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아이(blue eye)
"야 뭐 해? 오늘 우리 집으로 와라. 초능력 보여 줄게."
"뭐? 초능력? 내가 말했지 뭐가 있다고! 5분이면 간다."
"뭔 맨날 5분이면 온대."
10분 만에 온 승우는 겨울인데도 땀을 쏟으며 집으로 왔다.
"그래 뭔데?"
승우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와아, 대박인데? 진짜 부럽다."
"부럽냐?"
서로 집이 5분 거리에다 같은 초중고를 나와 비록 같은 대학은 아니었지만, 맨날 안부를 묻고 저녁에는 할 일 없이 한강 공원을 걷는 일명 '게이 산책'이라고 이름을 붙이며 붙어 다녔다. 서로의 역사를 훤히 알고 있는 승우는 거리낌 없이 내 말을 믿어주고 지지하며, 놀라워했다.
"일단 벗어봐. 아이씨 팬티는 입어 이 새끼야 더럽게."
"야 다 벗어야 더 자세히 볼 거 아냐."
서로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너 아직도 요통 심하지?"
"어 이젠 마약성 진통제도 잘 안 들어서 밤이나 새벽에 자주 깬다니깐. 에이 싯팔, 짜증 나."
"일단 스쿼트 해봐. 더 내려가. 좀 더 더! 더!! 지금 통증 오지? 허리부터 해서 엉덩이 바로 밑까지 빨갛다."
"후~"
긴 숨을 내뱉으며 승우가 천천히 일어섰다.
"좃나 시뻘거냐? 다른 데는 어때?"
"너 목 디스크도 있는 것 같다 목 뒤쪽 도 약간 빨간데?."
"어 허리 때문에 온몸이 다 틀어졌어.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약하게 낳아줘서 그래."
서로 헛웃음이 나왔다.
"와 정호야 근데 장난 아니긴 하네. 옷 입으면 안 보이냐?"
"응. 안타깝다."
"야, 발가벗고 하는 피티샵 하나 차리자. 내가 카운터 볼게"
"미친놈. 크크크크."
다시 웃음이 터졌다.
"다시 스쿼트 해봐. 스톱! 거기까지 내려가. 다시 해봐. 음... 배꼽을 척추에 붙인 다음 내려가 발바닥에도 힘을 주고"
승우는 바들바들 떨며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떨어"
"아 많이 힘드네"
"벌써 땀나냐? 너 이거만 해도 허리 많이 좋아질 것 같다. 그리고 손은 위로 올리고 해 봐."
"이렇게?"
"응 그래 그렇게 해라. 11개씩 3세트 월수금 이렇게 한 달 정도하고 있어. 넌 내 정식적인 첫 번째 공짜 손님이다."
"역시, 너밖에 없다."
(강남사거리에 위치한 헬로빌딩 지하 1층)
곳곳에 덤벨과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고,
트레드밀의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벨트와 회원들의 발소리, 호흡소리가 공간을 메웠다.
"정호야, 오늘 신규 한 명 오니깐 네가 맡아서 해라."
"네 형."
미스터 올림피아 대회입상경험이 있는 승원선배가 운영하는 강남 한복판 100평 규모의 헬스장은 학교에서도 소문난 알바 천국이었다.
이곳은 내 능력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연습장이기도 했다.
헬스장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 회원들도 꽤 많았고 각인각색이었다.
새벽부터 오는 직장인
하루에 세 번 오는 운동중독 헬창
사진 찍기 바쁜 인스타 덤벨콜랙터 여성
살기 위해 운동하는 중년남자들
간헐적으로 오는 언제나 초보 회원들 까지
"안녕하세요. 신규 회원인데..."
"반갑습니다. 성함이?"
"정다은이요."
160cm가 살짝 넘어 보이는 키에 몸에 딱 맞는 검은색 레깅스와 박시한 나이키 검정티를 입고 왔다.
머리는 포니테일로 묶고 매끈한 이마는 천장 led 반사로 더 빛나보였다.
특별히 미인은 아니었지만 귀여운 치와와 같았다. 연예인이 생각났지만, 이름이 기억 안 났다.
"담당 트레이너 김정호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먼저 인바디 체크와 상담하고 피티 진행 할게요. bmi, 체지방량은 정상인데 골격근량이 만니 모자라네요."
"진짜요? 사실 제가 식단은 잘하는데 움직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운동도..."
"혼자 운동하기 쉽지 않죠. 근육량만 좀 더 키우시면 몸이 더 탄탄해지실 거 같아요. 이제부터 3개월 정도만 잘 나오면 근육 1kg 늘려 들릴게요"
"저 엉덩이 근육을 좀 키우고 싶어요."
"아 걱정 마세요. 엉짱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혹시 아픈 데는 있나요?"
"네, 없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스트레칭부터 할게요."
스트레칭과 간단한 근력운동, 근엄한 저음의 횟수세기와 자세 교정, 농담 따먹기로 피티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무릎 안 쪽으로 너무 모이지 않게 내려가세요 허벅지 안쪽에 힘주세요."
"아아악."
올라오다 균형이 잘 안 잡혀서 넘어질뻔한걸 뒤에서 등과 어깨를 잡아주자 얼굴이 붉어졌다.
"궁금한 거 있으세요?"
"힘들어요."
"오늘 스쿼트 할 때 코어에 힘주고 무릎 너무 앞으로 나가거나 허리 앞으로 숙이지 말고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을 느끼면서 잘 올라오세요."
어느새 회원은 땀이 흘러넘쳐 물 속이라도 들어 나온 것처럼 젖어 있는 모습을 보니 묘한 쾌감을 일으켰다.
"오늘 운동 괜찮았나요?"
"내일 못 일어나 면 어쩌요?"
"아 그 정도로 힘들게 안 했어요."
"마무리로 트레드밀 30분 천천히 걷고 집에 조심히 가세요."
오늘도 다행히 큰 사건 사고 없이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여기 오면 내 초능력을 마음껏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알바를 2개월째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좀 벗어 보세요! 제가 더 강하게 만들어 드릴게요. 제가 실은 초능력이 있거든요."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괜스레 탈의실만 왔다 갔다 했지만, 능력을 발휘해서 앉은뱅이를 걷게 만들 정도로의 기적 같은 드라마를 쓰고 싶은 상대가 없었다.
간간히 망고나시 입은 남자 회원들에게는 약한 부위를 알려주며 팁들을 주고 있을 뿐. 단순히 유능한 트레이너 알바생 일뿐이었다.
"어떻게 오셨죠?"
"혹시... 아픈데도 재활 비슷하게 치료해 주나요?"
50대의 중년남성이 간절한 표정을 하며 반신바의 한 듯 물었다.
"병원 가보셨나요? 재활의학과 쪽이나 도수 치료가 있는 병원으로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미 수십 번 다녀왔는데 별 차도가 없어서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왔습니다."
"아, 잠시만요. 제가 한 번 봐드릴게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