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키토!

[에콰도르 키토] 기니피그 먹어보지 않은 자, 그 맛을 논하지 말라

by 좋아영


2016년 12월 1일


여덟시에 일어나기로 하고 알람을 맞춰두었는데, 한참 일찍 깨서는 다시 잠들지 못했다.

고산증세인지- 편두통처럼 머리가 계속 아파서 한국에서 받아온 소로치필을 먹기로 했다.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는 해발 2850m에 위치 해 있어서 고산증세가 나타날 수 있고, 소로치필 Sorojchi Pills은 이런 고산 지역 여행자들이 애용하는 진통제 중 하나이다.)


키토의 맑은 하늘과 언덕에 오밀조밀 늘어선 집들을 바라보며 먹은 아침


빵을 반 갈라 버터를 잔뜩 바르고 스크램블을 쑤셔 넣어 한입 베어 무니 아- 좀 살 것 같다.

호스트 폴이 가져다 준 갓 짜낸 파인애플 주스도 한 모금 마셔본다.


루까 할배가 큰 눈을 굴리며 다가와 투어가이드를 해 주겠다고 한다. 루까는 이탈리안인데 시칠리아에서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다가 휴가 차 에콰도르에 온 사람이다. 지수 그리고 이란남자 프레드와 함께 루까 할배를 따라 나섰다.


바실리카 대성당 앞의 루까, 프레드 그리고 지수


할배가 사준 꿀 사탕을 까드득 까드득 씹으며 적도 탑이 있는 미타 델 문도 Mitad del Mundo 에 도착했다. 우리 말로 '세상을 절반으로 나누는 곳' 이라고 하면 될 듯 한데, 따로 표는 사지 않고 입구 앞에서 기념 사진만 찍어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굳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밖에서도 아주 잘 보였거든.



Mitad del Mundo / 세상을 반으로 나누는 곳


조금 더 걸으면 인티냔 뮤세오 Intiñan Museum 을 둘러 볼 수 있다.

입구는 선인장으로 가득해서, 마치 사막 한 가운데에 와 있는 느낌을 주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느낀 거지만, 적도에다 고산지대라 그런지 확실히 햇빛이 굉장히 강해서 선글라스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아랫부분 코팅이 잘 벗겨져서 한 번도 안 쓴 제품을 두 번씩이나 교환하게 만들었던 애증의 안나수이...


잘 썼다. 가져오길 잘 했다.



Intiñan Museum의 입구



가이드 시저, 남자다.


어느 부족의 shrinken head. 즉 줄어든 머리다.

선대 지도자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머리 뼈를 빼내고, 약촛물에 담그고, 뜨거운 돌을 넣어 줄어들게 만든 머리를 목걸이로 만들어 걸고 다녔다고 한다. (족장님, 목걸이로 만들어드릴테니 영생하십시오 하며 머리 뼈를 발라낸다는 상상을 해 보라) 그의 영혼을 본받기 위해서라나.


의도는 좋은데 결과물이 영 별로다.


영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해리가 타게 되는 구조버스 앞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던 말하는 머리가 딱 그렇게 생겼다.



영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이 박물관의 적도 실험 프로그램은 꽤나 알차다.



그림자를 통해 시간 알아보기

수조의 물이 빠질 때 적도에서, 북쪽에서, 남쪽에서 물의 소용돌이가 어떤 방향으로 생기는지 알아보기

적도, 북쪽, 남쪽에서 눈 감고 똑바로 걸어보기

적도에서 달걀세우기



꽤나 집중하고 있다.


그 중 계란 세우기는 한 쪽에서 계속 시도하다가 실패했는데, 이거 확실히 잘 되는 쪽이 있는 것 같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에그 마스터가 되었다.



나 빨리 찍어줘, 빨리 빨리! 제대로 신이 났다.


늦었지만 점심을 해결해야 했는데, 루까 말대로라면 거리에 가득 있어야 할 vendor들이 코빼기도 보이지를 않았다. 죄다 축제 중인 키토 시내에 간 모양이다.

그래도 근처에 손님이 꽤 오는 듯한 음식점이 있어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실 그냥 평범하고도 평범하며, 익숙한 음식을 시키고 싶었지만 루까가 자꾸만 꾸이 꾸이 노래를 부른다.

아- 난 싫다고.


그런데 루까 할배의 기대에 차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무시할 수가 없다.


내가 꾸이를 먹고 싶지 않아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방금 전 박물관에서 귀엽게 발발대며 돌아다니는 꾸이를 보고 왔으니까.


꾸이, 우리가 아는 그 기니피그가 맞다.


그 귀여운 기니피그가 이렇게 요리가 되어 상에 올라왔다.



보기만 해도 입맛 떨어지는 비주얼. 그래도 용기 내어 먹어보기로 했다.


맛은 그닥 나쁘지 않았지만 외형에서 풍기는 내추럴한 혐오스러움과, 잘 잡아내지 못한 야생의 냄새때문에 두 입 먹고 더 먹지는 못했다.

루까할배는 신이나서 아주 잘 먹는다.



루까 할배가 노래를 부르던 꾸이


죽은 기니피그 입 안을 이렇게 자세히 보게 될 줄이야.


같이 먹어보자고 꼬시긴 했는데,

잘 먹지 못하는 나에게 미안했던지 5달러만 달란다. 그래요 난 거의 풀때기랑 계란만 먹었다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계속 재채기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기는 아니고, 매연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키토 시내의 자동차들이 뿜는 까만 연기는 정말 위협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