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고

블루아이(blue eye)

by Dinnerout

오르막길.


도무지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체중을 싣고 페달을 밟지만 다리만 무겁고, 숨은 점점 더 가빠온다.


"너, 령하고 재치, 고개가 다른 점이 뭔지 아냐?"

항상 뒤에서 낙오에 있는 날 위해 맞춰서 같이 가주는 재홍형님이 말을 건다.


"해발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후우흐학-!

그러고 보니 이렇게 업힐을 오르면서도 그 의미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네요. 헉헉-"


"큰 형님이 알려나?"


자전거 경량으로 돈을 쓸 대로 써서 이제는 가장 돈 안 드는 체중감량을 위해 겨우내 방 한켠에 평로라(실내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기구)를 갖다 둔 용훈형님은 가벼워진 프레임과 더 가벼워진 다리 덕분에 이미 멀찍이 앞서가고 있었다.


"와아, 형님 날아가시네요! 근데 령, 재치, 고개 다르점이 뭐예요?"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령은 산줄기고 고개는 산으로 막힌 두 지역을 잇는 길이라고 들었는데..."


"헉헉헉 후-"


"좀 있으면 정상이다. 정호야 힘내라!"


"먼저 가십시요 전 제 페이스대로... 천천히 가겠습니다."


네 번째 강원도 투어

그런데도 구룡령은 매번 처음탄 마냥 힘들었다. 해발이 올라갈수록 공기도 변하고, 허벅지 근육도 뻣뻣해지면서 그들이 천천히 오는 것 같다. 적응이 안 된다.


‘하나-아 두울 하나- 두울.. 헤엑 헤엑’


혼자 중얼거리는 구령에 맞춰 고개를 숙이고, 골반과 대둔근으로 페달을 꾹꾹 누르지만 해발 1000m 넘는 이 오르막은 버티기 힘들다. 중간중간 와리가리로 자신 있는 광배를 써서 올라가지만, 숨이 더 거칠어진다.


갑자기 뒤쪽에서 엔진음이 들려온다.


"두둥...두두두두둥 브를르릉...!


멀리서 으르렁거리듯 무게감 있는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2대가 갑자기 나타났다.

2 기통 엔진도 구룡령 업힐은 쉽지 않은지 나보다 더 깊은 엔진소리를 토해냈다.


검은 가죽 재킷에 진한 선글라스를 낀 운전자 한 명이 아무 말 없이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엄지를 치켜들며 사라졌다.


나도 엄지를 세우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좀 타라니깐."


경량화에 성공한 큰 형님의 여유 있는 목소리에 대답대신 거친 숨소리로 답했다.


'하아아아스읍'


오른쪽 햄스트링이 슬슬 한계라고 외치는 순간.


[여기는 구룡령 정상입니다.]

고개를 드니 파란 하늘에 걸려있는 녹색 정상 표지판이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표지판을 조금 지나 가장 높은 곳에서 클릿을 빼서 땅에 발을 딛고, 마지막 거침 숨을 몰아쉰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물 한 모금을 마시는 사이 산들바람이 땀을 닦아준다.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탁탁 두드리고 진정이 되니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광경, 이 순간을 느끼기 위해 이렇게 매번 오르는구나 하는 상념에 잠기는 찰나


"땀 식으면 춥다 얼렁 내려가자."


큰 형님의 장난 섞인 지시로 헬멧과 고글, 클릿슈즈를 다시 잘 고정시키고 중력에 몸을 맡긴 채 다운힐을 시작했다.


바람이 얼굴을 가르고, 귀 옆에 스치는 바람소리와 자전거 라쳇소리가 경쾌하게 어우러진다.


강원도의 수많은 령과 고개 중 구룡령 다운힐을 가장 좋아한다.


올라갈 땐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는 거지' 생각하지만, 아홉 마리의 용이 쉬어간다는 아홉굽이 있는 구룡령을 내려가는 순간 그 맛은...


헤어핀이 심하지 않고 이 내려막은 차량통행도 적어 짧은 순간이지만, 짜릿한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과장하면 용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가시거리도 좋아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산과 하늘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미 형님들은 멀찍이 시야에서 벗어났지만, 나만의 흐름을 타면서 에어로 자세로 바람을 즐겼다.


45,52,59.... 속도계 숫자가 계속 올라간다. 브레이크를 살짝씩 당기며 미세하게 조정한다.


거의 마지막 코너에서 부드럽게 페달을 슬슬 밟아 주면서 관성을 정리하고 허리를 펴 숨을 크게 들이쉰다.


끼이이이익- 탁! 쾅! 철그락-!



'하늘을 가르며 난 것까지 기억이 나는데 여기는 어디지.'


