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준비하는 마음

현금도 좋고 기프티콘도 좋지만

by 달콤달달

설을 맞아 부모님을 뵈러가는 인파로 육지는 도로가 꽉 막힌 모양이다. 명절 대이동,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 같다. 사람들의 양손에는 저마다 선물이 가득이다. 빈손이라도, 반가운 얼굴을 뵈어 드리는 것만으로도 부모님께는 선물일 것인데 자식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더 챙겨가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고향으로 가는 발걸음에 설렘과 먼 길 이동으로 인한 피곤이 겹쳐 보인다.


시댁에 가져갈 선물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시부모님께는 현금, 작은아버님 내외분께는 각각 양말세트와 핸드크림, 시동생 부부에게는 와인을 선물하기로 했다. 선물들을 한 데 모아놓으니 주머니는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풍요로운 기분이 든다. 육지 친정부모님께는 계좌입금하는 것으로 설날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대신했다. 꼬맹이들에게 줄 세뱃돈까지 명절 상여금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만큼 딱 맞춰 썼다. '그래,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명절 상여금도 들어오고 월급도 들어오고 하는 거지.' 의원면직의 꿈은 일단 조금 미루어도 좋을 것 같다며 나 자신과 적당히 타협을 한다.


선물은 어떤 면에서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마음을 더 설레게 하는 것 같다. 현금이나 현금성 기프티콘은 간편하고 실용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정성' 면에서는 글쎄. 나는 선물을 하기에 앞서 '내 돈을 주고 사기는 좀 아깝지만 있으면 좋을'만 한 물건을 고르는데 골몰하는 편이다. 그리고 최종 후보 몇 가지와 선물을 받을 상대방이 잘 어울리는지 이미지를 떠올려 보고 결정하는데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 사람의 표정, 목소리, 웃는 모습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웃고 있는 내 얼굴이 비친다. 바쁜 일상에서 배제되었던 상대에게 오롯이 마음을 쓰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그이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시간이 아닐까?


책을 읽고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는 지인에게는 시집을 선물하곤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접근성이 떨어지는 장르가 '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필사를 할 수 있는 예쁜 노트와 연필류까지 더한다면 금상첨화이겠다. 커피를 좋아하는 지인에게는 텀블러가 무난하다. 요즘 웬만한 카페들은 일회용 컵에 대한 보증금을 받기도 하거니와 환경 보호 차원에서 다회용 컵 사용이 권장되고 있으니 교환권을 동봉한 텀블러는 커피 마니아에게 환영받는 아이템이다. 설날을 맞이해 공부하는 남편에게 설빔대신 텀블러를 선물했다. 수험생에게 커피는 기본서, 문제집 다음으로 필수 요소이므로.


선물 받는 상대가 여자라면 선물 고르기가 조금 수월하다. 요즘처럼 춥고 건조한 겨울에 여자들 가방에 꼭 들어있는 것 중 하나가 핸드크림이다. 나도 쓰고 옆 동료도 빌려주다 보면 핸드크림 하나도 금방이라 선물 받은 핸드크림이 있다면 겨우내 촉촉하고 보드라운 손을 유지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할 것이다. 다만 향이 너무 강한 것보다는 은은하면서 보습력이 뛰어난 것으로 고르는 게 좋다. 헤어 오일 또한 핸드크림과 비슷한 이유로 선물로 알맞다. 매일 사용할 수 있는 데일리 아이템인데 가격도 3-5만 원 대로 구입할 수 있어 선물을 하는 이나 받는 이 모두 부담이 없는 것도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손을 씻고 핸드크림을 바를 때, 무심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다가 한 번씩 나를 떠올릴 그녀가 아른거린다. 작은 어머니의 고운 손에 내 지분이 어느 정도는 있음을 주장하는 바이다.


선물을 고를 가장 곤란한 경우는 아마도 남자 어른일 테다. 지갑이나 벨트, 면도기는 너무 고가이고 화장품은 개인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선물하기에 망설여진다. 아빠를 떠올려도, 시아버님을 떠올려도 뭐가 필요하신지 도통 그려지지가 않는다. 이번 설뿐만 아니라 매 명절마다 작은 아버님 선물 고르기가 어렵지만 다년간의 경험상 양말 세트가 가장 무난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양말은 매일 신는 생활필수품이지만 내 돈을 주고 사기에는 어쩐지 아까운 느낌이 드는 주관적 경험을 반영했다. 차량용 방향제나 골프 모자도 마음에 들어 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제 결혼한 지 한 달 차인 시동생 부부에게는 다정한 시간에 분위기를 더해 줄 와인을 준비했다. 시동생은 사실 극강의 소주파이긴 하지만 신혼, 로맨스라는 키워드에는 아무래도 소주보다 와인이 더 잘 어울린다. 시동생이 결혼하기 전에는 생일만 챙겨서 카톡으로 송금하거나 기프티콘을 보내고 명절에는 따로 선물까지는 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이제 결혼을 했고 동서도 새로 맞이했으니 선물을 챙기고 싶어졌다. 우리 부부가 자주 마셨던(몇 달만 참으면 다시 마실 수 있다) 무난한 와인으로 레드 하나, 화이트 하나 총 2병을 준비했는데 예상보다 조카가 빨리 생긴다면 와인 덕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줌마적 오지랖을 살짝 얹어본다.


돈으로 준비하면 간단한데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명절 이모저모를 준비하시는 양가 부모님께는 보태 쓰실 수 있도록 현금을 준비하는 게 실용적이겠으나 우리 부부보다 연봉이 훨씬 높은 작은아버님 부부나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에게 돈이 선물이 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얼마가 적당한 금액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명절 선물은 마음을 전하는 동시에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사이에 미묘한 어색함, 특히 며느리들이 느낄 수 있는 소외감을 깨 주는 아이스브레이커 역할도 톡톡히 해낼 것이다. 식구들 틈에 둘러앉아 고맙다, 건강하시라 덕담을 나눌 구실(선물)은 준비됐으니 이제 마음 한 켠 내어줄 차례이다. 며느리로서 명절이 얼마나 큰 부담인지 모르지 않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 아이가 준비한 선물. 오늘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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