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아이(blue eye)
커다란 창가 자리에 앉아 두꺼운 전공서적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빛나는 눈빛으로 책을 응시하고 있었다.
주변의 소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깊숙이 책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근력의 힘은 한 번의 최대 반복(one - repetition maximum) 즉 1rm을 통해 정량화된다.'
'훈련으로 인한 근력증가는 운동프로그램의 유형과 강도에 의해 결정된다.'
'근력훈련의 가장 극적인 반응들 중 하나는 근비대다. 근비대는 근섬유 내의 단백질...'
한 손에 아아 라지 사이즈를 들고 빨대로 쭉쭉 빨아 마시며 다가오는 같은 과 동기는 정호의 책상을 손끝으로 툭툭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이번에 삼수형 과대 제치고 네가 1등 했다며? 너 완전 돌았던데?"
"이제 한 번 일등 해봤으니, 끝까지 지켜야지."
"졸업인데, 넌 뭐 할 거냐?"
"나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태권도장 차려서 애들 코 묻은 돈이나 벌어볼까 하는데."
"태권도장 좋오치.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했으니깐 몫 좋은 곳에 차리고 홍보만 잘하면 잘 될 거다.
애들 가르치는 것도 좋아하니깐 딱이네. 나는 대학원이나 가볼까 생각 중이야."
"웬일이냐? 너 공부랑 진짜 안 맞는데메."
"여기 공부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냐? 근데 죽다 살아나니까 갑자기 알고 싶은 게 많아졌다고 할까
사실 체대 학사만으로 전공 살려서 어디 가기도 힘들 것 같고, 이제 와서 공무원이나 딴것 찾는 것도 귀찮아. 대학원 가면 '혹시'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고."
"확실히 너 사고 난 후로 좀 달라진 거 같긴 해. 나랑 같이 아무 생각 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이제 사람이... 뭐랄까 좀 깊어졌다고 해야 되나?"
"흐흐 이제라도 정신 차리게 된 거지. 병실에 누워 있으니깐, 영화처럼 그동안 내 인생과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봤는데 이대로는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더라고."
"그게 공부고 1등이란 말이지."
"동기부여가 제대로 됐다고나 할까."
무엇보다도 눈의 비밀을 깨달은 순간. 공부에 대한 열망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좋아하던 친구들과의 술자리나 영화, 여행도 멀리하고 공부에 매달리게 된 건 다 이 특별한 능력 때문이었다.
친구 승우 말대로 진짜 초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초능력이긴 하지만, 공부 없이는 쓸모가 없다는 사실도 깨달아 죽어라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3 수험생활 때도 공부를 이렇게 까지 하지 않았는데, 대학교 4학년 졸업을 앞두고 공부에 불이 붙은 사람처럼 미친 듯이 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짧고, 배울 것은 너무나 많았다.
사고 이후 푸르게 변한 눈으로 바라본 내몸에 다양한 색깔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색깔별로 의미가 달랐다.
빨간색 부위를 유심히 봤더니 사고 난 부위였다.
대퇴사두근, 상완이두근, 승모근, 쇄골등
노란색은 단련이 필요한 부위였다. 운동과 재활이 진행될수록 빨간색은 점점 옅어지고 초록색이나 다른 색깔깔로 변해 갔다.
내 몸으로는 색깔의 비밀을 푸는데 한계가 있어, 확신을 얻기 위해 주말마다 목욕탕에 가 벌거벗은 사람들의 몸을 관찰했다.
사람들의 몸을 유심히 보며 색깔이 가지는 의미를 확인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주말에 그다음은 주 3번 정도 목욕탕에 가서 사람들에게 색깔 부위를 되묻고 몸의 증상을 듣고 나름 돌팔이의사처럼 해결책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목욕탕)
"사장님 혹시 여기 어깨 부위가 불편하지 않으세요?"
"네? 아 오십견이라고 하는데 팔이 잘 안 올라가요."
"팔을 옆으로 살짝 드시고 여기 이쪽이 광배근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풀어주시면 나을 겁니다. 어때요? 어깨가 좀 부드러워지지 않았아요?
"음... 아 좀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하고, 의사세요?"
"의사는 아닌데 제 지인 분하고 어깨 상태가 비슷한 거 같아서요. 제가 그분에게 마사지랑 스트레칭 알려줬더니 많이 좋아졌어요."
