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문화, 도시
[시리즈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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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세계 백화점이 망하는데 한국 백화점만 잘되는 이유는?(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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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백화점이 파산하는 와중에 한국의 백화점은 오히려 점포를 확장하고 있다. 이유를 결론부터 말하자면,
1. 백화점 자체의 혁신
2. 눈치 보는 한국 문화
3. 휴식 공간이 없는 한국 도시
이 세가지의 이유로 한국의 백화점이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1. 백화점 자체의 혁신]
우선 한국 백화점이 시대의 흐름에 발빠르게 대처했다. 70년대 경기 부흥 이후 한국에 백화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일산 그랜드 백화점, 대전 세이 백화점, 대구 동아 백화점, 광주 화니백화점 등등, 지난 50년간 수백여 개의 업체가 나타나고 사라졌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백화점은 부단히 변화를 시도했다. 현대백화점은 한국 백화점 최초로 문화센터를 개장하여 문화센터 붐을 일으켰고, 신세계 백화점은 예술과 결합한 신개념 백화점을 선보였다. (물론 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100년 전 프랑스의 봉 마르셰 백화점에 이미 있던 거다.)
특히 온라인 시대에 맞춘 변화에 능숙했다. 오프라인 쇼핑몰은 온라인 쇼핑몰과 비교해서 편리함과 홍보성은 이미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프라인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장점을 개발해야 한다. 작년 개장한 더현대 백화점은 자연에 주목했다. 본래 백화점 영업 면적 중 매장에 할애하는 면적은 70%에 달한다. 그러나 더현대 백화점은 매장 면적을 고작 50%만 만들고 나머지는 정원으로 꾸몄다. 메인 플레이스인 5, 6 층에 오면 백화점에 온 건지 거대한 정원에 쉬러 온 건지 구분이 안될 정도이다. 마찬가지로 작년에 개점한 신세계 백화점 대전점, 아트앤사이언스점은 지역성에 초점을 맞췄다. 과학의 도시 대전에 걸맞게 거의 한 층에 걸맞는 규모를 과학 체험실로 꾸몄다. 넥스페리온이라 이름 지어진 체험 공간은 지역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높다.
백화점, 오프라인 쇼핑이 살아남는 방법은 온라인 쇼핑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다. 편리함과 홍보성은 온라인 쇼핑을 이길 수가 없다. 온라인 쇼핑에서 할 수 없는 곳을 공략해야 한다. 더현대 백화점은 오프라인에서만 누릴 수 있는 신선한 자연에 주목하여 시민들이 언제든 편하게 휴식하러 오게 만들었고, 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는 가끔 들르는 백화점에서 매일 들르는 체험 공간으로 백화점의 개념을 탈바꿈했다.
최근 백화점의 핵심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자연
예술
체험
지역
명품
음식
휴식
이 키워드 중 상품과 관련된 것은 오직 ‘명품’ 뿐이다. 나머지는 통상적인 백화점과 그리 가깝지 않은 것들이다. 모두 오프라인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자연을 온라인에서 온전히 즐길 수 없고 음식을 넷상에서 먹을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백화점의 미래는 상업에 있지 않다. 그전까지의 백화점이 백가지 상품을 파는 공간이라면 이제부터의 백화점은 오프라인에서 즐기는 특색 있는 체험 공간으로 정의 자체가 바뀔 것이다. 우리나라 메이저 백화점은 이 변화에 잘 적응하여 살아남게 되었다.
[2. 눈치 보는 한국 문화]
우리나라 백화점이 변화에 적응을 잘했다는 것만으로는 유독 우리나라만 백화점이 활황인 이유로는 부족하다. 일본의 레이어드 미야시타 파크 백화점처럼 24시간 음식 골목을 마련하여 커뮤니티형 백화점 사례도 존재하며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 마르셰 백화점에서 이미 체험형 백화점을 도입했었다.
두번째 이유는 한국의 독특한 소비 문화이다. 소비자학연구지에 투고한 김선우님의 논문에 의하면 한국은 수직적 집단주의 문화이다. 반면 서구권 자유시장경제인 미국은 수직적 개인주의 문화이고, 유럽형 조정경제체제인 스웨덴은 수평형 개인주의 문화이다. 수직적 집단주의 문화의 특징은 쉽게 말해 눈치를 많이 본다. 소비문화의 차원을 여러 척도를 나눴을 때 그중 하나가 ‘타자 승인’과 ‘유명 선호’이다. 타자 승인은 자신이 산 상품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을 쓰는 것이며, 유명 선호는 명품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유독 타자 승인과 유명 선호가 높았다. 스웨덴에 비하면 특히 높았다.
타자 승인과 유명 선호가 높은 특성으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백화점 1층 매장에서 명품 가방을 소비하는 행위는 스웨덴과 미국에 비해 더 큰 만족감을 주는 행위이다. 명품이 보기 좋게 집결해 있는 백화점은 한국 사람에게 인기 있는 상업 공간이다.
최근 MZ 세대를 중심으로 명품 선호 현상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수직적 집단주의의 한국 특성상 어떤 유행이 불면 빠르게 번진다. 친구가 사면 나도 사야 한다. 직장 후배가 롤렉스 시계를 샀는데 나는 카시오 시계를 차면 모양새가 나지 않는다. 벤츠가 있더라도 아직 저년차 사원이라면 직장 상사의 눈치를 살펴 회사 다닐 때 타지 않는 게 예의인 나라이다. 백화점과 한국의 눈치 문화는 찰떡궁합이다.
[3. 휴식 공간이 없는 한국 도시]
당신이 아이가 둘 있는 부모라면 주말에 어딜 가겠는가. 놀이동산, 한강, 박물관 등등 갈 곳이야 다양하다. 하지만 일상 속에 가볍게 쉬러 갈 장소가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공원이 부족한 나라이다. 큰 공원은 있어도 퇴근 후에 가볍게 동네로 갈 공원이 없다. 유럽은 동네 곳곳에 괜찮은 공원이 퍼져 있다. 저녁 시간에, 주말에 애들을 데리고 나와 가볍게 쉬다 가기에 좋다. 반면 서울 시민들은 한강까지 원정을 다녀와야 한다. 자연히 공원을 대체할만한 시설들이 각광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는 유독 멀티플렉스몰이 발달했다. 쇼핑, 식사, 영화 관람을 논스톱으로 진행한다. 도시가 걷기 좋지 않고 쉬기 좋지 않으니 건물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다. 백화점은 멀티플렉스몰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유모차 두대를 몰아도 널널한 복도와 기저귀 갈기에 편리한 화장실, 친절한 직원들은 30~40대 부모님을 백화점으로 이끈다.
차량 중심의 도시가 보행자 중심의 도시로 바뀌지 않는 이상 백화점으로 대표되는 멀티플렉스 몰의 인기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OUTRO]
지금까지 4편의 글로 세계의 백화점이 하향세를 향할 때, 유독 한국 백화점만 성장을 계속 이어가는지 알아보았다. 백화점이 계속해서 발전해서 한국만의 경쟁력을 자생한 것은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백화점 선호 현상이 한국의 눈치 문화, 차량 중심의 도시 때문이라면 문화와 도시부터 돌아보는 것이 적절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