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는 죄가 없다, 맛있을 뿐.

약밥, 소갈비, 잡채, 그다음은?

by 달콤달달

- 야! 이렇게 해 가니까 뭘 자꾸 해 오라고 하지!

친구 A가 보내온 사진에 나도 모르게 버럭하고 말았다. A가 설날 시댁에 가져가려고 만든 잡채였다. A의 집에서 시댁까지는 평일 차가 안 막히는 시간에 간다고 해도 3시간 이상 걸리는데 명절임을 감안하면 훨씬 오랜 시간을 가야 할 터였다. 그나마 A의 집으로 오셔서 설을 쇠겠다고 하지 않으신 게 다행일 지경이었다. A의 시댁은 아들만 둘이고 A는 맏며느리이다. 최근 몇 년 간 본가에서 명절을 지내지 않고 시부모님과 시동생 내외가 A네 집으로 역귀향을 해서 명절을 지냈었는데 오시기 전 약밥이나 소갈비 등 드시고 싶은 음식을 특별히 주문(?) 하시곤 했다. 덧붙이는 말로 빠지지 않는 단어는 언제나 넉넉히, 였다. 큰아들과 큰며느리가 살고 있는 집에 방문하시는 시부모님의 양손은 솜털처럼 가벼웠지만 말이다.


나를 포함해 4명의 친구들이 속해있는 단톡방의 이름은 ‘30년 지기’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지금까지 30년을 넘기며 볼 꼴 못 볼 꼴을 다 보며 살았으니 서로가 서로의 찌질함이자 영광인 셈이다. 학교 다닐 때는 부모님께서 맞벌이하시는 친구 집에 가 비디오 보며 신라면을 뿌셔 먹거나 끓여 먹는 게 일상이었고, 시험기간에는 같이 밤을 새우며 공부 대신 수다를 떨기도 했다. 연애사부터 대학 진학에 이은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뭐 하나 놓치는 것 없이 촘촘한 서사로 얽혀있는 우리지만 단톡방에서 가장 긴 대화가 이어질 때는 아무래도 시댁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이다.


김장 때마다 근처 사는 며느리를 불러 김치 속을 채우게 하시는 B의 시어머니는 본인 나이 들면 김장해서 달라는 말씀을 빼놓지 않으신단다. 김장을 도우러 오는 어머니의 친구들조차 요즘 젊은 사람들이 누가 김장 하냐고, 사 먹는 김치가 더 맛있다고 말해도 본인께서는 절대 사 먹는 김치는 못 먹는다 단언하셨고 한다. 원래 시댁이나 남편이나 별 말이 없는 B이지만 매년 겨울 반복되는 김장 스트레스가 어지간히 큰 모양이었다. 봇물 터진 그녀의 이야기가 한참 동안 이어졌고 겨울만 되면 스트레스를 받는 또 한 사람인 내가 B의 바통을 받았다.


- 말 마. 나한테 주말에 일찍 와서 밭에 와 귤이라도 따지 저녁에 올 거냐고 하시더라고.

육지에 사시는 시이모(시어머니의 언니)가 내려오셨다고 해서 토요일 저녁에 식사를 대접하려고 전화드렸을 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 너 지금 임신 7개월인데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화제는 곧 징글징글한 김치 타령에서 귤밭 이야기로 전환되었다. 내 귀를 의심케 했던 어머니의 말에 친구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어머니께서 정말로 내가 귤을 따기를 바라신 건지 귤을 핑계로 아들과 손주를 오래 보고 싶으셨던 건지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지만 기분은 이미 상했고 귤의 ‘ㄱ’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그러고 보니 김장에도 김치에도 ‘ㄱ’이 들어가네.)


결혼한 여자들이 받는 스트레스 중 가장 많이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시댁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일화들일 텐데 이걸 어디다가 속풀이 하는 게 사실 마땅치 않다. 친정 엄마한테 말하자니 당연히 속이 상하실 테고 남편한테 얘기하자니 그에게는 ‘우리 엄마’인데 팔이 안으로 굽지 밖으로 굽을 리가 없다. 이 둘한테는 차라리 말을 꺼내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싶어 적당히 친한 지인에게 털어놓자니 자칫 내 얼굴에 침 뱉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입을 떼기가 쉽지 않다. 속으로 삼키려 아예 입을 꾹 다물었더니 자꾸 가슴팍이 쿡쿡 쑤신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를 외칠 대나무 숲이 우리 결혼한 여자들에게 꼭 필요한 이유이다. 30년 지기의 단톡방은 삶이라는 깊고 어두운 심연에서 기대어 숨 쉴 수 있는 산소통과 같다. 그 바닷속에는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댁이라는 거대 암초도 있지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해 여전히 숨 고르기를 하며 지혜롭게 피해 갈 여유를 얻는다.


잡채는 죄가 없다, 맛있을 뿐. A는 이왕 해 갈 거 식구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재료와 양념을 아끼지 않고 정성까지 추가해 먹음직스러운 잡채를 일찍이 완성하였다. B는 내년에도 시어머니의 김장에 손을 보태고 있을 것이며 나는 어머니의 말씀에 서운함은 감추고 예정대로 시이모님께 맛있는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언제나 바쁜 D는 우리의 이야기를 한 발 늦게 듣고는 욕이든 위로든 아낌없는 공감을 표함으로써 산소통에 공기를 채워주었다. 30년 지기의 단톡방은 설도 지나갔고, 김장도, 귤 수확철도 끝났으니 아마도 당분간은 조용할 것 같다. 다음 이야기의 물꼬는 누가 틀게 될까? 이제 막 미운 일곱 살이 된 우리 집 꼬맹이의 에피소드를 담은 나의 한숨으로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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