엔 세 단어가 번쩍였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래 메이저리그에 가서도 이렇게 해줘라. 그래야 내 면이 스지"
서준혁 은 낮게 말했다.
'나는 오늘 즐겼고,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순간이다.'
그 뒤로 스톤 서준혁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지만, 1년의 활약이 거짓말처럼 2년 차에는 고질적인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재활과 계획은 어긋났고, 구속은 계속 줄었다.
계약인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먹튀라는 오명과 함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재활병원 상담실)
"재능과 근성하나는 인정하지만 몸을 혹사시키면서 까지 이렇게 던졌으니 이런 상황이 오는 건 당연하죠"
"...."
서준혁은 말없이 창 밖만 바라봤다.
의사가 뭐라 한 마디 더 할 타이밍에 문이 열리고 정호가 들어왔다.
"정호 선생님 어서 와요. 이분 아시죠? 스톤 서준혁 선수."
"당연하죠 야구는 잘 모르지만, 서준혁선수를 모르면 외계인이죠."
정호가 손을 내밀었다.
"재활을 맡게 된 김정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정호 선생님 영광입니다."
그의 악력은 어느 쇼프로그램에서 사과를 으깨 즙을 만들던 힘 그대로였다. 그가 맘만 먹으면 내 손을 으스러트리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어깨 회전근개, 토미존 수술 부위가 다시 악화 됐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여기서 포기할 순 없습니다."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정호의 오른쪽 눈은 점점 파래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