"좀 더 알려주세요. 어떤 거 해요?"
"이렇게 어깨를 축 늘어 트리고 원을 그리며 돌려서 어깨 가동관절을 늘려주고, 뒤쪽 어깨 근력 스트레칭 꾸준히 해주세요."
이렇게 목욕탕을 거의 한 달 정도 꼬박 출근하다시피 한 끝에 나도 모르게 입소문이 났는지 기묘한 풍경이 펼쳐졌다.
자욱하게 수증기가 올라오는 목욕탕 안은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서 어느덧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여기가 쿡쿡 쑤시는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돼요?"
"허리는 옆으로는 되는데 뒤로는 잘 못 젖히겠어. 방법이 없을까?"
"허벅지에 힘이 안 들어가고 무릎이 시큰거려요 좀 봐주세요."
정호는 목욕탕에서 한 사람씩 부위의 통증과 스트레칭이나 마사지를 알려주고,
발가벗은 채 운동 시범을 보이며 자세를 교정했다.
목욕탕온도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관심과 힘든 탓인지 등줄기에는 땀이 흘러내렸다.
한 달이 넘었을 무렵 사장님의 세신사 취업 권유부터 해서 노인, 아빠손을 잡고 온 아이까지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 마냥 내가 있는 40도 쑥탕 앞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의사도, 무당도 아닌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혹은 맞춰보라고 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어느 날은 어르신 한 분이 진지한 얼굴로
"목욕탕에서 이럴게 아니라 진짜 병원을 차려봐 여기서 벌거벗고 사람들 몸 만져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오래 할 일이 아니야."라고 충고해 주변 사람들 모두 빵 터지기까지 했다.
대부분 어르신들이 많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상가 젊은 사장님들도 찾아왔다.
"선생님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동안 웍질로 손목이 만신창이라 이것 때문에 일을 그만둬야 되나 까지 생각했습니다. 혹시 제 아내도 한 번 봐주시면 안 될까요? 병원을 다녀도 소용이 없어서 그래요"
"네? 아 죄송해요 제가 의사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 우연히? 왔다가 운동 정보 정도 알려드리는 건데 이것도 잘 못하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점심 드셔야죠? 제가 기가 막히게 삼선짜장 해드리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아... 짜장면...네 그럼 일단 가시죠."
홀을 맡고 있는 아내의 고질병은 다행히 목 부위였다. 거북목과 라운드 숄더, 승모근의 과도한 뭉침으로 엄청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머리까지 통증이 올라와 두통을 유발했다.
"오랜 시간 만성적으로 진행된 거라 하루아침에 좋아질 수 없어요. 마사지 볼이랑 폼롤러 하나 사세요."
"있어요."
"근데 왜 안 해요?"
"..."
"사실 제가 알려드리는 것도 별거 없어요 중요한 건 하고자 하는 의지지. 제가 두 개만 확실히 알려드릴게요. 맨날 하세요. 한 달 뒤에 제가 다시 와서 보겠습니다."
"네."
한 달 채 안됐을 때 길에서 우연히 사장님을 만나 라조기를 해준다는 말에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두통이 너무 심하고 아침마다 아팠는데 전 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했다.
"아닙니다. 꾸준히 해서 그래요 다행이네요."
"선생님 배고플 때마다 오세요 맨날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중국음식을 좋아해서 만은 아니지만, 고맙다는 말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축적된 알량한 지식으로 매뉴얼을 만들고, 완성했다.
빨간색
통증, 염증, 미세 손상 등으로 심한 근육통이나, 부상을 입은 부위
노란색
집중적으로 단련할 부위
노란색 부위를 단련하면 통증이 있던 빨간색 부위가 점점 옅어지거나 부상부위가 완화됨
초록색
근육통이 없어지거나, 재생이 활발이 이루어지는 회복 중인 부위
파란색
균형 잡히고 강력한 근육으로 지속적으로 단련시켜 온 부위
3년 내내 놀기만 했던 대학 생활이었지만, 해부학만큼은 완벽히 외웠기에 사람들 몸에서 어떤 색이 어떤 부위인지 전확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뼈와 근육, 인대, 건, 신경에 대한 학습을 한 뒤 블루아이로 보면 색깔범위와 반응들이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