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서브 3

블루아이(blue eye)

by Dinnerout

"하나만 만들어 주세요, 승원이 형."


"그거 불법이야"


"아니 그러니깐 물리치료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빈 공간 하나만 만들어 줘요."


"아니 공간이 저렇게 많은데 데 뭘 또 만들어"


"부상이나 근육에 문제가 있는 회원들 제가 고칠 수 있어요."


"니가 의사야? 고치긴 뭘 고쳐. 그리고 여기가 재활치료센터도 아니고 괜히 아픈 사람 받아가지고 운동 잘 못 시키면 우리 좆돼. 법정 가고 싶냐?"


"저 믿고 한 번만 만들어 주세요 어차피 저 창고 안 쓰잖아요. 제가 직접 치워서 쓸게요."


"하아~, 얘 진짜 이상한 고집 있네."


"형! 저 이번시험 올 A+로 1등 한 거 알죠?"


"그게 뭔 상관이야 인마!"


"여기 다니는 회원들 저 때문에 1년 치 재등록한 분들도 많고, 지금 pt 문의도 계속 들어오잖아요."


"알았어, 알았어! 해! 해봐!"


"넵! 감사합니다."



"명진님 오셨어요."


다소 불편한 듯 절뚝거리며 들어왔다. 며칠 새 부상부위가 더 악화된 게 눈에 보였다.


"회원님, 통증이 있으면 운동을 중단하셨어야죠."


"선생님 마라톤 뛰어보셨어요?"


"당연하죠. 고2 때 춘마 완주 했죠.


"고2 때요?"


"네. 아버지가 신청했는데 발목을 다치시는 바람에 대신 나갔어요. 4시간 50분쯤 걸려서 완주했어요.

그때 깨달았죠. 마라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스포츠라는 걸. 그 길로 마라톤은 은퇴했어요. “


"하하하"


"어쨌든 저는 통증 있으면 마라톤뿐만 아니라 다른 운동도 바로 중단하는 스타일이라... 운동할 땐 본인 몸에 잘 물어보세요 이게 통증인지 아니면 참을 만한 힘듬인지."


"10km 앞두고 어떻게 포기해요. 서브쓰리가 코 앞인데 진통제를 먹고라도 뛰어야죠."


"아마 재 생각에는 대회 나가기 전부터 몸에서 신호가 있었을 텐데요."


"맞아요. 시합 전 연습할 때 알았어요. 통증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걸. 하지만 대회 일주일 남겨 두고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선생님, 제 꿈이 서브 3 달성하고 '보스턴 마라톤'나가는 거거든요."


"마라톤에 중독되셨네요."


"마라톤이 제 유일한 낙이자, 현실에서 모든 번뇌를 잊게 만들어 줍니다. 행복해져요."


처음 풀코스 완주하고 나서 힘들긴 했지만, 왜 사람들이 이 고통과 쾌감을 즐기는지 알겠더라고요."


몸이 불편해서 찡그리며 들어온 그였지만, 마라톤 이야기가 시작되자 얼굴에 생기가 돌고,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마치 도로를 뛰고 있는 듯 말했다.


"이번에 서브 3 달성하셨나요?"


어색한 미소와 헛웃음을 지었다.


"했어요... 아니, 정확히는 했다고 생각했죠. 한 줄 알았어요. 결승선을 통과하고 가민워치를 봤을 땐 정확히 2:59:59초로 들어왔어요.


탈진해서 주저앉았고, 감상에 젖으면서, 같이 간 동호회 사람들도 축하한다고 난리도 아니었죠. 그런데 기록증을 받으니깐 '3:00:01'이더라고요."


그때가 생각났는지 그는 허탈하게 미소를 지었다.


"바로 가서 주최 측에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뻔했어요.


'워치는 gps기반이지만, 저희는 전자매트를 지나갈 때 측정이 되기 때문에 더 정확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단호한 입장이었어요


선수도 아니고 1초 때문에 그런 좌절감을 느끼다니…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요. 다른 의미로 눈물이 다 나왔지만, 뭐 다 경험이죠."


입술을 앙 다물었다가 입꼬리가 애매하게 힘없이 올라가며 미소를 지었다.


"죄송하지만, 상상하니 황당하면서 좀 웃기네요."


"저도 웃겨요. 근데 아직도 아쉽네요. 다시 뛰어야죠 털어버리고."


"맞아요 서브 3 하고 보스턴 다시 가셔야죠."


"네, 선생님 꼭 좀 도와주세요."


"걱정 마세요. 다시 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트레이닝시켜 드릴게요. 회원님 다리는 왜 아픈지 알고 계시죠?"


"장경인대 증후군이라고 하던데요."

(무릎 바깥쪽과 허벅지 바깥쪽을 따라 이어지는 장경인대(iliotibial band)에 반복적 마찰이나 과사용으로 염증이 생기는 질환)


"운동 안 한신 지 얼마나 됐죠?"


