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끓여주신 떡국

떡국 한 뚝배기 드십써양!

by 달콤달달

새 해가 밝았다. 어김없이 붉게 익은 태양이 모두의 염원을 담아 동그랗게 떠올랐을 테지만 늦잠꾸러기 우리 세 식구는 잠을 자느라 일출을 보지는 못했다. 제주에서는 신정(새해 1월 1일) 아침에 떡국을 먹는다. 대신 구정(설날)에는 따로 떡국을 먹지 않는다. 예정대로라면 어젯밤에 시부모님댁으로 가서 하룻잠을 자고 아침을 맞이했어야 했는데 바람이 차고 아버님과 어머님 각각 약속이 있으시다고 해서 아침 일찍 내려가는 걸로 했다. 이크, 눈을 뜨니 아침 7시 30분이다. 원래 촌에서는 이른 아침을 맞이하고 아침밥도 일찍 드시는데 시내 사는 큰아들 가족이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아침을 쫄쫄 굶고 계실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급했다. 남편과 아이를 깨워 서둘러 길을 나섰다.


아침 해는 쨍하니 비쳤다. 오늘은 뉴스를 보니 전국에서 몇 해만에 해돋이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아침에 뜬 해나 지금 중천에 떠 있는 해나 새해의 해는 마찬가지이니 나름대로 소원을 빌어본다.

가족들 건강, 무사, 사랑, 남편의 합격

오늘따라 앞서가는 차들이 거북이 운전이다. 이차선 도로라서 추월도 할 수 없는데 시간은 8시가 훌쩍 넘었다. '징-징-장' 전화벨이 울려 보니 아버님 전화다.

- 아, 여보! 아버님 전화야! 어떡해! 어디까지 왔는지 물어보시려고 하는 것 같아.

- 차가 밀린다고 해.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다 같이 아침에 떡국을 먹기로 해놓고는 늦잠을 자버린 아들 내외는 울리는 전화벨에도 가슴이 콩닥거린다. 다행히 오늘 길에 떡국에 넣어 먹을 물만두를 사 오라는 전화셨다. 휴, 다행이다.


아버님, 어머님께서도 아침에 일출을 보러 다녀오셨다며 발갛게 떠오른 해돋이 사진을 보여주신다. 내년에는 같이 가서 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마흔이 넘고, 결혼한 지 5년이 넘었건만 시댁에 가면 밥은 늘 어머니께서 해주신다. 오늘도 소고기 듬뿍 넣은 떡국을 소복이 담아내어주셨다. 사실 나는 떡국 떡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거의 고깃국에 밥을 말아먹는 수준이긴 하지만 뜨뜻하고 구수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기분 좋은 미소가 얼굴 가득 해님처럼 떠올랐다.

- 맛있느냐?

- 네! 정말 맛있어요!

어머니 그릇에 담긴 소고기 몇 점을 내 그릇으로 옮겨 주신다. 평소에는 딸인지 며느리인지 구분이 잘 안 된다.(그렇다고 딸 같은 며느리라는 말은 아니다. 세상에 그런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맛있는 떡국을 얻어먹었으니 설거지는 내 몫이라고 해도 남는 장사인 셈이다. 그릇을 씻어 엎어두는 사이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집 앞 공터에 나갔다.

- 어머니, 저는 이제 한숨 잘게요.

전기장판 틀어둔 아랫목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우니 더 바랄게 없을 정도로 안온하다. 스르르. 어느 사이에 잠이 들었는지 점심 먹자는 소리에 눈을 뜨니 오후 1시가 넘었다. 그런데, 또 밥이라고? 아침 먹은 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점심을 차리고 계셨다.

- 진짜 명절 분위기가 나네요, 먹고 자고 또 먹고. 하하하


오후에 아버님, 어머님은 시동생과 밭에 가시고 우리 세 식구는 다시 우리만의 집으로 돌아왔다.(지난 번에 귤밭에 갔다가 허리를 삐끗했던 남편은 지금도 고생 중이라 이번에는 밭에 가지 못했다.) 아침에 서둘러 내려가느라 빵 한조각도 사들고 가지 못했는데 오는 길에는 소고기며, 손수 만드신 돈까스며 양손이 무겁다. 친정엄마나 시어머니나 엄마의 마음이란 늘 더 주지 못해 안달이시다. 공기는 차갑지만 햇살은 따뜻한 제주만의 겨울 정취에 빠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구름에 살짝 가린 햇살이 신비로운 운치를 자아냈다. 여유롭고 따뜻한 오후 햇살에 조금 나른해지기도 했다. 남편은 운전을 하고 아이는 카시트에서 잠이 들었고 나는 커피를 마시며 완벽하게 아름다운 제주의 오후에 녹아들었다. 새 해 첫날이 조용하고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중이었다.

<새해 첫 오후 세 시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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