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늘아, 이번 설에는 집에서 쉬렴

듣고 싶은 이야기

by 달콤달달

설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오늘 설날 친정에 가려고 예매해 둔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엄마, 아빠가 다녀가신 지 며칠 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요즘 제법 배가 나와 쉽게 피곤해지는 데다 시간과 비용에 비해 연휴가 너무 짧아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비행기를 예매할 때만 해도 연휴 뒤로 휴가를 붙여서 며칠 더 쉬고 올까도 생각했지만 급여 지출 건도 있고, 기관카드 결제일도 있어 출근을 하지 않는데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언니, 이번에 떡 하는 날에는 안 가고 설날에만 갈 거지?

친하게 지내는 아이 친구 엄마한테서 문자가 왔다. 명절 하루 전 음식 장만하는 날을 제주에서는 떡 하는 날이라고 부르는데 8개월 만삭의 몸이니 당연히 떡 하는 날은 집에서 쉬고 설 당일에만 시댁에 가겠거니 생각한 모양이다.

- 아니, 가야지. 동서도 첫 명절이라 어색할 텐데.

몸이 힘들어 못 간다고 하면 별다른 말씀 대신 알겠다고 마른침을 삼키시겠지만 며느리 걱정을 앞세워 집에서 쉬라고 먼저 말씀하실 시부모님이 아니란 걸 알고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 것도 혼자보다는 둘이, 둘 보다는 셋이 나으니 나 역시 회사는 출근하면서 음식하러는 못 갈 것 같다는 낯간지러운 엄살을 부리고 싶지 않다.

< 작년 설에 장만한 음식.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다함께! >


- 이번 명절에도 친정에 갈 거니?

명절이면 부모님을 뵈러 길을 나서는 게 응당 자연스러운 일일 것인데 신혼 초에는 시부모님께서 하시는 이 질문이 꽤나 부자연스러워서 3초 정도는 침묵(당황스러워서), 또 3초 정도는 웃음(역시 당황스러워서)으로 마음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시어머니께 다녀올 친정이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졌을까? 어머니의 친정 부모님께서는 돌아가셨고 형제자매는 모두 육지에 사신다. 동기간과 외떨어져 제주에 홀로 계시는 만큼 육지에서 온 며느리의 친정 그리운 마음을 아실 것도 같은데 세월이 흘러갈 때마다 연연한 마음까지 흘려보내신 건지 무심한 말씀을 툭, 던지시면 훅, 서운함이 몰려오곤 했다.


- 비행기표는 예매했니? 너무 늦으면 부모님이 딸 보고 싶을 테니 일찍 가는 걸로 예매하거라.

- 친정에 가고 싶을 텐데 이번에는 못 가게 되어 서운하겠구나.

- 며늘아, 회사 다니느라 고생인데 이번 설에는 집에서 쉬렴.

- 며늘아, 이렇게 보러 와주어 고맙구나.

- 요즘 며느리가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는 뭔지 궁금하구나. 요즘 ㅇㅇㅇㅇ가 그렇게 인기라더라.

이번 설에 시부모님께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추운 겨울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두꺼운 패딩을 입는 것보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기 위해 곁에 있는 사람을 꼭 껴안아주는 것도 방법이다. 마음은 안아줄 수는 없으니 온기로운 말들로 상대방의 속을 꽉 채워주는 것은 어떨까? 엄마는 엄마의 며느리한테도 같은 잣대를 적용한다. 자식 둘을 키우면서 직장 다니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냐며, 이럴 때라도 그냥 와서 밥이나 한 끼 맛있게 먹고 가면 그만이라고. 친정엄마가 애틋한 건 내 딸이건 남의 딸이건 결혼한 딸들을 아끼는 그 마음 때문이다. 일주일 내내 직장에서 일과 사람으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딸들이 주말이나 명절 같은 공휴일에는 부모 집에 와서라도 푹 쉬었으면 하는 측은지심말이다.


어떤 말은 너무 차가워서 단번에 상대를 얼어붙게 만드는 반면 언 땅에서도 싹을 틔울 수 있을 정도의 따뜻한 말도 있다. 와 줘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직장 다니면서 애 키우는 것도 힘든데 며느리가 고생이 많다는 진심 어린 위로들이 마구 넘쳐나는 명절을 기대해 본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며느리니까 명절에 시댁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다. 며느리니까 전을 부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다. 평생 제사를 지내온 시부모님의 정성을 존중하는 것이고, 며느리임에도 불구하고 연로한 시부모님을 위해서 시간을 내고 마음을 보태는 것이다. 며느리라서가 아니라 자식으로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새벽에 걸려오는 전화치고 반가운 전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