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아이(blue eye)
"크음... 으으...! 후-"
"마지막 다섯 개 남았습니다."
묵직한 땀 냄새와 짧고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운동 중인 김명진 회원의 얼굴은 밝아보였다.
"휴- 확실히 초록색이 힘드네요."
"처음엔 노란색 밴드로 다섯 개 도 힘들어하셨는데 이제는 초록색을 쉽게 쫙쫙 벌릴 만큼 중둔근이 좋아지셨어요."
"제 엉덩이가 이렇게 약한지 몰랐어요. 나름 달리기로 단련해서 자신 있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운동만 하죠. 하기 싫어도 꼭 해야 하는 운동이 있는데 사람들이 잘 몰라요. 그래서 저 같은 유능한 트레이너가 필요하죠."
"인정입니다.'
"이제 그만 쉬고 보수 가져오세요. 런지로 마무리할게요. 너무 쉬면 퍼져요."
"하아~ 되다 돼. 처음 한 달간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마라톤 풀코스보다 더 힘들었어요
지금도 힘들긴 하지만, 엉덩이랑 다리근력이 전보다 더 붙는 걸 느끼니깐 재밌네요. 이제 슬슬 뛰어도 되지 않을까요?"
"김명진 회원님. 100-1 이 뭔지 아세요?"
"... 뭐죠?"
"0 이예요. 어느 샤브샤브 집에 붙어 있던 문구인데, 100번 서비스를 잘해도 한번 못하면 안 한 거만 못하다는 고개만족 경영개념입니다. 지금 한 60정도까지 채웠는데, 한 번의 욕심 때문에 다시 0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 음 표현이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선생님 말이 다아~ 맞습니다."
"자 이제 마지막 다섯 개"
"하아~ 아까부터 계속 다섯 개 잔아요 스무 개 정도 한 거 같은데."
그래도 끝까지 해내겠다는 의지가 그의 떨리는 다리에서 느껴졌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마지막까지 힘을 쥐어짰다.
"헥헥하아-"
"수고하셨습니다. 수분 좀 보충하고 트레드밀 속도 6 넣고 20분 걷다 가세요."
"선생님 주식 좀 하세요?"
"네, 그냥 누구나 하는 국민 우량주 전삼에 조금 넣었어요. 물리긴 했지만. "
"선생님께만 알려드리는 건데, 다음 달에 로잉이라는 AI기업이 전삼하고 합병 발표가 있을 겁니다.
전산 말고 로잉 주식을 사두세요. 절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시고."
"네? 정말요? 근데 회원님은 법 쪽에 근무하신다고 하지 않았아요?"
"제가 합병진행하는 로잉 쪽 법적 절차를 맡고 있어요. NDA로…아니 비밀유지계약서로 어디 가서 말 못 하지만, 선생님께는 믿고 말씀드립니다. 일종의 제 보너스입니다, 좀 있으면 추석도 다가오니깐."
"아! 정말 감사합니다."
"욕심내지 말고, 한 15% 정도 오르면 파세요. 합병기사 나오기 전에."
"네, 그럼 마무리 잘하시고 조심히 들어가세요."
"정호! 너 승원이 형이 불러."
"저 불렀어요?"
"너 안 나가면 안 되냐?"
"왜요? 처음에는 병 고친다고 깝치지 말라며요."
"... 아니 그건 큼큼…옛날 얘기고."
"형 전 여기에 남기에는 여기가 너무 작아요."
"싸가지 없는 새끼. 오늘 회식이니깐 샤워하고 나와."
"네. 아! 형 윗 짱 까고 운동하는 거 보니깐 다 좋은데 턱걸이 좁게 잡고 하는거 꼭 넣어요."
"턱걸이?"
"형 등 약하잖아요. 등 루틴 중 턱걸이 넣어서 하세요 그럼 올림피아드 입상입니다."
"아 그래? 또? 알려줘."
"오늘 소고기죠?"
"아. 당연하지"
4명의 트레이너들이 회식 자리 앉아 숯불 위로 소고기가 올라가자마자 사라지는 매직쇼를 보여주고 있었다.
"야 이놈들아 차라리 육회를 먹어."
"사장님 여기 육회도 하나 주세요."
