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해야 안다

속마음 번역기가 시급합니다

by 달콤달달

- 여보, 4월 1일에 제사래.

- 응? 벌써 제사라고?

하고 달력을 보니 어느덧 3월 말이다. 봄이 오고 벚꽃이 피었다고 좋아만 했지 그날이 그 날인 평범한 일상이다 보니 날짜 지나는 데에는 무심했다. 4월 1일, 금요일. 회사에 특별한 이슈가 없어서 휴가를 내는데 무리는 없어 보였다.

- 근데 코로나 때문에 오지 말라고 하던데?

남편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싶어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는데 정말로 오지 말라며 몇 번이고 강조하셨다. 음식을 어떻게 장만하시려고 그러시느냐고 걱정했더니 제사상에만 올릴 걸로 해서 '간단히' 차리면 된다고 하셨다. 시간은 또 빠르게 지나 제사 전 날이 되었고, 별 고민도 없이 회사에 휴가 결재를 상신했다. 코로나 확진 후 20일도 더 지났고 자가격리가 해제된 후로 출근도 매일 하고 있는데 다른 일 때문도 아니고 코로나 때문에 제사에 가지 않는 건 어쩐지 앞 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제삿날 아침 8시쯤 아이 등원 준비를 하는데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 출발했니?

- 지금 애기 유치원 갈 준비 하고 있고 이제 좀 있다가 출발할 거예요. 그런데 어머니 오늘 오지 말라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이럴 줄 알았다. 어머니가 오지 말라는 하신 말씀은 꼭 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을 뿐이다. 물론 정말로 가지 못할 상황이었다면 전 날에 전화를 드려 가지 못할 거라고 말씀을 드렸을 테니 시부모님께서도 내가 오리라고 예상은 하셨을 거다.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를 제법 잘 알게 된 것이리라. 그럼에도 시부모님 댁에 도착해 어머니께서 미리 마련해두신 음식 재료들을 본 순간 나는 조금 당황하고야 말았다. 지지고 볶아야 할 음식들은 평소와 비슷한 수준으로 전혀 '간단'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생각하시는 '간단히'와 내가 생각한 '간단히'는 많이 다름이 분명하다.


우리는 흔히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주길' 바란다. 그러나 개떡과 찰떡은 엄연히 다른 종류의 떡이니 그런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말은 목소리를 통해 상대방의 귀에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오해 없이 소통이 가능해진다. 혹시라도 내가 부모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알아듣는 며느리였다면 어땠을까? 오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정말로 가지 않았다면, 시부모님은 하신 말씀이 있으니 서운한 내색은 비치지도 못하고 속만 새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부모님의 말씀을 따른 것뿐이니 시부모님의 전전긍긍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 이런 상황을 모두 알게 되더라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시부모님과 며느리 사이에 생채기만 남겼을 것이 뻔하다. 원하는 바가 있다면 에둘러 말하지 말고 처음부터 확실하게 말해야 하는 이유이다. 내 마음은 네 마음과 같지 않으며 마음의 소리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으니 말이다.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 속마음을 들려주는 번역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연인 그리고 친구 사이에서 우리는 쉽게 나의 마음을 상대방도 알 거라는 착각을 한다. 물론 대부분의 감정은 고여있지 않고 마음이 가는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상대방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느끼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상대가 내 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표현을 해야만 한다. 내 마음의 크기가 콩알만큼인지 우주만큼인지 표현을 해야 고마움이든 사랑이든 그 감정이 실체를 가지고 상대에게 전달된다. (때때로거절의 말이 필요할 때에도 분명하게 해야한다.) 보이지 않는 공기조차도 바람의 방향으로, 피부에 닿는 촉감으로 존재를 어필하지 않던가! 마음의 모양을 상대에게 보여주자. 말은 해야 안다. 실체 하는 모든 것들이 그림자를 가지듯, 그림자가 드리운 진짜 감정을 표현하기에 말은 가장 편리한 수단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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