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며느리라서 그런 건 아니고요
주말 단잠을 깨우는 알람 소리가 들렸다. 잠이 완전히 깨지 않도록 눈을 살짝만 뜨고는 커튼 틈을 살폈는데 아직 동이 트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면 어제부터 내린 비 때문에 날씨가 흐린 건가. 손을 더듬어 휴대폰을 봤는데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어서 알람 소리가 멈추고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알람이 아니라 전화 벨소리였고 알겠다며 전화를 끊는 남편의 통화는 길지 않았다.
일손을 보태달라는 시부모님의 전화였다. 어제가 아닌 오늘 새벽에 전화를 하신 건 아마도 손을 맞추려고 했던 누군가가 갑자기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겠지만 독서실에 가야 할 남편이 밭에 불려 가는 상황이 영 달갑지가 않은 건 어쩔 수가 없다. 귀찮을 법도 할 텐데 언제나처럼 별 말없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은 남편이 촌에 갔다 온다며 길을 나섰다. 다시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이내 다시 떠졌다. 잠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나버렸다.
시부모님께서는 농사를 지으신다. 귤밭 말고도 무나 감자 같은 밭농사를 지으시는데 남편과 시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일손을 도우며 자랐다. 두 아들이 덩치도 좋고 힘도 좋은데 일까지 잘하니 따로 평소에는 손을 빌리지 않아도 농사를 짓는데 큰 무리는 없으셨을 게다. 딸 둘이 아니라 아들 둘이라서 시부모님께는 얼마나 다행이셨을까. '이렇게 일하는 애들은 동네에서도 우리밖에 없다'라고 밭에 가기 위해 잠이 덜 깬 아들 둘을 데리고 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당시 5학년이었던 시동생이 투덜거렸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서 하신 적이 있다. 속이 상하셨던 게지, 그러니 지금껏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시리라.
시댁의 아침은 대부분의 촌의 집들처럼 새벽 4시쯤부터 시작된다. 밤의 적막도 몸에 밴 부지런함 앞에서 빗장을 풀고 무장해제 되고야 만다. 거실 불이 환히 켜지고, 테레비 소리가 들리면 하루가 열린다 . 새벽 6시에 전화를 하는 것도 사실 많이 참았다가 하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신혼 초에 새벽 5시에 시어머니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이 새벽에,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가? 너무 깜짝 놀라 전화를 받았는데 날이 추우니 옷을 잘 챙겨 입고 출근하라는 말씀에 적잖이 당황했었다. 위급 상황이 아니라 안도한 것도 잠시,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것은 십분 감사한 일임에 분명하지만 5분의 아침잠이 더 중요한 나에게는 솔직히 그다지 반가운 전화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전화를 받기 전 음, 음,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마치 일찍 잠에서 깨어 있었던 것처럼 명랑하게 전화를 받았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7년 차가 다 되는 지금은 그냥 잠결 목소리 그대로 받는다. 시부모님이 조금 편해진 것도 있지만 은연중에 아침 일찍 걸려오는 전화가 불편하다는 뜻도 담겨있다. 밤 9시 이후나 아침 9시 이전에 전화를 하는 것은 아무리 부모-자식 간이라고 해도 전화 예절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의 전화는 급한 용무를 위해서 아껴두셨으면 좋겠다. 내가 며느리라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