"와아- 허허. 그래 많이들 먹어라.“
"정호야, 근데 너는 회원들 몸 볼 때 어떻게 보는 거냐?"
"형. 영업비밀이에요."
"아니. 진지하게 나도 좀 알려줘 너 나가는 동시에 회원수 줄으면 나 너무 힘들 것 같아."
"형 솔직히 제가 그 정도는 아니에요. 형이나 여기 있는 선생님들한테 잘 배운 거죠. 무엇보다 저는 처음이잖아요. 초심자고 배우려는 욕심이 커서 사람들을 더 관심 있게 본 거 같아요."
"초심과 관심이라…"
"서비스업은 이 두 가지 아닐까요?"
"새겨들을게."
"사장님! 등심 하나 더 주세요."
김명진회원은 8개월쯤 되던 날 20km를 뛰고도 통증이 없었다며 다음날 그는 어린이아이처럼 웃으면서 들어왔다.
"선생님 어제 20km 뛰었습니다. 무리하지 않고, km당 5분 페이스로요.
뛰고 나서도 통증이 없어서 풀코스까지 뛰고 싶었지만, 선생님의 100-1=0 이 생각나서 쿨다운하고 마무리했습니다."
"하하하 정말 잘하셨어요. 서브 3가 4분 초반이었죠?"
"네! 거의 4:15초 정도로 뛰어야죠. 지금 몸 상태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올해 말고 내년 3, 4월쯤 마라톤에 출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치유방에 가서 몸상태 한번 볼까요?"
"네? 마지막이요? 왜요? 선생님 관둬요?"
"네. 이제 대학원 졸업 논문도 남았고, 이것저것 준비 할 게 많아졌어요."
"아~ 안되는데."
"안되긴 뭐가 안 돼요. 지금처럼 루틴대로 꾸준히 하시면 보스턴 찍고 런던이고 베를린이고 다 갈 수 있어요. 저도 운동하러 가끔 올 테니, 시간 맞으면 같이 운동해요."
"선생님. 제가 꾸준히 연락드리겠습니다. 혹시 법 쪽으로 필요하시면 주저 없이 연락하시고요."
"그럼 다음 합병기업 소식도 부탁드려요, 하하하. 사실 이제 와서 고백하는 건데 저도 김명진 회원님 운동시키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정말이었다. 분명 서투른 것도 있었지만 명진회원을 지도하면서 내 눈의 능력치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시험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얻은 자신감과 성공보수는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겨났다.
어지럽게 쌓인 잡동사니의 창고는 이제 치유방이라는 이름까지 달린 푯말이 그동안의 결실이 헛되 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시작하시죠!"
명진 회원은 이제 익숙한 듯 부상평가 자세와 동작을 자동으로 진행했다.
내 블루아이도 익숙해져 예전처럼 눈이 타들어가는 고통이 없었고, 상쾌했다. 그 느낌이 얼마 전 동생이 일본에서 사다준 물파스 안약 같았다.
회원의 동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동자는 몸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회전하는 몸통, 활성화되는 코어, 관절의 가동성, 발목의 각도와 무릎의 흔들림, 체중이 실리는 방향등
미세한 변화와 근육의 반응을 눈동자에 집중하면서 몸이 보여주는 글자를 놓치지 않게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처음 왔을 때 그의 찡그린 얼굴표정만큼이나 동작은 아픈 부위를 의식했다. 여러 곳에서 나오는 보상 동작과 긴장된 근육, 심한 통증등.
지금은 움직임이 부드럽고, 근육의 반응도 완벽했다. 뛸 준비가 됐다.
“선생님?”
"아 네."
"뭐 잘못됐나요?"
"아니요, 너무 완벽해서 감탄하고 있었어요. 옷 입세요"
"하하 다 선생님 작품입니다. 그래도 선생님 몸한테 안 돼요."
나는 그의 몸 상태를 정확히 기록했다.
빨간색(부상부위) : 없음
노란색(훈련부위) : 없음
초록색(회복부위) : 없음
파란색(강화부위) : 복직근, 중둔근, 장요근, 대퇴사두근, 햄스트링, 비복근, 전경골근
그리고 이제 뼈와 근육, 건, 인대 말고도 폐와 심장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