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수영

블루아이(blue eye)

by Dinnerout

"딱! 한 달만. 아니 다음 주면 구해질 것 같아."


"안 돼요. 저 요즘 바빠요"


"너 저번에 내가 호텔 예약해 줘서 여친이랑 화해 잘했잖아."


"아 그게 언제 적 얘기예요? 그리고 헤어졌어요."


"아... 아 그래?... 아무튼 너도 용돈 벌이는 해야지."


"저 돈 있어요 누가 보너스 줘서"


"그냥 앉아있으면 돼 그리고 우리 수영장물 나쁘지 않아."


"아 뭔 소리 하는 거예요. 저녁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예요?"


"어?하하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시급 이만 원이고 너 적십자거 아직 있지?"


"네, 작년에 갱신했어요. 저 진짜 오래는 못해요."


"알았어 구할 때까지만."


"참치도 사요."


"걱정 마 가자."


6층에 위치한 실내 호텔 수영장은 5개 레인으로 단순히 물장구가 아닌 수영을 할 수 있게끔 근사하게 만들어졌다.

높은 천장과 사방의 통유리를 통해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은은하게 들어오는 자연광과 현대적인 조명이 어울려 -분위기가 마치 로마시대의 럭셔리 스파 같았다.

벽 면 한쪽 대형 스크린에는 알 수 없는 유럽풍 영상과 함께 음악이 들릴 듯 말 듯 흘러나왔다.

물 치는 소리와 함께 듣고 있으면 꽤 힐링이 되는 듯한 느낌까지 드는 이국적인 수영장이었다.


수영장 가운데 한 복판 우뚝 솟아 오른 하얀 감시대 의자까지도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지만, 유니폼에 쓰인 빨간색 라이프가드 만이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다.

감시대 옆에는 구명튜브와 제세동기(AED)가 부착되어 있다.


한쪽에 마련된 선베드에 누워있는 사람, 자유형 뺑뺑이를 도는 사람, 수중 걷기를 하는 노인등 각양각색이지만, 차분함 속에 활기찬 분위기가 묘한 안정감이 있다.


가장눈길이 멈춘 곳은 수영장 밖에 보이는 아름다운 서울 야경이었다.



"할 만하냐?"


"여기와 보니깐 느낀 건데, 역시 사람은 돈을 벌어야 되네요."


"나도 처음 입사하고 그 기분이 들었지".


"이 정도 근무환경에 이 정도 시급이면 대학생들 알바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은데요?"


"여기 담당 과장이 사람 뽑는데 워낙 깐깐하기도 하고, 알바생이 구해져도 가드 이외에 가끔 자잘한 거 시키면 못 견디고 나가더라, 겉보기랑 달리 여기 상황이 좀 복잡해."


"그렇죠.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까요."


"마음에 들면 당분간 맡아서 해라. 그리고 이따 여자랑 노인 한 명 오는데 눈여겨봐 봐."


"왜요?"


"뭔가 둘 사이가 묘해."


"알았어요. 아무튼 전 한 달이 맥시멈. 그 이상은 무리입니다. 퇴근 잘하시고 내일 봬요."


"아냐 나 내일부터 오전근무라 못 봐."


"네? 일부러 스케줄 바꾼 거 아니죠?"


"설마. 사람은 빨리 구해볼 테니깐 그전까지 수고 좀 해줘."



수영장에 있는 손님들이 연련층도 다양했지만, 영호형이 말한 것처럼 고생이란 모를 금수저 선남선녀들도 많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중년층들도 열심히 물과 놀고 있었다.


저녁 8시가 안 될 무렵 한 60대 초반에 키 170cm 약간 넘어 보이는 건장한 노인이 짧은 은빛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정리하면서 탈의실에서 나왔다.

세월의 흔적이 이마 곳곳에 있었지만, 꽤 탄탄한 몸과 근육량을 유지하고 있었다.

손목에는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었으며, 천천히 스트레칭하는 모습이 언뜻 조지 클루니 같기도 했다. 아니, 그보다 더 매력적인 것 같았다.


눈을 마주치자 그는 간단한 목인사를 하고 허리 스트레칭을 이어 갔다.


그에 맞춰 여자 탈의실에서 여자 한 명이 모델 워킹하듯 걸어 나왔다. 윤기 나는 흑발을 단정하게 묶으면서 몸에 딱 맞는 푸른색 원피스 하이컷 수영복을 입고 170cm 정도 돼 보이는 모델 같은 여자는 길고 곧은 팔다리를 우아하게 흔들며 노인 곁으로 갔다.


'영호형이 말한 사람들인가.'


무슨 관계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부녀사이 같진 않았다.


조지클루니는 하얀 수모에 파란 수경을 착용하고 파스텔톤 숏사각으로 본인의 탄탄한 몸도, 수영실력도 자신 있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숏핀을 착용하고 물속에서 천천히 자유형으로 25m 풀장을 돌기 시작했다.

스트로크가 꽤 부드럽고 수영을 오랫동안 한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모델은 옆 선베드에서 누워 이어팟으로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


퍼블릭 수영장에서 가드 일을 몇 번 한 적 있었다. 대부분 수영장은 지하에 있어 사람들 수영실력 감상하며 공상하는 것 이외는 별 달리 할 게 없었다.

