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아이(blue eye)
따뜻한 마사지 샤워가 끝나고, 탈모 방지샴푸의 허브향과 함께 방에 들어왔다.
방 안의 공기는 약간 서늘했지만, 따뜻한 몸이 서서히 식어가는 느낌이 기분 좋았다.
피부가 건조해지기 전에 피부에 남은 물기를 마저 닦고 스킨을 손에 덜어 얼굴에 가볍게 두드렸다.
선물로 받은 모과향의 바디로션을 전신에 바르고 전신거울 앞에 섰다.
나른한 눈으로 아무 생각 없이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다 깜짝 놀랐다.
"어? 엇...! 뭐야 이거, 왜 이래?"
순간 오른쪽 눈의 홍채가 물에 떨어진 잉크처럼 아지랑이가 피어나며 바뀌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눈동자는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바뀐 건 눈동자뿐만 아니었다.
목덜미를 늘리며 길고도 유연한 목을 자라목처럼 뻗었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면서 거울 속으로 내 모습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눈뿐만 아니라, 몸의 몇몇 부위가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넙덕넙덕! 쿵쿵쿵!
심장소리가 귀에 까지 들린다.
밑으로 목을 숙이면서 직접 내 몸을 찬찬히 바라봤다.
'빨간색, 노란색...아 씨 이게 모야 도대체'
다시 고개를 들어 몇 분 동안 뚫어지게 거울 속 내 모습을 쳐다봤지만, 어지럼증과 눈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 어지러. 눈은 왜 이렇게 타 들어갈 거 같지'
그대로 팬티바람으로 거울 옆 침대 위에 뻗어 버렸다.
뚜껑 열린 모과향 바디로션과 몸에서 은은하게 나는 향긋한 향기 만이 코끝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
"수술 부작용인가... 세계최초라더니 이런 기가 막힌 부작용도 생기는구나."
'잠깐. 이거 혹시 초능력 같은 거 아냐? 설마 투시능력이라도 생긴 건가?'
"엄마아- 저녁 모야?"
때마침 들어온 동생의 인기척에 방문을 열고 나가 뚫어져라 쳐다봤다.
"왜? 뭐? 뭘 쳐다봐. 모야? 엄마 오빠가 나 째려봐"
'응? 아무것도 안 보이네'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와 전신거울을 확인하자.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뇌를 다쳤나?'
비록 자전거는 다른 형님들 바퀴 가격인 200만 원 짜리였지만, 헬멧 만은 독일산 최고급 35만 원짜리로 3개월 고민 끝에 뚝배기는 중요하다는 합리화를 하며 샀다.
이 헬멧은 자전거 보다 더 애지중지하면서 관리를 잘했다.
사고 당시 헬멧은 반쪽으로 갈라지긴 했지만, 덕분에 생명을 건졌다고 생각했다.
목숨을 지킨 이 헬멧 구입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쇼핑이었다.
(병원)
나는 내 증상을 다시 설명했다.
"선생님 정말이라니깐요. 빨간색, 노란색으로 보이고...
"그러니깐 정호님 말은 음....."
의사는 모니터로 고개를 돌리면서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일단 머리도 이상이 없고, 혈압도 정상이고, 기록을 보면 이젠 안압도 돌아왔고, 약은 잘 넣고 계시죠?
아시다시피 세계최초로 실행한 안구이식이었기 때문에 회복 속도가 더디거나, 빛이 번질 수도 있어요. 건조증도 있을 수 있고. 하지만 수술은 아주 성공적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실명할 뻔한 눈이 다시 보이는 거라서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이렇게 힘줘서 보면 제 눈이 점점 파란색으로 변해... 변하는 게 보이지 않나요?"
"음... 왼쪽 눈과 비교해서 오른쪽이 약간 파란빛이 도는 것 같지만, 이런 경우 안구기증자 분과 정호님의 시신경 적응이 좀 더 필요한 한 부분입니다.
사람마다 홍채의 멜라닌 색소 양과 분포가 다르기 때문에 이 증상은 점차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요."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으로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무엇보다 회복속도가 아주 좋아요. 라섹해서 1.5 나왔다고 했죠? 근데 지금은 오른쪽 눈이 2.0이 넘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예약일에 한 번 더 상태를 확인합시다."
의사의 반응으로 보아 파란 눈으로 본 내 몸의 알 수 없는 색깔 같은 설명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진료실을 나가 처방실에 들려 약과, 투명한 플라스팅 용기에 달린 인공눈물을 받고 영 찝찝한 느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집 근처 편의점 앞 테이블)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니깐? 진짜 초능력 생긴 거 아냐?
취기가 살짝 오른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불알친구 승우가 거침없이 말한다.
"한 번 잘 생각해 봐 사고 나서 쓰러졌을 때 지네나 모 이상한 거에 물렸다거나... 근데 나는 무슨 색깔로 보이냐?"
"몰라 인마! 발가벗고 봐야 보이는 거 같아."
"그래?"
승우는 갑자기 티셔츠를 훌렁 벗어던졌다.
"모하는 거야 이 새끼야."
"한 번 봐봐."
오른쪽 눈에 집중하자 다시 눈이 타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야야! 내 눈 파래지는 거 보이냐?"
"아니? 왼쪽 눈깔보다 조금 더 진한 거 같긴 한데 파랑은 아냐."
친구는 윗장을 깐 상태에서 캔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한다.
"그래서 내 몸은 무슨 색이냐."
"넌 몸통이 빨간색이고... 아니 거의 노란색인데... 아아아 눈 아파. 오래 못 보겠어. 옷이나 입어."
"그러니깐 이게 사람마다 부위별로 색깔이 다른 거 잔아. 뭔가 있는데..."
승우는 웃으며 옷을 입고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에이 싯팔, 허리디스크 때문에 우울증 걸리겠네."
"아직도 아프냐, 운동 좀 하라니깐"
"이렇게 오래 앉아있으면 가끔 발까지 저리다니깐. 너무 약하게 태어난 거 같아 너처럼 좃나 강하게 태어났어야 됐는데."
그 뒤로 휘발성 이야기와 서로의 근황토크를 하고 약간 벌게진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후딱 벗고 전신거울 앞에 서서 다시 뚫어지게 봤다.
가을이 가고, 겨울 문턱인 계절에 방 안은 조금 냉기가 있었지만,
거울을 지켜보는 내 눈은 엑스맨의 싸이클롭스처럼 뜨거운 레이저가 나갈 만큼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 뜨거운 것과 다르게 거울 속 오른쪽 눈동자는 겨울의 차가운 하늘처럼 파랗게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i never forgot her blue eyes'
영화'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벤자민이 데이지의 파란 눈동자를 처음 본 순간 내뱉은 브래드피트의 대사처럼
내 오른쪽 눈은 파랗고, 까만 왼쪽 눈과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얼마 후 나는 드디어 내 몸의 빨간색과 노란색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