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메누리로 산다는 건
제주에서는 명절 전 음식 장만하는 일을 “떡한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명절 전 날을 떡하는 날이라고 부른다. 오늘이 바로 떡하는 날인지라 제주 메누리(며느리의 제주사투리)인 나는 시댁에 가서 음식을 장만하고 왔다. 가뿐하게 세 시간 동안 부침 및 지짐을 하고 집으로 다시 와서 낮잠 한 숨을 자고 휴식을 취한다. 몇 시간 걸려 본가에 가는 육지와는 달리 제주도 내 어디를 가든 이동거리가 길지 않고 고속도로 같은 교통체증이 없는 편이라(물론 제주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노형같이 늘 분비는 곳도 있긴 하다) 가능한 일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눈에 띄는 기사들이 곳곳에 보인다.
시댁과 제사와 며느리(혹은 딸)의 관계성에 대한 기사는 명절 전후 단골 기사거리이다. 아무래도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이어지는 고된 노동의 음식 장만과 남자어른과 남자들의 화합이라는 술상의 여유라는 짙은 대비성에서 비롯되는 갈등이 원인일 것이다. 요즘 부모 세대 중에서도 이런 문화를 변화시키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생각이 깨어있다고 해야 할지, 자식과 며느리 눈치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신 것인지 그 속내는 사뭇 궁금하다.
가족이 모이는 일은 분명 즐거운 일인데 특히나 요즘처럼 서로가 멀리 떨어져 살고 각자 바쁜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에는 더욱 가족이 그립기 마련인데 음식을 누가 하는지 때문에 차라리 만나지 않는 쪽을 택해야 한다면 다소 서글픈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하던 대로 여자들은 음식이나 장만하고 남자들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의 자세를 유지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세대 간, 성별 간 양보와 화합이 절실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 친정과 시댁의 경우 그런 의미에서 모범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오빠와 새언니는 명절 당일까지 오빠의 처가(새언니의 친정)에서 시간을 보내고 명절 당일(설이나 추석 마찬가지) 늦게 온다. 우리 친정에서는 제사를 따로 지내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음식 장만할 것도 없고 딸인 내가 제주에서 가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굳이 아들 내외를 명절이라고 부르시지 않는 까닭이다. 친정부모님은 자식 내외가 시댁을 먼저 가냐 친정을 먼저 가냐로 힘겨루기를 하게 하는 대신에 가족이 함께 만나는 데 의미를 둔다.
차례가 있는 우리 시댁의 경우는 상황이 약간 다르긴 하다. 일단 주방에 작은어머니와 나는 기본 인력이지만 큰 불만은 없다. 어머니께서 며칠 전부터 고기 양념부터 모든 밑바탕을 깔아 두시면 우리는 그저 부치거나 지지기만 하면 된다, 나름의 분업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큰 일거리는 옥돔을 굽는 일인데 대략 8마리 정도를 굽는데 한두 시간이 걸리는 만큼 남편이나 시동생이 맡는다. 그날 생선을 맡은 사람은 생선을 굽고 나머지 한 사람은 주방에 합류한다. 술 마시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작은 아버지께서도 주방을 왔다 갔다 하시며 다된 음식을 정돈해서 방으로 옮기는 일을 하신다. 여기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아버님과 우리 아기뿐이다. 오늘 아버님은 아침부터 쇠막에 가셨다가 부족한 장을 보러 시장에 가셨고 이발을 하러 가셨다. 엄마 아빠가 놀아줄 상황이 아니라는 걸 태어나면서부터 체득한 아이는 세 시간 동안 혼자 놀기를 했다.
오전 10시부터 분주히 움직여 오후 1시가 되니 뒷정리까지 마무리가 되었고 점심은 짜장면과 짬뽕을 포장해다 먹었다(식구들이 점심까지 해 먹기에는 힘에 부치고 제주 촌에는 배달이 안 되는 곳이 아직 많이 있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어김없이 커피를 드시는 시부모님을 알고 있기에(정말이지 식후 커피는 국룰이란 말인가) 눈치 빠른 며느리인 나는 서둘러 남편에게 스벅에 가서 커피를 사 오자고 말했다.(스타벅스 성산 DT점은 시댁과 가까워 즐겨 찾는 곳이다.) 출발과 동시에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해안도로 카페에 꽉 찬 인파와 9월 중순이 지났음에도 물놀이하는 사람들, 트랙킹을 하는지 배낭을 메고 해안도로를 걷는 사람들로 성산 일대가 북적이고 있음에 깜짝 놀랐다.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곳은 어디이고 이곳은 또 어디란 말인가.
코로나 시국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분명 추석 연휴에 집에 머물러 달라는 메시지를 나만 본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예상했던 대로 스벅에 가까이 다가가자 드라이브 쓰루를 기다리는’하. 허. 호’ 렌트 차량들로 차선 하나가 저만치부터 밀려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주문하는 방법을 선택하려 했지만 주차장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여행객들은 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걸까?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왔다면 다행지만 제주도는 아직 4단계를 유지 중이니 이를 어기면서까지 왔다면 민폐라고 할 수 있고 코로나로 본가에는 가지 못하지만 제주도는 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제주도가 누군가에겐 일상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낭만적인 여행지인 온도 차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또한 매우 사적인 영역이고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다르며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는 너무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이다.(물론 코로나 방역수칙을 다 준수해서 여행을 온 분들이라면 당연히 ‘웰컴 투 제주!’이다) 다만 명절이 단순히 연휴로 퇴색되는 것이 아쉽고 가족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랑의 온기를 느끼는 날이라는 본질적인 의미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우여곡절 끝에 커피를 사들고 다시 시댁으로 향하면서 다섯 살 아이에게 말했다.
-서율아, 엄마 아빠는 명절에 너 어디 여행 가는 거 안될 것 같아, 보고 싶으니까 꼭 와야 해! 엄마 아빠는 꼰대 할래.
-그래, 그때까지 떨어지지 말자, 우리는 가족이니까.
아이의 답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그 말. 오늘의 느낀 점이었는데 학교 조회시간 교장선생님 말씀 같은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름달을 가득 채우고픈 밤이라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추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