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5년 만에 귤밭에 간 육지며느리
제주 하면 귤이다. 귤 시즌이 되면 문 앞으로 콘테나에 귤을 담아 놓고 마음껏 드시라는 가게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귤 시즌이다. 귤은 원래부터 서귀포_효돈 쪽 감귤이 유명한데 온화한 날씨 때문일 것이다. 선과 작업을 거쳐 빤닥빤닥 윤기 나는 감귤을 보면 먹음직스러운 자태에 입 안에 침이 고이기 마련이다. 차마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한 상자씩 들고 공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택배 배송이 흔하다고 해도 손수 건네는 귤 상자를 받아 들고 함박웃음을 지을 상대를 떠올리는 재미가 쏠쏠한 까닭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그 곱디 고운 귤에는 정이 안 간다. 투박하고 못생겨도 달고 맛있는 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시댁에서 농사짓는 귤 말이다.
시댁은 행정구역상 서귀포지만 제주 사람들은 서귀포라 부르지 않는 제주 동쪽 끝 쪽 이이다. 귤보다는 일출봉으로 더 유명한 지역이기도 해서 시댁 가는 길목마다 눈이 즐겁다. 해안도로 따라 늘어선 풍차를 보는 일, 여름이면 수국으로 아름다운 종달리 길을 드라이브하는 것, 언제 보아도 경이롭고 장엄한 일출봉을 눈에 담는 모든 여정이 여행인 것이다. 한 달여만에 시댁에 갔다. 아버님께서 올봄에 양쪽 무릎을 수술하신 탓에 일 하시는 게 예전 같지는 않을 터라 일손을 보탤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시부모님께서는 농부이시다. 무와 감자 같은 밭작물도 기르시지만 1년 중 가장 공을 들이는 농사가 바로 귤이다. 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자란 귤은 지금이(본격 겨울이 시작되기 전) 수확철이라서 한창 바쁠 때이다. 결혼한 지 5년이 넘도록 시부모님께서 돌보시는 밭에는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으니 시부모님 입장에서는 그리 좋은 며느리는 아님에 틀림없다. 나름의 변명을 해보자면 결혼하고 얼마 후 아이가 생겼으니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 일주일동안 회사에서 분주했던 일상을 주말동안엔 오롯이 휴식으로 보상받고 싶기도 했다.(집에 있는 것만으로 휴식이라 한다면 휴식인 걸로..) 이제 아이는 다섯 살이 되어 귤밭을 이리 저리 뛰어다닐 수 있고 시부모님은 눈에 띄게 연로해지고 계시니 더 이상은 밭일은 시부모님의 일이라며 모른체 하기 어려워졌다.
제주도 어른들은 귤을 '미깡'이라고 부르고 귤 따는 일을 '미깡탄다' 고 말한다. 토요일 늦은 오후에 도착하니 오늘도 아버님, 어머님 모두 귤밭에 미깡타러 다녀오신 모양이었다. 주말이라 도련님도 손을 보탰나 보다. 도련님과 남편은 둘 다 덩치도 좋고 힘도 센 데다 일머리까지 있어서 집안에서 중요한 노동력이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밭에 다녔다고 하니 남편과 도련님 아니었으면 농사를 다 어떻게 지으셨을지 모를 일이다. 돼지갈비로 저녁을 든든히 먹고 들어와 식구들이 둘러 앉아 아이가 좋아하는 카드 게임을 하고 있자니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집 안 공기를 따숩게 데웠다. 어머님께서는 오랜만에 사람 사는 집 같다고 놀이하는 손주 옆에 앉아 연신 궁둥이를 다독다독 하셨고, 아버님께서는 한 발 물러나 우리가 게임하는 걸 보시면서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셨다. 놀이 끝에 내일은 밭에 몇 시에 가는지 여쭤보니 7시쯤 간다고 하시며 아침 챙겨 먹고 올라가라고 하셨다. 우리도 밭에 갈 거라고 하니 놀라시면서도 좋아하는 눈치셨다. 누군가에게 전화로 '시에서 아들이랑 메누리가 와부니까(며느리가 왔으니까)'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 동네 사는 괸당(친척)이 일을 도우러 오기로 했던 모양이다.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밭에 가려니 살짝 긴장이 됐다. 밭에 일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방해만 되면 어떡하나 싶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 오래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었다. 잠자리가 불편한 탓인지 밭에 갈 일이 걱정되어서인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새벽녘에서야 선잠이 들었나 본데 전화가 와서 받으니 어머니셨다.