정호는 눈을 반쯤 떴다.


'근데 왜 이렇게 뿌옇지, 아니 붉은색인가?'

눈을 뜨니 세상은 물속에서 불빛을 보듯이 번져 있었다. 붉은 듯, 주황빛인 듯, 때로는 보랏빛 얼룩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김정호 환자분 정신이 좀 드세요?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귀에 목소리가 들려오자, 주변의 소리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삐-삐- 소리가 나는 알람과 희미하게 나는 알코올 냄새와 주렁주렁 달려있는 투명줄과 붕대, 바이탈 사인을 표시하는 모니터 안 곡선들은 위아래로 움직이며 앞으로 가고 있었다.


병원 중환자실이었다.


그와 동시에 타들어 갈 것 같은 안면이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정신이 좀 드세요? 여긴 병원이에요"


앞에 서있는 하얀 실루엣이 의사가 입는 가운임을 알아차렸다.


"아 예 머리가 좀 무겁고…근데 왜 온통 붉은색으로 보이죠? 주황색 같기도 하고."


"정호님 사고 기억은 나세요?"


정호는 눈을 잠시 감았다.


형님들과 강원도 투어 라이딩 가서, 구륭령을 욕하며 꾸역꾸역 넘고, 고개 정상에서의 기분 좋은 바람. 곧장 이어지는 다운힐 초반의 해방감

속도계는 60까지 올라가며 도로를 타고 미친 듯이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면 내려가고 있었는데...


다운힐 중 갑자기 몸이 붕 떠서 피터팬이 된 기분이 떠올랐다.


"사고가 났습니다. 뒤에서 차가 박는 바람에 가드레일밖으로 튕겨져 나갔어요."


"네 생각나요 몸이 붕 떠서 날아갔죠."


"다행히 헬멧 덕분에 머리에 충격은 적었지만, 바닥에 떨어지면서 코뼈와 안와 골절, 오른쪽 눈이 나뭇가지에 찔려 안구가 파열되었습니다."


'파열'

단어가 머릿속에서 여러 이미지를 보여주더니 중얼거렸다 '이제 외눈박이로 살겠구나'


본능적으로 한쪽 눈을 번갈아 가며 온 신경을 집중해서 눈에 초점을 모아봤다.


"어..? 지금 어렴풋이 보이는데요? 주황색으로 보이는.. 아니 보랏빛이 섞여서..."


"수술이 잘 돼서 아마 큰 부작용이 없으면 보이기는 할 겁니다."


"파열인데 수술이 가능했다고요?"


"한쪽은 각막으로도 가능했지만, 오른쪽 안구는 손상이 워낙 심해서 기존의 각막 이식을 넘어 세계최초로 시신경과 안구 전체를 성공적으로 이식했어요."


약간은 경양 된 말투로 의사는 데시벨이 약간 커지면서 말한다.


"세..세계 최초요?"


"네. 20시간 넘는 대수술이었었죠. 난이도가 높았지만, 정호님의 전신 상태가 안정적이었고, 생체반응이 새로운 안구와 싱크율이 좋아서 가능했습니다. 관건은 시각이 정상정으로 돌아오는 것과 조금 더 지켜보면서 부작용이 있는지 관찰해야 합니다."


"그럼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요?"


"조직과 신경 회복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초기에는 흐릿하거나 불편하게 보일 수 있어요.

재활과,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일상생활은 대략 4~5개월 정도 예상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모니터 상으로는 안정적인데 혹시 통증은 심한가요? 0부터 10까지 중에 어느 정도세요?"


"한... 6 정도로 얼굴 전체가 타들어 가는 느낌이에요."


"진통제 조금 올려 드릴게요. 다행히 다른 부위는 골절이나 단순 타박상으로 신경 손상은 없어서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몸이 튼튼한 것이 한몫했고요."


외눈박이에서 다시 정상인처럼 두 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데 골절은 더 이상 대수가 아니었다.


의사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보아 안심이 됐다.


'세계최초 안구인식 성공이라니'

이런 걸로 뉴스에 이름이 남겠구먼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죽다 살아난 건가.


잠시 안심한 순간 이유 없이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가 뇌리를 스쳤다.


"정호야!"


"오빠!"


뒤늦게 간호사에게 소식을 접한 가족들이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만져주었다


"아들. 이제 괜찮아?"


"응. 근데 다른 형님들은 무사하셔?"


"오빠가 맨 꽁지로 내려오다 사고 나서 다른 분들은 무사해."


"...다행이네"


가족들 손의 온기가 나에게도 전해져 안심이 되면서 다시 졸리기 시작했다.

이전 01화1. 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