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과의 대화가 불편할지라도
이틀 혹은 삼일에 한 번은 시부모님과 통화를 한다. 물론 시부모님께서 통화하고 싶은 대상은 내가 아니다. 손주인 아이. 아이가 아직 어리다 보니 가끔은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통화를 귀찮아 하는 게 눈에 보일 때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통화 내용이 매일 똑같을 뿐만 아니라(유치원 잘 갔다 왔냐, 밥 먹었냐)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있을 때는 전화받느라 흐름이 끊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면 '할머니 할아버지 살아계시는 게 얼마나 축복인 줄 아느냐'라고 이해시키는 것부터 시작해 '전화 통화 안 할 거면 그동안 받은 용돈 다시 다 돌려드려라'라는 협박까지 일장연설이 시작되곤 한다. 사실 아까운 줄 모르고 퍼주시는 사랑과 관심은 분명 감사하지만 때때로 차고 넘쳐 며느리인 나는 죄송스럽게도 부담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전화 통화도 마찬가지.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이면 충분하지 않나 싶은데 시부모님은 이틀이나 삼일에 한 번도 매일 전화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참았다가 통화버튼을 누르시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아이가 여섯 살이 되도록 시부모님의 손자는 우리 아이 하나뿐인지라 태어난 이후로 줄곧 한결같이 식지 않는 사랑을, 날이 갈수록 더욱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둘째 계획이 없었고 남편과 한 살 차이인 시동생은 아직 미혼이라서 가능한 상황이다. 언젠가 동생(사촌동생 포함)이 생긴다면 지금 우리 아이에게만 쏠려있는 사랑이 다른 손주들에게 분산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아이는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챌까? 또 나는 그런 상황이 조금 서운할까? 아니면 조금 숨통이 트일까? 어쩌면 다른 손주들이 태어나는 것과 별개로 첫 손주에 대한 첫사랑은 여전히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시부모님의 사랑이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영원히 식지 않기를 바라는 이상한 마음을 지녔다.
통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어머니께서 아이와 대화할 때 빼놓지 않는 질문 중 하나가 "밥 먹었어? 오늘은 엄마가 뭐 맛있는 거 해줬어?"이다. 나는 이 질문이 몹시 못마땅한데 아이 밥을 챙겨주는 주체를 엄마로 한정하는 데다 직접 밥을 해서 먹여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지워주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 우리 손자 밥 먹었어요? 엄마가 뭐 맛있는 거 해줬어요?
- 김밥 먹었어요, 대왕 소시지 김밥.
- 김밥 먹었어요? 엄마가 싸줬어요?
- 아니요 배달시켜서 먹었는데요?
-......... 맛있었어?
바로 대화가 이어지긴 했지만, 아주 찰나의 침묵이었지만, 스피커폰 너머로 전달된 짧은 대화의 공백은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김밥도 제 손으로 싸주지 않는 엄마라고 나를 질책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물론 어머니의 속마음이 어땠는지 속속들이 알 수 없으나 내가 느낀 불편한 감정이 며느리로서 느끼는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과장된 느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일은 몇 번이고 더 있었다.
남편이 회사에 다니던 때였고 판매과에서 총무과로 옮기게 되어 매일 정장을 입어야 할 판이었다. 그즈음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시댁에 갔을 때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 며느리 그동안 남편 옷 신경 안 써도 돼서 편했는데 이제 매일 와이셔츠 다리려면 애쓰겠네.
- 제가 다림질 잘 못해서요. 세탁소 맡기려고요.
- 돈이 비싸지 않으냐?
- 비싸서 세탁소 못 보내면 자기 옷은 애비가 다려 입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웃음)
-......... 요즘은 다 그런다고들 하더라.