- 바람이 하고(많이 불고) 날이 차니 밭엘랑(밭에는) 오지 말고 애기 도랑(데리고) 집으로 가라이!
잠이 덜 깬 상태로 창 밖을 보니 날이 흐렸다. 집에 간다고 인사도 할 겸 남편은 일 하다 오라고 데려다 줄 겸 밭으로 갔다. 벌써 어디선가 작업이 한창이신지 목소리만 들리고 모습은 귤나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밭 안으로 들어온 건 오늘이 처음이다보니 어디가 어딘지 도통 분간이 안됐다. 키가 작은 귤나무 사이를 헤치며 목소리를 따라가다 어머니 친구분들인 동네 삼춘들을 먼저 만났다. 고생이 많으시다고 인사를 드렸다가 일 하러 온 아이가 무사(왜) 옷을 그레(그렇게) 꼽닥하게(곱게) 입고 왔냐는 참견만 들었다. '금방 가려고요.' 말하기가 멋쩍어 그냥 웃었다. 결혼하고 5년 넘게 허물없이 지내고 있는 정 많고 인심 좋은 삼춘들이다. 삼춘들이 귤을 따서 한 곳에 모으면 어머니는 콘테나에 골라 담고(어떻게 구분해서 담는지 몰라 또 멀뚱멀뚱 서 있었더랬다.) 귤이 가득 담긴 콘테나는 도련님과 남편이 수레에 실어 나르도록 역할이 나눠진 듯 보였다. 아침 일찍 시부모님과 함께 밭으로 나온 도련님은 추운 날씨에도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어머니 옆에 서서 골라주시는 귤을 받아먹었다. 갓 딴 귤의 싱상함과 달콤함, 새콤함이 찬 공기와 어울려 겨울의 진한 정취를 느끼게 했다.
귤 밭을 한 번 둘러보는 것으로 오늘의 며느리 역할이 끝이 났다. '미깡타러 갔다 귤만 먹고 온' 아내 대신 남편은 아들의 역할을 충실히 하느라 허리까지 삐끗 한 채로 집에 돌아왔고 파스 붙이고 몸져누운 상태이다. 요즘 공부만 하다 오랜만에 몸을 쓰니 온 근육이 놀랄 만도 하다. 남편 편에 귤이며 밑반찬이며 아이스박스 한가득 보내주셨다. 결혼 전에는 마트에서 비싸다고 투덜대며 사 먹던 귤인데 농사의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요즘에는 10킬로에 택배비 포함 25,000 원하는 귤값이 너무 싸서 걱정이다. 귤 말고도 하우스에서 나는 딸기며 철 모르는 과일들에 천혜향, 레드향 등 신품종까지 겨울에 귤 말고도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널렸다. 귤을 찾는 사람들도 훨씬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어쩔 수 없지만 야속하다. 옛날에는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하던 귀한 과일이라서 탐라에서 귤이 온 걸 기념하는 과거시험도 있었건만 말 그대로 '아 옛날이여!' . 지나간 빛바랜 영광일지라도 추억하고 싶을 뿐이다.
귤을 주문해주었던 지인에게서 추가 주문이 왔다. 귤이 달고 맛있었다고, 너무 꽉꽉 담아주어서 오히려 위에 있던 몇 개가 물렀다고 조금 덜 담아줘도 된다고 했다. 시댁에서 농사지은 귤은 선과(과일을 세척하고 광내는 작업) 없이 보내는 거라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보관도 더 길게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맛이 좋다. 온 국민 겨울 간식이 다시 귤이 되는 그날까지 귤 농사 지으시는 모든 농부님들께서 힘내 주셨으면 좋겠다.
내년 겨울엔 꼭 미깡타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