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거 검색해봐.”

유튜브 장난감 요구에 우리 집이 만든 규칙

by 엄마코끼리

“엄마, 이거 검색해 봐.”

유튜브를 보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장난감을 보면, 우리 집 막내는 꼭 이렇게 말한다. 사달라고 말하기 전에 하는 일종의 사전 작업이다. 애가 갖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솔직히 다 사주고 싶다. 하지만 이미 여러 번 겪어봤다. 아무리 사줘도 금세 다른 장난감을 또 원하게 되고, 심지어 사놓은 장난감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일이 생긴다.


최근에 읽은 <자본주의>에서 이런 내용이 나왔다.

“선호개발. 그다음은 습관화.”

그 문장이 아이의 요즘 행동과 겹쳐 보였다. 물론 8살 아이가 그 내용을 이해하긴 어렵다. 그래서 막연히 하던 대응을 우리 집 규칙으로 만들어봤다.


아이의 “갖고 싶다”는 욕구는 “만들어진 선호”일 수 있다.


유튜브에는 장난감 리뷰가 끝없이 나온다. 사실상 거대한 광고인데, 아이들 눈에는 장난감을 가지고 잘 노는 삼촌과 이모로 보일 뿐이다. 처음엔 재미로 보기 시작하지만, 반복해서 보다 보면 익숙해지고 결국은 갖고 싶어진다.


돌아보면 나도 그랬다. 아이를 낳고 나서 ‘국민템’ 검색해서 하나씩 장만했던 내 모습도 비슷했다. 그때 내게 인스타가 그런 역할을 했다면, 지금 우리 아이들에겐 유튜브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다 사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면서도, 금방 흥미가 떨어질 것에 대해 돈 낭비를 하고 싶지 않은 내가 시작한 방법은 이렇다.


우리 집 첫 대응: 일단 들어주고, 적어두기

“그게 뭔데?” (요구에 대한 경청)

요구가 너무 많아지면: 유튜브 시청 종료 알려주기

갖고 싶은 장난감은: 위시리스트에 적기


일단 아이가 말하는 것은 들어주고, 검색도 해준다. 그럼 아이는 꼭 묻는다.


“엄마, 나 이거 언제 사?”


처음엔 그저 목록을 쓰기만 했던 아이도 이제는 “사줘”에서 “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턱대고 “나중에”라고 하면 아이는 설득되지 않고, 그 기다림이 힘들기만 하다. 그래서 우리 집의 규칙을 바꾸지 않으면서 아이의 요구를 조절할 수 있는 지침을 알려주었다.


“장난감은 사고 싶다고 다 사는 게 아니라 생일이나 어린이날 하나 골라서 사는 거야.”

(크리스마스는 아직 산타를 믿고 있다)

“하굣길에 편의점 안 들르고 집에 오면 천 원씩 줄게. 모아서 사고 싶은 걸 사도 돼.”


아이가 고르는 장난감은 가격이 제각각이다. 나는 일단 너무 갖고 싶다고 한 2만 원대 장난감부터 적용했다. 1호는 용돈이 있어서 자기가 사고 싶은 책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는데, 2호는 아직 용돈이 없다. 그래서 2호는 편의점 안 간 날마다 천 원을 모으고 있다.

비싼 장난감은 아이가 기다림이 너무 길어질 수 있어서, 그건 어린이날로 돌렸다.


아이의 위시리스트는 ‘거절’이 아니라 ‘기다림을 배우는 장치’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얼마 안 하는 걸로 실랑이하느니 그냥 사주고 끝내는 게 편한 방법이다. 거절도 “안돼” 한 마디면 쉽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가 배우는 게 거의 없다. 쉽게 얻은 장난감은 어디선가 굴러다니다 잊히고, 거절은 아이를 서운하게 한다.

지금 우리 집에는 위시리스트가 몇 장 붙어있다. 2호가 만든 걸 보고 1호도 자기 걸 만든 것이다.


아이 눈높이에서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종이 붙이기

원하는 게 생기면 아이가 직접 적기

마음이 바뀌면 바꿔도 되지만, 주문 이후에는 바꾸지 않기


바로 사주지 않고, 그저 종이에 적기만 해도 아이는 자신의 요구를 엄마가 들어줬다고 생각한다. 크게 거절감을 느끼지 않으니 나도 마음이 덜 무거웠다.


편의점 안 간 날 천 원은 용돈 교육이 아니라 선택 교육이다.

책에서는 계획하지 않았던 소비를 하게 될 때,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라고 했다. 감정 상태가 소비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였다. 아이에게 편의점은 작은 충동이 연달아 생기는 공간이다. 학교 옆 무인 문방구도 비슷하다.


아이는 이제 안다. 편의점에 가지 않으면 돈이 모이고, 그 돈을 모으면 원하는 걸 살 수 있다는 것을.


<자본주의>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정말로 행복하고 싶다면,
소비에서 행복을 찾기보다는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장난감으로 얻는 행복은 짧다. 길어야 3일, 길어도 일주일. 그리고 또 다른 장난감이 갖고 싶어진다.

아이의 행복은 장난감으로 긴 시간 채워지지 않았다. 아이에게 더 오래 남는 건 안전한 집, 사랑받고 있는 분위기, 언제든 안아주는 엄마와 아빠 같은 것들이다.


위시리스트에 적고 나면 아이는 금세 다른 활동으로 눈을 돌린다. 그때 놀이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면 아이의 욕구는 꽤 조절이 된다.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는 방법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도 나의 작은 행복이다.


나도 매번 잘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우리 집은 규칙을 함께 만들고 지키는 집으로, 온 가족이 함께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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