친정엄마한테 이 대화 내용을 전달했다가 호통을 들었더랬다. 너 같이 말대꾸 따박따박하는 며느리를 어느 시부모님이 좋아하겠느냐고, 와이셔츠를 세탁소에 보내더라도 그 자리에서는 그냥 '네.' 했으면 그만이라고. 내가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게 맞나 싶어 머리가 띵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는 ' 근데 엄마, 나는 시부모님이 좋아하는 며느리가 되려고 결혼한 거는 아니야. 그리고 다림질이 왜 내 일이야? 나도 똑같이 일하는데. 나는 그게 기분 나쁜 거라고. 또 왜 말을 하지 말래? 말대답이 아니라 할 말을 하는 거라고.' 대략 이런 말을, 어쩌면 시부모님께 하고 싶었던 말을 다다다다 엄마한테 쏟아낸 것 같다. 아버님께서는 며느리를 걱정해서 하신 말씀이었겠지만 그 말이 아들을 향했다면, 아내한테 미루지 말고 주말에 미리미리 다림질해서 옷 챙겨 입고 다니라고 말씀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결혼하고 이제 6년이 지났다. 시부모님과 며느리 탐색기도 지났고 어느 정도는 편해져서 피곤할 때는 좀 눕겠다고 말씀드리고 낮잠을 자기도 한다.(처음에는 몇 시간을 꽂꽂하게 앉아 있으니 시댁에만 다녀오면 몸이 피곤했었다.) 그날 오후에도 아이와 남편은 거실에서 시부모님과 있었고 나는 작은 방에서 눈을 붙이려던 참이었는데 어머니의 말씀 한마디가 귀에 꽂혀 단잠이 달아나버렸다.
- 엄마가 그런 것도 안 가르쳐줬어?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할아버지 할머니께 먼저 권하지 않고 자기 입으로 쏙 넣은 것에 대해 어른들이 계실 때에는 '드셔 보세요.' 하고 먼저 여쭤보는 것이라고 가르침을 주시는 상황이었다. 취지도 좋고 내용도 좋았는데 마지막에 덧붙이신 한 마디가 목에 탁 걸린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다. 거기서 엄마가 왜 나와? 아빠가 가르칠 수도 있지.
남편은 시댁에만 가면 말이 없다. 장모님한테는 시시콜콜 이런저런 대화를 곧잘 하고 이거 먹고 싶다 저거 먹고 싶다 해 달라는 음식도 많은데 어머니께는 단 한 번도 뭐 해 달란 소리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시댁은 엄연히 자기의 구역임에도 아버님과 어머님이 며느리인 나를 타깃으로 하시는 말씀에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손주의 손을 보며 엄마 닮아 손이 뭉툭하고 못생겼다고 했을 때에도, 모두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다들 식사를 마친 후, 아이 먼저 밥을 먹이고 이제야 막 한술 뜨려는 나에게 커피를 타오라고 했을 때에도 남편은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내가 말을 했다. 손을 쫙 펴 보이며 내 손이 어디가 못생겼느냐고, 예쁘기만 하다고 말한 이도, 밥을 이제야 먹기 시작했으니 남편 네가 커피를 타라고 말한 이도 결국 나 자신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남편이 중간에서 끼어들지 않았던 것이 시부모님과 내가 오해 없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도 같다.
딸 없이 아들만 둘을 키워 그러신 건지, 옛날 분들이라서 그러신 건지 시부모님이 생각하시는 며느리와 내가 생각하는 며느리 역할의 갭이 꽤나 컸던 탓에 시댁의 분위기에 적응하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시부모님께서도 평생 겪어보지 못한 이상한 아이가 며느리로 들어와서 당황스러우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시부모님께서는 나의 말을 막거나 불쾌하게 여기시는 분들이 아니시다. 나를 '육지 출신의 요즘 것' 정도로 이해하고 계시는 것 같다. 낳고 길러준 부모님과도 의견 충돌이 생기고 갈등 상황에 놓이는데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가족으로 엮인 시부모님과 며느리(혹은 장인 장모와 사위) 관계가 하루아침에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부드럽게 굴러갈 리 없다. 서로를 충분히 알게 되기까지 여러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때 남편이 꼭 중재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려하는 것보다 부모님들은 우리의 말을 들어주실 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혹여 언짢아하시더라도 잠깐이고 이쁨 받는 며느리에서 그냥 며느리가 될 뿐이다. 오해가 쌓여 관계가 악화되는 것보다 낫다.(모든 상황을 대화로 풀 수 없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관계도 있을 수 있고 나의 경우가 운이 좋은 편에 속할 수도 있다.) 진정한 식구로 거듭나기 위해 시부모님과의 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비록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렇게 말을 해도 되나 싶어 마음이 다소 불편해지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