그때는 시간이 정말 안 갔는데

확실히 호텔 수영장이라 인테리어나, 야경이며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벌써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 번은 수영하다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부부가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수영장에서 반지나 귀걸이 같은 걸 잃어버리면 거의 찾기가 어려웠다. 물속 굴절률 때문에 물체가 왜곡돼서 도 있고, 가장 큰 이유는 미세한 물의 흐름으로 인해 물체가 계속 이동을 하게 된다.


"회원님들 여기 이 분 결혼반지를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수영하시다가 반지를 발견하면 주어주십시오."


여기까지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모든 회원들이 물속에서 다이아를 찾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말은 안 했지만, 뭔가 찾아 달라고 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티는 안내지만, 함께 수색을 하게 된다.


비록 그날 찾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다음날 시설관리팀에서 찾아서 전해줬다고 한다.


또 한 번은 라이프가드인 나에게 수영 영법을 봐달라는 회원이 따라붙었다.

물론 한 두 번 봐주고 가드업무 특성상 더 이상 어렵다고 말씀드렸다.


승우에게 얘기했더니 '그 회원이 남자가 아니고 여자에다 이뻤으면 끝까지 잡아줬을 거 아냐?'


"당연하지"


"크크크"


예약제 레슨이 잡히는 날이면 담당 수영 선생님들 레슨구경도 하면서 회원들이 사 온 간식거리도 같이 나눠 먹었다.


"선생님도 수영 좀 하세요?"


"네 좋아해요 그래봐야 선생님에 비하면 물장구 수준이죠 상비군까지 하셨다고 들었어요."


화목 저녁에 프리랜서로 개인레슨을 하고 있는 이은성 샘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는 180 중반정도의 큰 키와 부력을 위해 살짝 나온 뱃살이 베테랑 수영선생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네. 하지만 옛 영광은 수모에 달린 태극기 로고가 다죠. 지금은 프리랜서로 하다가 나중에 수영장하나 차리려고요."


"선생님 주종목은 모예요?"


"저는 평영이었어요."


"어? 저도 평영인데 다음에 이것저것 물어봐도 되죠?"


"물론이죠, 정호샘 혹시 시합 나가는 거 좋아해요? 수영팀 있는데 같이 할래요? 레인대여해서 훈련도 하고 같이 시합도 종종 나가요."


"네 좋아요. 저 가입할래요. 안 그래도 수영 시합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어서 나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은성쌤이랑 같이 하면 영광이죠."


"그럼 다음 주 일요일 날 시간돼요? 그날 훈련 있어요."


"네. 가능해요"


"그럼 그때 봬요."


"옙. 블루베리 스무디 잘 마시겠습니다."



한국 최초 27초 21 한국 평영 기록 수립


포털사이트에서 찾아본 이은성선수는 한국에서는 엄청난 유망주였다.


세계기록은 영국선수가 세운 26초 10...세계의 벽은 높다.


예전부터 수영대회를 나가고 싶었는데 정보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못 나갔는데


벌써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가드 알바를 한 지 2주 정도가 지나고 조지클루니와도 인사말을 할 정도로 친해졌다.


"오늘도 핀수영이네요."


"네, 스노클도 가져왔어요. 롤링이 잘 안 돼가지고."


"제가 볼 땐 잘하시는데요. 수영 오래 하셨나 봐요."


"네 한 20년 정도 한 거 같아요. 운동 중에 수영이 가장 재밌어요 물 안의 고요함과 저항을 이겨내며 물 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 가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뭔지 압니다. 매력적인 운동이죠."


"오늘은 쉬지 않고, 3,000m 갑니다."


"친구분은 같이 안 오셨네요?"


"친구요? 아, 다영이? 아 하하하하. 여기 할리우드도 아닌데 여자친구로 생각한 건 아니죠?

제 딸입니다. 위에서 웨이트 하고 내려올 거예요."


"아... 그렇군요. 열심히 하세요~"


분명히 딸 같지는 않아 보였는데...이 소식을 영호형에게 빨리 알리고 싶어 졌다.


조지는 역시나 자신감 있고 부드럽게 물살을 가르며 유유히 앞으로 나아갔다.


한 20분 정도 돌았을 때 갑자기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옆 중급 레인에서 혼자 배영하는 중년 여성한테도 뒤쳐지고 있는 게 의심스러웠다.


돌고 있는 그에게 손짓을 하며 멈춰 세우고 가까이 가서 말을 시켰다.


"조금 쉬었다 하세요."


"허억허억 휴우~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네요."


"스노클이 익숙지 않으면 호흡하기 불편할 수 있어요."

블루아이로 본 순간 그의 심장상태가 또렷하게 보였다.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았고, 대동맥에 스텐트 삽입수술 흔적도 보인다.


"아빠! 내가 스노클 쓰고 하지 말랬잖아."


어느새 옆으로 온 딸이 얼굴이 벌게 져서 소리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여기 선생님이 쉬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아름답네요'가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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