"3주 넘었는데 아직도 통증이 있어요. 의사가 쉬면 낫는다고 했는데.."


"3주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마라톤 복장 가지고 오셨죠?"


"네."


"트레드밀에서 천천히 걸어 볼게요."


회원이 트레드밀 위에서 걷는 모습을 집중하며 눈에 힘을 주고 초점을 맞춘다. 블루아이가 시작되면 이제는 눈이 서서히 시원해지는 기분이 든다.


동공이 열리면서 눈 주위의 섬모체근이 쉴 새 없이 움직이더니 어느덧 홍채는 짙은 파란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제 가볍게 조깅해 보세요."


예상대로 회원의 장경인대 부위가 빨갛고 왼쪽보다 오른쪽 부위가 더 심각했다.


정강이 부위 역시 피로골절 직전 상태였다.


대퇴 앞쪽, 뒤쪽 햄스트링 이 노란색으로 변하면서 어떻게 운동을 시킬지 고민하면서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나 옷 때문에 세밀하게 볼 수 없었다.

마라톤 복장의 싱글렛과 쇼츠에도 세심하게 근육을 보는데 한계가 있었다.


"명진님 잠시 이쪽으로 오세요. 지금 장경인대와 정강이의 피로도가 심각한데, 제가 좀 더 정확히 보려면 다 벗고 몇 가지 동작을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잘못 들은 거 아니에요. 더 자세히 볼 수 있어야 정확하게 트레이닝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당황스럽네요... 팬티는 입어도 되죠?"


"팬티까지 벗어야 돼요. 제가 반드시 서브 3 만들어 드릴게요."


팬티도 벗어야 돼요 말하는 순간 회원은 당황한 듯 머뭇거렸지만 이내 수긍했다.


"... 알겠습니다."


"제자리 걷기 한번 해보실게요. 무릎은 최대한 번갈아 가면서 배꼽 위까지 올려주시고요. 멈추라고 할 때까지 계속요."


창고 아니 회복실이라고 이름 붙인 1평 남짓한 공간에서 50대 중년 남성을 발가벗기고 트레이너인 내가 시키는 동작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이 상황을 보면 여긴 도대체 뭘 하는데인지 감조차 잡기 어려울 정도로 기괴하게 생각하겠지만,


이런 정신 나간 운동 테스트를 부탁하는 내 간절함과, 그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는 회원의 절박함 속에서 다들 묵묵히 그 역할을 충실히 했다.


"회원님, 이제 앞으로 걷다가 뒤로 걷는 걸 반복할게요. 이제 됐습니다 옷 입으세요."


주섬주섬 옷을 입을 때 서로 비장함을 넘어 몇 초간 침묵했다.


"제가 봤을 때는 명진 회원님은 장경인대뿐만 아니라 아까 말한 정강이와 고관절 부위도 문제가 있어요."


"네? 그것까지 보여요?"


"네. 저만의 운동 손상평가 방법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 평가 방법은 적나라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정말 절박한 분들만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순간 발가벗고 요상한 동작을 한 회원이 나중에 수치심과 자괴감이 들 수도 있어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둘러대긴 했지만, 말하고 나니 진심이었다.


"또 어떤 게 문제죠?"


"전문 용어로 발음성 고관절증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장경인대가 붙어있는 여기. 엉덩이 옆 가장 튀어나온 대전자 돌기 부분에서 우리가 고관절을 굽히고 펼 때 마찰로 인해 소리가 나거나 불폄함과 통증을 유발하는 증상입니다. 회원님처럼 무리하게 뛰거나 미친 듯이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도 발생해요."


이 생소한 병명을 정확히 아는 이유는 1000km씩 타는 자전거 멤버 중 한 형님이 이 부상 때문에 거의 시즌이 날아간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쉬면 나아요. 아프면 쉬어야죠 형님, 무리하게 타지 마세요." 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었었다.


그때의 한심함이 생각나 잠시 고개를 낮게 저었다.


"소리가 나긴 했어요."


"가끔 뚝뚝 소리가 나는 이유가 반복적으로 뛰는 동작 때문에 힘줄에 걸리고 부드럽게 움직이지 못해서 그래요. 당분간 뜀박질은 금지입니다. 운동은 여기서 저랑만 하시고 보스턴 생각만 하세요."


"네."


"명색이 마라토너인데 뛰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라떼 에피소드만 잔뜩 늘어놓을 수는 없잖아요.


절 믿으세요. 스읍- 뭔가 사이비 교주 같네요."


"아멘~"


회원은 웃으면서 정호의 말에 화답을 했다.


정호는 그가 사이비 신도가 될지, 정말 보스턴으로 갈지는 내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트레이닝 일지에 적어 내려갔다.


빨간 부위(부상부위) : 장경인대, 정강이뼈


노란색(훈련부위) : 엉덩이(중둔근), 봉공근, 대퇴사두근, 햄스트링, 내전근. 발목 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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